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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이 출판되고 나서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머니 많이 좋아지셨어요?”라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질문을 듣게 되면 그냥 쉽게 “네. 많이 좋아지셨죠. 처음 시골에 오실 때 비하면 참 좋아지셨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질문을 하시는 분들은 벌써 3쇄 준비를 하고 있는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똥꽃’> 이라는 책을 읽은 독자 분들로 어머니가 얼마나, 어떻게 좋아지셨는지 알고 계신지라 그렇게 대답을 한 것입니다.

 

옛날에 읽었던 책 한권을 다시 보게 되면서 저의 이런 답변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늙고 몸 불편한 어머니와 잘 사는 것이 과연 ‘많이 좋아지신 것’이냐 하는 의문이 생겨서입니다. 똥오줌을 가리시게 되었고 집안의 어른이자 생활의 주체로 복귀하신 것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몸과 마음이 좋아지신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낯선 사람을 멀리하고 의심하며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고 위축되어 계시던 어머니가 얼마나 당당해 지셨냐하면 집에 누가 찾아 왔을 때 보이시는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오면 방구석에 숨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곤 했었지만 요즘은 도리어 방문을 열며 “그 누고? 어대서 왔소?”라고 큰 소리를 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좋아지셨냐?’는 말은 여든 일곱이신 우리 어머니가 계속 좋아지셔야 잘 모시는 것이 된다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번에 읽게 된 책은 ‘모시는 삶’이 뭘 말하는 것인지를 충격적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군산대 김용휘 교수의 책입니다.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이라는 조그만 책인데 김 교수는 이 책에서 동학의 핵심은 인내천(人乃天)이 아니고 시천주(侍天主)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인내천은 시천주 삶의 자연스런 귀결인 것이므로 개인의 마음 닦음 즉, 수양과 수행을 동학의 핵심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동학을 종교적 교의로 본 것이 아니라 삶의 방법을 제시한 학문으로 본 것입니다.

 

특히 모신다(侍)는 말이 뜻하는 바가 전혀 새로웠습니다.

 

동학 정신에 따르면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은 부모를 불편함 없이 잘 받들고 편히 생활하게 보살펴 드린다는 게 아니었습니다. 나를 갈고 닦아 내가 그렇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주를 내 속에 받아들여 내 속의 그 천주를 갈고 닦아 스스로 천주가 된다는 시천주 사상은 부모 모시기에 대비해 보면 충격적인 삶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대로의 부모를 내 속에 받아들여서 내가 꼭 그렇게 산다는 것이 됩니다.

 

부모가 늙고 병들었으면 그런대로 그것을 나의 수양과 수행의 본보기 삶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치매 어머니를 모신다는 것은 재산과 체력과 정성이 점점 고갈되어 가는 삶이 되지 않고 의욕과 정성과 깨달음을 만들어 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울 것도 없는 저의 발견이었습니다. 애인, 가족, 친구 모두 같은 원리가 됩니다.

 

엊그제는 누워 잠드신 어머니 요 밑에 손을 넣으면서 “따시지요?”라고 물었더니 눈을 뜨신 어머니가 “비 오나” 하셨습니다. “네. 비가 좀 전부터 와요”라고 했더니 “빨래 안 걷었지? 빨래 걷어야지”해서 아 참! 하고는 급히 빨래를 걷었습니다.

 

멀쩡한 제가 깜빡 잊고 있는 것을 치매 어머니가 생각해 내신 것입니다. 낮에 빨래하는 것을 얼핏 보신 것에 불과한데 비 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으며 빨래 걷지 않은 것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싶어 어머니를 다시 돌아 보았습니다.

 

오랜만에 닭장에 가서 솥뚜껑 같은 내 손에 달걀 일곱 개를 아슬아슬하게 쌓아서 마루로 올라 와 방문을 열고 어머니에게 보여 드리는데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고개도 다 안 돌린 상태에서 “달걀을 일곱 개나 낳았어?”라고 해서 하마터면 달걀을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신비적 현상이 아니라 내가 어머니를 잘 모시는 것은 어머니 또한 나를 모시는 것이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동학에서 말하는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말이 떠올라서입니다. 그때 그 순간을 모시는(侍)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부모 봉양이 되는 것입니다. ‘많이 좋아 졌느냐?’가 아니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샘터> 7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똥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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