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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지난 5월에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쓰레기 문제를 다뤘고, 6-8월은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는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가 변함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번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을 찾아 일회용컵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버려지는지 살펴봤습니다. [편집자말]
곳곳에 버려진 1회용컵들. 그다지 애쓰지 않아도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곳곳에 버려진 1회용컵들. 그다지 애쓰지 않아도 어디서나 찾을 수 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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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차해란(여·26·경기도 안산시)씨는 얼마 전 더위를 피하려 그늘을 찾았다가 기분이 상했다. 벤치 주변에 어지럽게 버려져있는 1회용 컵 때문이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판 아이스크림에서 테이크아웃 전문점 커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차씨는 "앉으려다가 컵을 한쪽으로 치우려고 들었는데 먹다 남긴 커피가 손으로 흘러내리는 바람에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면서 "직접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지 않고 쉬는 공간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곳곳에 버려진 1회용 용기 때문에 거리가 몸살을 앓는다. 더위를 피하려 공원 등을 찾았다가 눈살만 찌푸리기 일쑤다. 특히 요즘 같이 후텁지근한 날씨엔 1회용 컵 사용량이 늘어나기 마련. 여기서 잠깐. 만약 이것들을 모아 돈으로 바꾼다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사람들이 붐비는 대학로로 직접 나가봤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역 1번 출구 근처에 1회용 컵들이 버려져 있다. 유명 패스트푸드 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커피 용기 등이 가득하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역 1번 출구 근처에 1회용 컵들이 버려져 있다. 유명 패스트푸드 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커피 용기 등이 가득하다.
ⓒ 이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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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3시쯤.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역 1번 출구. 지하철역 주변 선반엔 1회용 컵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컵 2개는 포개져 있었고, 안에는 담배꽁초와 담뱃재가 담겨 있었다. 뒤로는 음료수 컵과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커피 용기 등이 있다.

근처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도 사정은 비슷했다. 공원 내 소공연장 돌기둥의자 사이로 480㏄짜리 1회용 커피잔 한 개가 굴러다녔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뒤편 골목 한쪽엔 1회용 용기 등이 잔뜩 버려져 있었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버려진 컵 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걸쭉한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심하게 부패돼 콧속이 찌릿할 정도로 악취가 진동했다. 어떤 컵은 누군가 발로 짓밟은 듯 납작하게 눌려져 있었다.

한 연극 극장 입구에선 남녀 커플이 얼음 커피를 마시며 재잘거리더니, 잠시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손에 들고 있던 1회용 커피 잔은 앉은 자리 옆에 내버렸다. 이 모습을 본 4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저 놈들 봐,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네"라며 혀를 찬 뒤, 커피 잔을 들어 조금 떨어진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컵보증금제

컵보증금제는 1회용컵을 수거해 재활용한다는 취지로 실시됐다.

하지만 환불율이 40%에도 미치지 못하는데다, 반납하지 않은 60% 가량 금액을 업체가 판촉비 등 임의로 사용하는 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환경부가 3월 20일 전격 폐지했다.

3개월 유예기간을 둬, 3월 20일 이전 구입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영수증을 갖고 오면 6월 말까지 컵보증금을 돌려준다.
1회용 컵이 발견되는 곳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지하철 역 주변에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게 금속으로 만든 의자가 설치돼 있다. 공원 안에서 모은 컵도 대부분 벤치 주변에서 찾은 것들이다. 결국 잠깐 앉아 쉬면서 음료수를 마시고 난 뒤, 그냥 버리고 간 것이다. 자동차와 사람들의 움직임이 많은 길은 의외로 깨끗했다.

물론 쉬는 공간이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 중엔 깨끗한 공간도 제법 있었다. 5~6곳을 돌아다니며 이유를 살펴봤더니 결론은 이랬다. 누군가 먼저 버리지 않은 곳은 쉽사리 버릴 수 없다는 것. 하지만 한번 뚫린 곳은 여지없이 다음 범행의 대상이 됐다. 실제로 한 장소에서 3~4개의 컵을 한꺼번에 줍기도 했다.

이날 대학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1시간 동안 모은 1회용 컵은 모두 12개(패스트푸드 전문점 4개, 커피전문점 8개). 훼손 상태가 심각해 재활용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은 뺐다. 이 컵을 돈으로 바꾸면 얼마나 될까?

환경부가 실시해온 '1회용 컵 보증금 제도'에 따르면 패스트푸드 1회용 컵은 개당 100원,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컵은 50원을 환불받을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모두 800원(4×100=400원, 8×50=400원)을 번 셈이다. 1분에 약 13원씩 길에서 돈을 주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대로 분당 13원씩 길거리에 버렸다는 말도 된다.

나라 전체로 넓혀보면 액수가 잘 드러난다. '1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통해 지난해 1회용 컵 약 1억1200만개를 팔아 79억2300만원이 모였다고 환경부는 밝혔다. 이 가운데 환불된 돈은 29억4800만원, 전체 금액의 37.2%에 그쳤다. 나머지는 결국 바닥으로 버려진 것이다. 무려 49억7900만원이다.

<표> 1회용 종이컵 판매 및 환불현황.
 <표> 1회용 종이컵 판매 및 환불현황.
ⓒ 이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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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용 컵 환불율(가격대비 기준)은 지난해를 빼곤 ▲2003년 18.9% ▲2004년 28.2% ▲2005년 31.1% ▲2006년 37.6% 등으로 매년 2~5% 늘었다. 하지만 아직 절반이 채 안 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C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는 김아무개(여·24)씨는 "1회용 컵을 들고 오는 사람은 하루에 많아야 1~2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컵을 가져가면 될까? '1회용 컵 보증금' 제도는 오는 6월말로 사실상 완전 폐지될 예정이다. 컵 보증금 제도에 대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고, 환급되지 않은 돈이 투명하게 처리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등의 문제가 지적됐기 때문이다.

각 업체들은 이에 컵을 가져오면 사은품을 주거나 가격을 깎아주는 등 자구책에 나섰다. 이날 한 커피전문점에선 1회용 컵을 가져다주니, 재생 종이로 만든 작은 수첩을 주었다. 개인용 컵(텀블러)을 매장에 들고 가면 가격을 깎아주는 곳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대학생 박현정(여·23·서울시 은평구 갈현동)씨는 "1회용 컵 문제는 보상이나 환경보호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결국 타인에 대한 배려의 문제"라면서 "나도 다른 사람이 그냥 버리고 간 1회용 용기 때문에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서로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회사원 황용호(34·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씨는 "1회용 컵을 재활용 하는 게 좋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안 지켜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면서 "과거엔 먹고 살기 바빠 환경에 신경을 못 썼다지만 이젠 사정이 다른 만큼 어렸을 때부터 공공 도덕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1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오는 6월말로 사실상 완전 폐지되면서 업체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한 커피전문점은 1회용 컵을 가져가면 재생 종이로 만든 작은 수첩을 나눠 줬다.
 1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오는 6월말로 사실상 완전 폐지되면서 업체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한 커피전문점은 1회용 컵을 가져가면 재생 종이로 만든 작은 수첩을 나눠 줬다.
ⓒ 이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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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태그:#1회용 컵 보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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