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던 학생과 시민들이 24일 밤 행사를 마친 뒤 청와대로 행진하려다 경찰에 가로막혀 대치하고 있는 종로에서 시사평론가 진중권씨가 생방송으로 현장중계를 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던 학생과 시민들이 24일 밤 행사를 마친 뒤 청와대로 행진하려다 경찰에 가로막혀 대치하고 있는 종로에서 시사평론가 진중권씨가 생방송으로 현장중계를 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오늘날 독자와 필자의 구별은 신분적인 것에서 기능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 발터 베냐민

독자는 필자가 되고, 기자가 되고, 마이크로 영화의 감독이 되고, 마침내 방송사가 되었다. 장비는 노트북·와이브로·카메라와 무선 마이크가 전부다. 공중파 TV나 라디오를 방송(broadcasting)이라 하는 데에 반해, 개인이 하는 방송을 흔히 협송(narrow casting)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번 촛불 정국에서 개인 방송들이 공중파 방송에 못지않은, 때로 그것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이 글의 목적은, 촛불집회 현장에 나온 개인방송 중의 하나인 '진보신당 칼라TV'의 진행자로서 촛불집회를 직접 보도하면서 관찰하고 체험한 것을 기록하는 데에 있다.

재매개

칼라 TV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촛불집회에 참가한 이들 사이에서 가잘 널리 사랑을 받았다. 덕분에 취재현장에서 칼라 TV는 다른 매체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권을 누렸다. 칼라 TV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절대적이었고, 취재에 대한 대중의 협조 또한 전폭적이었다.

이 성공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거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도 중계방송을 하는 특별한 방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칼라 TV의 방송은 디지털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이미지의 전략을 차용했다. 그것은 바로 컴퓨터 게임의 포맷이다. 

컴퓨터 게임의 포맷을 차용한 것은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원래 칼라 TV 중계는 촛불집회 현장에 차려놓은 부스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집회 참가자들을 인터뷰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물론 공중파 생방송의 형식을 충실히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5월 27일 집회 참가자들이 처음으로 도로에 진출하는 순간, 이들을 따라 노트북을 들고 카메라가 이동하면서 중계의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거기에 중계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온라인 참여가 결합되면서, 중계는 무의식적으로 컴퓨터 게임의 전략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재매개'(remediation)의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볼터와 그루신에 따르면, 미디어의 발전은 뉴미디어가 올드 미디어를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가 서로 상대의 전략을 차용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가령 윈도우가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아날로그의 은유(오피스·폴더·파일·휴지통)를 차용하는 것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미디어의 발전에 일상적으로 발견되는 일반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칼라 TV로 중계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변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방송이 무의식적으로 컴퓨터 게임의 포맷을 차용하는 재매개의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토탈 게임

중계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시청자를 위한 채팅창, 혹은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 시청자의 견해가 올라온다. 네티즌들은 방송으로 지켜 본 상황에 대한 코멘트를 넘어, 직접적으로 취재 지시를 하고, 이 명령은 휴대폰 통화나 문자를 통해 촬영 팀에 곧바로 전달된다.

가령 광화문에서 시민들을 인터뷰하다가, '시위대가 사직터널에서 경찰의 저지선을 뚫으려 하고 있다'는 제보에 촬영 팀은 곧바로 대치 현장으로 달려간다. 카메라로 비친 영상을 보고, '지금 도로에 스티로폼으로 연단을 쌓고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봐 달라'고 구체적으로 지시를 하는 경우도 있다.

특정인과 논쟁을 해달라는 지시를 받기도 한다. 가령 군복을 입은 예비역들이 '시민들을 보호한다'며 다른 시민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게 문제가 됐을 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대중들은 그들에게 다소 공격적인 인터뷰를 해 달라고 주문을 한다.

때로는 심지어 행동으로 상황에 개입할 것을 지시받는다. 예를 들어 현장에서 과격행동을 하는 사람을 말려달라는 지시를 받는 것이다. 이 경우 리포터는 시위의 참가자로 신분을 바꾸어 주위의 다른 시민들과 더불어 흥분한 시민을 자제시키기도 한다. 방송이 게임 속의 상황을 제어하는 일종의 콘트롤 패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존의 방송은 송출범위가 넓든, 좁든 일방적 성격을 갖는다. 인터넷을 통한 개인방송의 경우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지긴 하나, 그것은 1인칭-2인칭의 화상전화 모델에 가깝다. 칼라 TV의 경우에는 1인칭-2인칭의 쌍방향 소통으로 3인칭의 상황에 개입한다는 의미에서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심해로 들어간 잠수정의 로봇의 팔에 비유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그것은 레프 마노비치가 말한 의미에서 '원격현전'(telepresence)의 현상에 가깝다. 대중은 그저 전송되는 복제 이미지를 수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원본인 현실을 변화시키고 싶어 한다.

28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08 세계시민기자포럼에서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가 촛불집회 현장에서의 칼라TV 생중계 경험을 바탕으로 영상을 통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28일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2008 세계시민기자포럼에서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가 촛불집회 현장에서의 칼라TV 생중계 경험을 바탕으로 영상을 통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리포터와 참가자

진행자는 게임 속의 캐릭터가 된다. 실제로 몇몇 시청자의 머릿속에서 진행자는, 마치 슈퍼마리오와 같은 게임의 캐릭터처럼, 대중에게 친근감을 주는 만화적 이미지로 표상된다. 컴퓨터 게임에서 때로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잃어버리듯이, 이 리얼리티 게임의 플레이어들 역시 때로 자신들의 캐릭터를 잃어버리곤 한다.

방송 진행자는 6월 1일 중계를 하던 중 청와대로 들어가는 효자동 골목에서 중계를 하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 사건은 시청자들에게 리포터가 사건의 바깥에서 관찰자로 머무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참여하고 싶은 사건의 한복판에 개입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인터랙션은 현장에서도 이루어진다. 촬영팀이 인지하지 못한 사건은 시민들이 달려와서 제보를 해준다. 심지어 현장에서 진행자에게 사건의 해결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시민들의 모습을 촬영하다가 사복경찰(이른바 '프락치')로 의심받은 사람이 잡힌 경우, 시민들은 종종 칼라 TV팀에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곤 했다.

그 중에는 <동아일보> 기자도 있었고, 민심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러 온 기관원도 있었고, 경찰차에 불을 지르려고 했던 방화 미수범도 있었다. 지도부를 갖지 못한 시위 현장에서 대중의 신뢰를 받는 방송팀이 일종의 공신력으로 통했던 것이다. 진행자는 사건에 개입하여 상식에 따라 문제를 적절히 해결했다.

이렇게 현실에 개입하는 것은 전통적 보도의 원칙을 깨는 것이다. 이때 진행자의 정체성은 리포터와 참가자 사이를 오가게 된다. 칼라TV가 현장에서 누린 특권은 리포터가 동시에 참가자였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이 특성은 대중으로 하여금 칼라 TV를 자신들과 동일시하게 하는 효과를 냈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리포터가 참가자가 될 경우, 현실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잃어버리고, 시위 군중에 심리적으로 동화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심리적 동화가 가끔 부정확한 보도, 혹은 편파적 판단을 낳기도 했다.

핸드 헬드 카메라

진보신당 '칼라TV' 생중계를 하면서, 진중권 교수와 함께 촛불집회 참여 어린이를 인터뷰하고 있는 이명선 아나운서
 진보신당 '칼라TV' 생중계를 하면서, 진중권 교수와 함께 촛불집회 참여 어린이를 인터뷰하고 있는 이명선 아나운서
ⓒ 진보신당 제공

관련사진보기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기존의 전쟁영화와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전투의 장면을 3인칭 시점이 아니라 1인칭 시점으로 묘사했다는 데 있다. 핸드 헬드 카메라의 흔들리는 영상은 영화의 관객을 안전한 곳에서 전투장면을 바라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전장의 한복판에서 적의 십자 포화망에 걸린 병사로 만들어 버렸다. 이 때 영화는 더 이상 시청각적 지각의 대상이기를 그치고, 관객의 신체에 쇼크를 주는 에이전트가 된다.

어떤 이는 칼라 TV 방송을 보고 "마치 영화 <클로버 필드>를 보는 듯 하다"고 말했다.

이 영상의 촉각성은 강한 몰입 효과를 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새벽까지 방송을 지켜보느라 근무를 하는 데에 지장을 받을 정도라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몰입 효과를 강화하는 데에는 보통 영상의 해상도를 높이는 방법이 사용된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고해상의 영상은 대개 연출된 것이다. 대중은 공중파 방송의 깨끗한 영상이 대부분 연출된 상황을 찍은 것이거나, 최소한 인위적 편집을 거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대중은 이미 고해상의 영상을 허구로 느낀다. 그리하여 그들은 편집 없이 내보내는 저해상의 영상을 더 현실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생방송이라 해서 편집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령 촛불시위 속에는 저개발의 정치(투쟁으로서 정치)와 과개발의 정치(유희로서 정치)가 공존한다. 앞에서는 경찰과 시민 사이에 치열한 물리적 충돌이 벌어져도, 거기서 100m만 떨어진 후방에서는 버젓이 즐거운 밴드 공연이 열린다. 하지만 휴대폰으로 들어오는 제보의 대부분은 극적 상황이 벌어진 곳을 지시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카메라는 전체 사건 중의 한 측면만 보여주게 되고, 그로써 시위 상황이 현실보다 더 극적으로 연출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찍은 저해상의 영상은 현실보다 더 큰 현실감을 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네티즌은 그저 온라인의 시청자로 남는 게 아니다. 시위 현장에서는 "방송을 지켜보다가 분노하여 이 새벽에 택시를 타고 나왔다"고 말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꼭 격렬한 새벽의 시위현장은 아니더라도, "원래 촛불집회에 나올 생각이 없었으나 아프리카를 통해 생중계되는 방송을 보고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1인방송의 생생함이 사건의 수동적인 관찰자를 적극적인 참여자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저해상의 영상을 날이 새도록 지켜보는 것은 일반적인 방송의 수신 태도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방송을 본 게 아니라, 시위에 참여했던 것이다.

현장에 나오는 것만이 참여의 방법은 아니다. 현장의 시민들이 컴퓨터 앞에 앉은 시민들에게 온라인 행동을 부탁하면, 네티즌들은 즉각 온라인 행동을 수행한다. 경찰의 저지선을 뚫지 못한 오프라인 시위대들이 청와대에 대한 온라인 공격을 부탁하자, 방송으로 시위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순식간에 청와대 홈페이지의 서버를 다운시켜 버렸다.

가령 시위하던 시민이 체포되어 어느 경찰서로 연행됐다는 소식을 전하면, 시민들은 알아서 그 경찰서에 항의전화를 걸었다. 현장에서 어떤 물품이 부족하다고 방송을 내보내면, 네티즌들이 퀵서비스로 요구한 물품을 현장으로 보내주는 장면도 목격됐다.

시위대가 차도로 뛰어들던 그 날, 방송 팀은 와이브로가 허용해주는 기술적 가능성에 힘입어 이동 촬영을 결정했고(다리), 인터넷과 핸드폰이 허용해주는 기술적 가능성 내에서 시청자의 요구에 따라 실시간으로 사건에 개입할 수 있었다(팔). 마셜 맥루언은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고 했다. 과거의 방송이 수용기(receptor), 즉 시청자에게 확장된 눈과 귀의 역할을 해준다면, 칼라 TV의 생중계는 단순한 수용기를 넘어 동시에 효과기(effector), 말하자면 시청자들의 팔과 다리의 역할을 했다.

이미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대중은 자신이 보는 이미지에 과거와는 다른 요구를 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복제 이미지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터랙션을 통해 자신이 보는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지시하는 현실을 변화시키고 싶어 한다.

그들은 이미지와 상호작용함으로써 새로운 현실의 내러티브를 스스로 짜려 한다. 이 컴퓨터 게임의 문법이 방송을 보는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킨 것이다. 칼라 TV는 그 요구에 충실히 대답했다. 그것이 칼라 TV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촛불집회에서 끌었던 특별한 인기의 원인이다.


태그:#세계시민기자포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