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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의 개화, 계몽주의자들

물론 조선총독부 건물은 그로부터 약 70년 후인 1995년에 철거되었다. 산세를 차단하고 왕궁을 유린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음험한 하얀색 건물은 김영삼 정부에 의해 가루가 되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 국민들은 근정전은 물론 청와대와 인왕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풍경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대한민국 지식인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었다. 영어공용화를 주장하고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복거일이라는 소설가가 있었다. 그는 이상한 논리로 총독부 건물을 부순 김영삼 정부를 비판한다.

"우리가 큰 나라들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이므로, 우리 역사엔 그늘진 부분들이 많다. 자연히 우리에겐 그늘진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된 유물들이 많다. 그것들로 해서 잊고 싶은 역사적 사건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달가울 리 없으므로,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런 유물들을  없애려 애쓴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그런 본능을 좇아서 그런 유적들을 많이 없앴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그러나 그것은 추천할 만한 관행은 아니다. 아무리 짙은 그늘이 어렸더라도, 역사적 유물은 지난 세월의 모습이 담겼고, 잘 다듬으면 뜻밖의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바뀔 수 있다.

이 점은 조선총독부 건물의 운명에서 또렷이 읽어낼 수 있다. 그 건물은 일본의 조선 식민 통치의 두드러진 상징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조선조 궁궐의 위엄을 의도적으로 훼손하기 위해서 궁궐 앞에 세워졌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그것을 뜯어내고 궁궐을 복원했다. 조선총독부 건물 자체는 무척 큰 자산이었고 많은 시민들이 보존하자는 주장을 폈지만, 우리 사회는 궁궐이 본디 모습을 되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제 상상해 보자. 당시 김영삼 정권이 보다 풍부한 상상력을 지녀서 조선총독부 건물을 뜯어내는 대신 그 건물이 지닌 상징성을 교육과 관광의 자원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을 경우의 모습을. 예컨대 “사람들의 사악한 행적들은 청동에 새겨져 남는다. (Men`s evil manners live in brass.)”라는 셰익스피어의 얘기를 따라, 우리는 조선총독부 건물 바로 옆에 높다란 청동탑을 세우고 거기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궁궐을 훼손하게 된 사정을 새길 수 있었다.

조선어로, 일본어로, 그리고 세계어인 영어로. 만일 공간이 허락한다면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해서도 기술할 수 있었을 터이다. 아마도 마지막엔 두 나라 사람들이 마침내 화해해서 좋은 이웃이 되기를 바라는 우리 마음을 밝히는 글이 나왔을 터이고 탑의 맨 위층은 전망대로 만드는 것이 좋았을 터이다. 그렇게 위에서 굽어보아야 조선총독부 건물이 궁궐을 가려서 궁궐의 일체성과 위엄을 훼손했는가 뚜렷이 드러난다. 한 번 상상해 보라. 몇 십 층 높이의 청동탑이 하늘로 솟구치고 그 벽면에 조선총독부의 유래를 밝히고 일본의 식민통치의 잘잘못을 담담하게 적고 우리의 희망을 밝힌 글이 새겨진 모습을.

조선총독부 건물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연전에 우리 독립운동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제작에 참여해서 그 건물을 배경으로 촬영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찾는 일본인 학생들의 긴 행렬을 보았다. 아쉽게도 그곳엔 조선총독부 건물의 유래에 관한 안내문이 없었다. 그래서 한 여학생에게 “이곳이 지금은 박물관인데, 원래 이곳에 무슨 기관이 있었는지 아느냐?”고 영어로 물어 보았다. 그 여학생은 수줍게 얼굴만 붉힌 채 고개를 저었다. 이제 궁궐은 복원되어 옛날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김영삼 정권은 그것을 대단한 업적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얻은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 자체가 값진 자산이었고, 그것을 부랴부랴 허느라 거기 전시되었던 유물들은 손상을 적잖이 입었고 큰돈을 들이고도 새 박물관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복원된 궁궐의 너른 뜰은 대개 비어 있어서 친근감은 좀처럼 생기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때에도 일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중요한 관광 자원 하나를 허문 것이다. 무형적 손실은 더욱 크다. 만일 단단하게 지어졌고 모습이 아름다웠던 그 건물이 거기 그대로 서 있고 바로 옆에서 하늘로 솟구친 청동탑이 그 건물의 유래를 밝히고 앞날의 희망을 얘기한다면, 일본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더 잘 알게 되고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조금은 나아질 것이 아닌가?" - 복거일, ‘그늘진 역사의 유물을 자산으로 삼는 길’

복거일, 글과 논리의 허술함

김영세의 증손녀가 있다고 치자. 어느 날 그 아이는 저명한 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 복거일의 이 글을 읽고 자기 아버지 즉 김영세의 손자에게 말하게 된다.

“아빠, 우리나라에 복가도 있나요?”
“응. 복씨 있지.”
“아빠, 그런데 이 사람 소설가 맞아요?”
“들어 본 것 같다.”
“그런데 왜 이렇게 틀린 문장이 많은 거예요?”
“복씨한테 물어 보려무나.”
“하하. 아빠, 우리가 많은 유물을 본능적으로 없애고 있나요?”
“....... 본능적?  본능은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니 것 같은데.”
“그렇군요. 그런데 아빠, 총독부 건물이 궁궐 자체를 훼손한 건가요 아니면 궁궐의 위엄을 훼손한 건가요?”
“둘 이상이다.”
“아빠, 이런 글을 쓸 때 꼭 셰익스피어가 필요한 건가요? 그리고 영어 문장도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니에요?”
“인용이 필요할 땐 해야지.”
“그래도 이 뻔한 말을 하면서 셰익스피어가 필요하냐고요?”
“복씨한테 물어 봐라.”
“하하. 아빠 총독부 건물이 그렇게 비싼 거였나요?”
“누가 그러던?”
“복씨가요. 여기 건물 자체가 값진 자산이었다고 되어 있어요.”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
“총독부 건물 옆에 몇 십 층 높이의 청동탑을 세운다면 건물과 청동탑 중 어느 것이 더 돈이 많이 먹힐까요?”
“그건 복씨도 모른다.”
“아빠, 옛날 미국 허리케인 때 우리 정부에서 얼마 보냈지요?”
“3천만 달러로 기억한다. 그만큼 우리의 국력이 커진 것이지.”
“3천만 달러면 얼만가요?”
“곱하기는 네가 해 봐라.”
“아빠, 그곳에 총독부 건물과 경복궁에다 몇 십 층짜리 청동탑까지 있으면 보기에 어떨까요?”
“좀 복잡해지겠지.”
“아빠, 그런데 꼭 높이 올라가 보아야 총독부 건물이 대궐을 가린 것을 알 수 있나요?”
“가려져 있을 때 모르는 사람은 올라가 보아도 모른다.”
“하하. 그렇군요. 그런데 이 아저씨는 일본 여학생에게 왜 영어로 물었을까요?”
“의사소통을 위해서였겠지.”
“그런데 제 말은 영어로 물었다는 것을 꼭 밝혀야 했느냐는 것이지요.”
“그것도 복씨 소관이다.”
“일본 여학생이 영어를 알아들었을까요? 그리고 정말 수줍게 얼굴을 붉혔을까요?”
“여학생에게 물어 봐라.”
“하하. 총독부 건물을 헐 때 유물을 많이 손상했나요?”
“그런 말 처음 들었다.”
“아빠.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꼭 그래주기 바란다.”
“하하. 복원된 뜰이 공터가 많아 친근감이 들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친근감이란 주관적 감정이니까 난 모르고 공터가 많다면 아직 복원이 덜 된 것이다.”
“원래는 공터가 없었나요?”
“마지막 대답이다. 건물로 차 있었는데 일제가 모두 허문 것이다. 아마도 복씨는 그걸 모르는 것 같구나.”
“하하하하.”

현대 한국의 계몽· 개화주의자들은 식민지 시대의 그들처럼 문장이 부정확하고 어휘에 과장이 많으며 자신을 멋있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공통적인 것은 그들이 무지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끼리 더욱 닮은 것은 자신들이 유식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경우는 선의의 계몽· 개화주의자인 것 같다.

"김영삼 정부는 풍수 정권인가? 조선총독부를 허물고 쇠말뚝을 제거하는 것은 반일이라는 이름의 전체주의이며 풍수 메카시즘이다. 기독교 장로이기도 한 김영삼 대통령이 쇠말뚝의 망령에 넘어가 21세기로 향하는 한국을 미신과 과거로 묶어 두고 있다."<월간조선>

그런데 경복궁 복원 공사 중이던 1995년 12월, 멀리 부산에서 수상쩍은 도면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경복궁 공간의 활용 방안을 담고 있는 총독부의 비밀 도면이었다. 이것은 경복궁의 건물을 마저 헐어내고 그 자리에 음악당, 분수대, 총독관저 등을 배치해 놓은 설계도면이었다.(계속)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해 보고자 하는 열망으로 쓰는 소설입니다.



태그:#조선총독부, #복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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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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