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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호의 직관

조순호는 난생 처음 한 남자를 보고 강렬한 직관을 느꼈고 그 여파로 한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물론 상대는 시골 청년 김문수였다. 그녀는 김문수의 순박하면서도 명민한 인상에 압도되었다. 까만 얼굴과 작지만 빛나는 눈도 그녀의 취향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하얗거나 눈이 크거나 뗑그랗거나 쌍꺼풀진 남자, 입술이 얇은 남자, 그리고 입을 토끼같이 오물거리며 밥 먹는 남자, 그리고 매너를 많이 따지거나 쓸데없이 친절한 남자 등과는 한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는 취향을 지니고 있었다.

조순호가 보기에 김문수는 그런 것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게다가 김문수는 행동과 말씨가 자연스러웠다. 전시회장에서 그는 자기가 여자 얼굴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중히 사과할 줄도 알았다. 그리고 그 사과에는 진실성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그녀는 김문수의 남루한 의복까지도 좋게 보였다.

조순호의 주변에는 이른바 ‘엘리트’라는 청년들이 많은 편이었다. 친척 남성들도 그랬고, 아버지의 친구 자제들도 대부분이 그랬다. 그리고 그녀가 아버지를 따라가는 교회에도 세칭 일류라는 청년들이 득실거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일본 유학을 갔다 왔거나 아니면 경성고보 출신이었다. 그들에게서 중매 신청이 들어온 것만 해도 10여 군데가 넘었다.

중매 신청이 들어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조순호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반응이라는 것은 언제나“그 사람이 왜?”였는데 그녀의 부모조차도 그런 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조순호는 가족 예배를 보고 있었다. 돋보기를 쓴 할아버지 양옆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조순호는 아들과 며느리의 호위를 받으며 한껏 근엄하게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우스웠다. 그래서 그녀는 방글거리며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다소곳이 숙였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조순호의 남동생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남동생은 독실한 신자였고 교회에서도 모범 청년이었다.

“오늘 기도는 순철이가 해라.”
그러자 남동생은 할아버지보다 더 근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외람되지만 해 보겠습니다.”

조순호에게는 남동생의 말이 때 없이 비장하게 들렸다. 그래서“큭”하고 웃고 말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눈짓을 했다. 아버지는 못 본 척하고 있었다.

찬송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도취되지 않고는 찬송가를 못 부르는 위인이었다. 할아버지는 가부좌한 무릎 위에 찬송가를 놓은 채, 두 눈은 돋보기와 함께 천정을 보며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불렀다. 찬송책은 무릎에서 아슬아슬 방바닥에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찬송은 바야흐로 몰아지경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 버얼 레 가 아튼 날 위해”

조순호는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한 번 참을 수 없게 된 웃음을 쉽게 제어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으로는 입을 꽉 막고 있었다.

찬송이 끝나자 할아버지는 아주 근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어머니에게 말했다.
"에미야, 쟤 순호는 왜 저렇게 웃는다냐?”
어머니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네, 아버님. 주의시키겠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못 본 체했고 남동생은 누나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순호를 방문한 나민혜

예배가 끝나고 방에 앉아 있던 조순호는 뜻밖에도 나민혜의 방문을 받았다. 꽤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그녀는 나민혜에게서 짙은 화장품 냄새를 맡았다

“어디에서 오는 거니?”
“그냥 집에 들어가는 길에 들렀어.”
조순호의 어머니가 소반에 식혜와 과일을 가져왔다.
“민혜는 갈수록 멋쟁이가 되는구나.”

어머니가 나가자 나민혜는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사실은 나 김문수 씨 만나고 오는 길이야.”
조순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니?”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조순호는 두근거리는 가슴이 멈추는 것을 감지했다.

나민혜의 거짓말과 스스로 느끼는 무안

나민혜는 조순호에게 말했다.
“명동 휘가로에 갔었어.”
“그러니? 김문수씨 집 가까운 데에 정릉이 있다고 하던데. 오늘 같은 날 그곳에 가면 참 좋았을 텐데.”
나민혜는 조금 무안해졌다.

“저녁은 태화관에서 먹었어.”
“굉장히 비쌀 텐데.”
“응. 알고 보니 김문수는 호남 부잣집 아들이더구나.”
“그런 말을 너한테 하든?”

나민혜는 다시 무안감을 느꼈다.
“직접 한 건 아니고 말하다 보니 알게 된 거지.”
나민혜는 자신의 그림이 선전(鮮展)에서 입선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들을 더 했다. 조순호는 나민혜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나민혜는 식혜와 과일을 거의 혼자 먹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조순호가 나민혜에게 물었다.

“너 태화관에서 조신하게 보이려고 조금만 먹은 거 아니니?”
나민혜는 세 번째로 무안해졌다. 그녀는 이만 가보겠다고 말했다. 나민혜는 대문까지 배웅 나온 조순호에게 말했다.
“참, 김문수 씨가 고향 집으로 한 번 초대하겠다고 했어.”

그녀는 조순호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어둠 때문에 일순 흙빛으로 변하는 조순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방에 들어온 조순호는 유달리 방의 불빛이 어둡게 느껴졌다. 잠시 후 안정을 찾은 그녀는 작은 근심거리로 마음을 쓰고 있었다.
‘시골 부자라는 게 알고 보면 뻔한데...’
그녀는 김문수를 걱정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소모적인 친일 논쟁보다는 극일에 성공한 매혹적인 인물들의 삶과 사랑을 그림으로써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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