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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세상에 대한 개인의 관점은 '이론과 경험'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엮어질 때 성립된다. 즉 어떤 이론을 대충 알고 있는데 정말로 이를 검증해주는 경험을 체험할 때와 자신만의 경험을 속시원하게 정리해주는 이론을 만났을 때 개인이 세상에 접근하는 프레임이 형성된다.

 

나는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고 현재 시간강사이다. 필연적으로 사회적 '차이'를 설명하는 많은 이론을 접한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 '모든' 차이에 대한 관심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을 대변해주는 특정 경험들만이 추상적인 이론을 만나게 되면서 개인의 관심사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종교, 교육' 등이 그러하다. 이는 나와 유사한 경험이 없는 타인에게는 (나의 논지가) '궤변'으로 보일 각오를 마땅히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여성문제를 공부하는 동료들은 나에 대한 원망이 많다. 경험하지 않은 자는 사고의 한계가 어쩔 수 없다는 푸념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내의 출산 전 준비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그렇다. 나도 이제 출산과 육아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자다.

 

병원과 산모의 만남... 비합리적인 비용지출의 시작

 

아내가 임신 37주차를 넘겼다. 이제 곧 출산이다. 어쩔 수 없이 지난 수개월의 출산준비과정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이 경험이 있기 전에 나는 출산에 관한 여러 사회적 담론을 지극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종교적인 입장에서 출산은 '축복'만이 존재한다. 암 물론이다. 경제학적 입장에서는 '비용'의 문제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한 소리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이 두 가지 담론이 아주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는 "축복의 잔치에 비용문제를 따져서는 아니 될 것이다"는 훈계를 탄생시킨다. 그렇다. 한국사회에서 출산에 관한 여러 가지 비용 지출의 합리성을 묻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다. 사실 거의 모든 예비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고 있기에 '금기'라는 것도 틀린 말이다. 그냥 아무도 묻지 않고 따지지 않는다. 사사로운 인간감정으로 새로운 탄생을 욕되게 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일까?

 

비효율적인 출산준비는 병원과 산모의 만남으로부터 출발한다. '임신 전 검사'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우리 부부는 "풍진이 있을 경우"로 시작되는 검사의 당위성에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검사를 받았다. 물론 이러한 부정론에 근거한 진료는 대개 보건소에서 하지 않는 것이다. 보건소 진료가 안 되는 것은 보험 적용도 잘 안 된다. 시작부터 꼬인다. 그런데 대개 이 꼬이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그게 더 무섭다.

 

임신 전 검사는 12만원이 들었다. 물론 병원마다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비교검색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의 최저가는 소비자가 '유통구조의 절감으로 마진을 줄인' 식의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산부인과의 가격검색은 단연코 '가격이 높으면 그만큼 정확한'이라는 합리화를 동반한다. 누군가가 출산, 육아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검사목록과 가격차이를 설명하여도 댓글은 간단하다. "그 곳 의사 선생님이 아주 잘 보신다."

 

검사를 했다. 아무런 이상이 없단다. 그리고 끝이다. 피도 뽑고 했는데 무슨 검사결과에 대한 문서라도 보고 싶다고 하니 장당 500원이란다. 총 4장이란다. 그런데 완전 영어투성이다. "임신이 가능하니까 걱정 말라"는 소리뿐이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나도 알고 있다. 12만원을 투자해서 풍진과 관련된 지식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기형아 검사는 무조건 받아야 하는 의무일까?

 

아내는 초음파 검사를 내진 때마다 받는다. 남편의 협박 때문에 의사가 오라는 날짜보다 3-4주 늦게 간다. 한 번이라도 덜 받자는 속셈이다. 그런데 기형아 검사를 앞두고 의사는 똑부러지게 말한다. 이 검사는 정확한 주수에 받는 것이 중요하니까 꼭 제 날짜에 와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보건소에서 하지 않는 검사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당연히 보험적용이 아주 적다. 역시 10만원이 넘는다. 아울러 "양수검사는 70만원 가량 된다"는 하소연이 많다. 양수검사에 비하면 가격 가지고 징징거릴 사항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린 이 검사를 거절했다. 이 경우 종교적인 이유로 태아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출산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경우와 높은 비용 때문에 거절하는 것이 주 이유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이런 검사에 대한 필요성과 비용의 문제 등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늘 바쁜 그 병원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예비엄마들의 심리적 상황이 참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거절은 거절이 아니다. 거절이란 제의가 들어올 때의 반응이다. 우리는 억지로 이 검사를 무마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1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면서 검사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하지 않는 의사도 참 의아하다. 원래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인가?

 

마치 추후 모든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두렵다

 

이런 상황은 계속된다. 정밀초음파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10만원이 넘는다. 그런데 이것은 무마시키지 못했다. "정밀초음파로 태아의 신체적 문제를 파악하면 지금부터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의사의 설명 때문이다. 이는 추후 태아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 "그때 정밀초음파 했었으면"이라는 삶의 짐을 평생 부과할 수 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나야 괜찮지만 한국사회에서 이런 문제의 압박은 주로 여성에게만 부과됨을 간과할 수 없다. 아낄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지도 못했다는 비난을 아내에게 주긴 싫었다. 그래서 받았다. 그리고 사진 몇 장과 동영상 파일을 받았다.

 

 

출산 전 검사 역시 보너스다. 출산 전에 검사를 해야 할 것이 많단다. "당뇨가 있을 경우 출산에" 이렇게 시작되는 의사의 설명은 협박 대상이 아주 현실적이다. 지금까지 뱃속에 태아를 둘러싼 경고였다면 이제는 누구나 두려워하는 출산에 임박한 산모에게 그 판단의 척도를 부과시킨다.

 

물론 10만원이 넘는다. 문제가 있을 경우 전화해 준단다.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끝이다. 헌혈만 해도 나타나는 간 수치라도 이 기회에 한번 보여주면 좋을 터인데 말이다. 그래서 다음 내진 때 상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하지만 "걱정말라"는 소리뿐이다.

 

앞으로 이러한 무력한 예비부모의 모습은 무한대다. 자연분만은 전액 건강보험에서 지원되지만 이 병원에서는 누구나 20~30만원의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병원이 불법이라는 것이 아니다. 이 돈은 자연분만 이외에 여러 가지 검사들이 '자연스럽게' 부과되면서 발생된다. 하지 않을 경우 추후 결과론적 부담이 너무나 크다. 의사의 말을 들어야지 누구의 말을 믿는다 말인가. 무식한 게 죄다.

 

그래. 무식하니까 똑똑한 의사의 말을 들어야 한다. 암, 그렇고 말고. 옭고 그름을 떠나 복잡하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곧 출산이다. 축복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온갖 날카로운 입장만을 유지하면 태교에도 좋지 않단다. 그래 병원에선 큰 소리쳐도 절대 유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메커니즘이 '산부인과'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합리적 비용지출의 '필요성'을 묻지 않는 태도는 사실상 한국사회에서 출산과 육아에 관련된 모든 범주에서 발생한다. 요 며칠 출산용품을 구입했다. 가관이다. 비싼 가격도 문제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둘러싼 예비부모들의 반응이다. 왜 비싸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비싼 이유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구도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단연코 산후 조리원이다. 속 터지는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겠다.

덧붙이는 글 | 출산준비에 대한 소고를 다음과 같이 연재합니다. 

(1) 검사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산부인과. 묻지 않는 산모
(2) 출산용품 준비의 숭고한 이유?
(3) 산후조리원에 가면 정말로 나중에 늙지 않나요?
(4) 왜 그런것일까? 한국적 생명존중의 부작용인가?

개인블로그에도 올립니다. http://blog.daum.net/och7896


태그:#출산, #육아, #산부인과, #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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