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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뚱뚱하다"고 하면 "그래, 좀 쪘나 보네"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어릴 적에는 비교적 마른 편이었다. 그땐 좀 어려웠던 시절이라 적당히 배 나온 사람이 '사장님같다'고 생각하면서 살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살이 찐 사람도 거의 없었다.

 

커서는 홍서범의 노랫말처럼 '160센티미터의 키에 45킬로그램 몸무게'는 아니었지만, 160센티미터 키에 48kg정도였다. 55사이즈 옷은 겨우 들어갔지만 불편했고, 66사이즈는 편하게 입을 수 있었다. 해서, 가끔 옷을 사러 가도 사이즈가 없는 경우는 없었다.

 

20여년 전 덩치가 좀 있었던 친구가 "아이, 옷을 사려고 해도 사이즈가 잘 없어" 하면, 나는 속으로 '옷가게에 왜 사이즈가 없어' 하면서 이해를 못 했다. 또, 통통한 친구가 "난 청바지 입고 허리 자신감 있게 내고 벨트 해서 입어봤으면 좋겠어" 라고 할 때, '그렇게 입으면 되지' 하면서 영 공감을 하지 못했다.

 

그랬는데, 결혼과 출산으로 거의 60kg이 된 지금은 그때의 친구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된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겪어봐야 그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나 보다.

 

날씬한 사람만 예쁜 옷 입을 권리가 있다?

 

몇 년 전, 남편의 양복을 사러 상설할인매장에 함께 갔다. 본인의 것만 사는 것이 뭐했는지, 남편은 나에게 옷 하나 골라 보라고 했다. 별로 옷을 사고픈 마음은 없었지만, 여자라 그런지 예쁜 옷에 시선이 자연스레 멈추게 되었다.

 

내가 옷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고는 점원이 다가와 "이건 치수가 없어요" 한다. 다른 몇 벌도 똑같은 말을 하길래, 그럼 치수가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 물었다. 얼마 안 되는 몇 가지를 집어 주는데 내가 원하는 것과는 영 관계가 멀어 보였다.

 

뚱뚱한 사람이 괜찮은 브랜드의 옷을 입으면 그 가치가 떨어지는가? 이건 남성복보다 여성복이 더 심하다. 상대적으로 허리가 더 굵은 남편의 양복사이즈는 있는데, 내 몸에 맞는 사이즈는 없었다. 거의 웬만한 옷은 66사이즈에서 멈췄고 77사이즈는 간혹 있었다.

 

"내가 사 주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 치수가 없어서 못 산기데. 내가 사주는 것이 싫은 게 절대 아니다."

 

매장을 나서며 던진 남편의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축 늘어진 나에게 남편은 "다음에 살 빼가 사러 오자"고 했는데, 지금도 이 살은 당최 빠지지 않으니. 당시나 지금이나 내 살에 대한 마음보다 '어찌 옷도 마음대로 살 수 없는지' 그 부분에 더 화가 났다. 우리나라 의류회사들이 좀 더 넒은 사이즈의 옷을 만들면 안 되는 것인지.

 

저울에 올라 몸무게 수치가 올라가는 것보다 옷매장에서 직원이 나를 보고 "치수가 없어요"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원천적으로 박탈되는 것 같아서 비참했다. 물론, 큰 사이즈의 옷을 파는 매장으로 가면 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일반 매장에서도 선택의 권리를 누리고 싶다.

 

날씬한 사람만 예쁜 옷을 입을 권리가 있는가? 나처럼 뚱뚱한 아줌마도 가끔은 그런 옷을 입고 싶다. 그렇다고 마흔 언저리에 벌써부터 50~60대 아줌마 메이커로 이동하고 싶지는 않다. 몸은 그럴지언정 마음은 아직 젊다. 아직, 아줌마 소리도 익숙하지 않은데….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러다 보니 허구한 날 청바지에 티, 아니면 편한 등산복 차림, 그도 아니면 그저 그런 블라우스에 편한 고무줄 치마가 내 패션의 전부이다. 물론, 치장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평상시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옷을 구경할 때면 불쑥불쑥 짜증이 밀려온다.

 

'이 놈의 단추는 왜 이리 뽀뽀가 안 되는 거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늘 날씨도 후텁지근해서 답답하던 차에, 아이가 길 건너 마트에 책을 보러 가자고 했다. 해서, 아이와 마트에 갔다. 아이는 정신없이 책을 보고, 시간도 때울 겸 여기저기 구경하다 결혼 전 좋아하던 메이커 옷을 싸게 팔고 있어서 발길이 멈췄다.

 

옷도 예쁘고 가격도 괜찮아서 마음에 드는 것을 몇 벌 골랐다. '이 옷이 내 몸에 맞을까? 설마 입다가 찢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입다가 작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얼른 벗어 놓아야지'했다. 더구나 간만에 원피스를 입고 싶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가격도 착해서 골랐는데 역시나 품이 작아서 살 수 없었다.

 

66사이즈는 작고 77사이즈는 되어야 하는데 요런 예쁜 옷들은 대개 55사이즈, 66사이즈에서 마감이다. 내 살을 원망해야 하는지 옷을 만드는 회사를 원망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포기 하고 속옷 코너에 가서 남편의 팬티를 골랐다. 남편은 105사이즈인데 작은 것 같다고 110사이즈를 사오라고 했다. 행사로 싸게 파는 곳이 있어 갔다. 사이즈는 95, 100, 105 거기가 끝이었다. 일반 매장에 가도 대개 105사이즈에서 멈추었고, 어쩌다 생소한 브랜드에서 110사이즈를 찾을 수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남편이나 나나 살이 좀 있는 편이지만 그렇게 '아이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옷을 구매할 때 비애를 느끼는데, 덩치가 좀 있으신 분들은 옷을 살 때 참 마음이 아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을 위해서 살을 빼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살이 있는 사람도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 의류회사들이여, 좀 더 큰 사이즈의 예쁜 옷을 만들어 주면 안 될까?


태그:#옷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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