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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은 한여름이다. 개막식 다음날인 8월 9일,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문화거리인 난뤄구샹(南锣鼓巷)을 찾았다. 1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이지만 후통(胡同, 베이징 옛 골목) 사이로 베이징 전통가옥인 사합원(쓰허위엔, 四合院)이 가득한 곳이다.

 

베이징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거리 중 하나인 난뤄구샹은 일찍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지금은 술집도 생겼고 공예품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섰지만 다른 곳에 비해 최근에 알려진 곳이라 외국인들의 손때가 비교적 덜 묻어 여전히 옛스런 모습이 많이 남아있으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비교적 평범한 거리로 한산하다. 베이징 집집과 차량마다 걸린 오성홍기는 이곳에도 여지없이 펄럭인다.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 걸었더니 땀으로 사우나를 했다. 거리에 걸터앉아 물 한잔 마시는데 바로 옆에 올림픽지원자(자원봉사자) 옷을 입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부채 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있어 말을 걸었다. 친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지원자 허우진시(侯金喜, 48세)와 말을 트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지원자들은 마을지킴이처럼 수상한 사람을 관찰하기도 하고, 때로는 길을 알려주기도 하는 사람이다. 길을 물을 필요는 없었다. 이곳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생생한 목소리로 듣고 싶었다.

 

허우씨는 내가 '이곳이 언제 생겼는지', '원래 무엇하던 곳이었는지'라고 말을 건넬 때마다 계속 동문서답처럼 '중국말을 어떻게 잘 해?', '베이징에 대해 많이 알아?', '이곳 처음이야?'라고 되물으며 좀체 성의를 다하지 않아 답답해졌다. 게다가 먼저 '골목 안으로 들어가서 다 보고 오면 대답해줄게'라며 약간 피하려는 듯했다. 인상 좋게 생긴 모습과 달리 말이다.

 

어렵게 말을 건넨 보람도 없이 그냥 물러서기가 싫어 '베이징에서 중국어 공부했고 6개월 동안 중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글도 쓰고 지금은 베이징 취재 왔다'고 하며 '중국문화를 좋아한다'고 하자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그러면서 시험을 보자고 하며 대뜸 '먼당후두이(门当户对)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어렵다. 대충 문 어쩌구 하는 듯한데 '솔직히 모른다'고 했더니 약간 실망한 듯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갑자기 따라오라고 한다.

 

난뤄구샹 골목 안쪽으로 몇 발자욱 들어선 뒤 집 앞 문을 찍으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먼당후두이'라고 하며. 한참 설명을 듣자니 바로 문 위 아래에 있는 표시를 뜻하는 것으로 일종의 고사성어이다. 남녀가 결혼을 할 때 사회 지위와 경제 수준이 서로 엇비슷한 상대와 만난다는 뜻이란다. 집 문 앞에 그 집의 지위와 수준을 드러낸다는 것으로 예전에는 모든 집마다 위에는 둥근 나무로, 아래에는 돌로 무늬를 새겨두었단다. 원나라 시대 쓰여진 <서상기(西厢记)>에 나오는 말로 소설 <홍루몽(红楼梦)>에도 등장한다.

 

허우씨의 말에 의하면 난뤄구샹은 원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마을인데 지금 거리는 청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원래 '징(锣)'이나 '북(鼓)'을 팔던 거리인데 개혁개방 이후 점차 문화거리로 바뀌었고 지난해 지금처럼 새롭게 단장을 했다.

 

또다른 '먼당후두이'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따라 간 곳은 바로 허우씨의 자택. 베이징 전통가옥인 사합원이 어떤 구조로 된 것인지 아느냐고 또 묻는다. '문으로 들어가 3면 모두가 방인 사각형 구조가 아니냐'고 했더니 힐끗 쳐다보며 웃는다. 아니라는 뜻인가 보다. 중국문화 좀 안다고 우쭐한 것이 창피했다. 그러고 보니 베이징에 오래 살면서 사합원 안에 쑥 들어가 본 적이 없지 않은가.

 

허우씨의 사합원 문과 아까 그 문의 '먼당후두이' 문양이 달랐다. 바로 무관과 문관 벼슬을 한 사람의 차이라고 한다. 허우씨 집은 문관이 살던 집이었다. 오른쪽 왼쪽 왔다갔다 하며 좁은 틈으로 이뤄진 공간을 헤치고 들어갔다. 사합원은 하나의 문 안으로 들어가면 동서남북 방향으로 장방형 집이 각각 따로 구성된 곳이니 삼면이 방이어서 사각형으로 구성됐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엄연히 달랐다. 게다가 한가운데에 집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방을 러우팡(楼房)이라 하고 각 방위별로 둥팡(东房), 시팡(西房), 난팡(南房), 베이팡(北房)이라 부른다.

 

 

허우씨 집은 시팡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이 2칸 방과 거실, 부엌으로 이뤄져 있다. 어머니, 아들과 함께 산다. '아들친구(儿子的朋友)'를 소개해주는데 여자친구이니 아마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며느리일 듯 싶다. 흰털 강아지가 짖어대는데, 한 1분 정도 지나니 조용해졌다. 강아지 이름은 귀염둥이란 뜻으로 '과이과이(乖乖)'이다.

 

인자하게 생긴 허우씨 어머니는 조용히 앉으라 권한다. 허우씨는 개혁개방 이후 사회 발전이 이뤄졌지만 이곳에는 아직 일반 서민들의 '펑마오(風貌, 풍모)'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시 정부는 수많은 후통과 사합원들을 도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많이 재개발했다. 갈수록 이런 서민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으니 이처럼 허우씨 집에 초대된 것은 드문 경험일 듯 싶다.

 

허우씨는 비둘기날리기 대회에 나가기 위해 옥상에 비둘기를 키운다고 한다. 베이징 사람 특유의 얼화(儿化)를 섞어 '허핑더걸(和平的鸽儿, 평화의 비둘기)' 보러 가자며 방긋 웃는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사합원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을 둘러보니 각 방향마다 일렬로 집이 반듯하게 보이는 그야말로 사합원이다.

 

 

 

옥상 작은 공간에 있는 비둘기집 문을 여니 비둘기들이 후다닥 뛰쳐나왔다. 옥수수, 보리, 콩 등을 섞어 만든 새 양식을 주니 비둘기들이 모이를 앞다투어 주워 먹는다. 강아지가 비둘기들과 장난치는 모습이 서로 잘 아는(?) 사이인 듯하다.

 

옥상에서 본 하늘은 약간 뿌옇다. 벽돌로 만들어진 사합원 집 지붕을 보니 베이징 전통가옥이며 서민들의 안식처가 기나긴 역사의 무게까지 담아오는 듯하다. 허우씨는 또다시 대뜸 나이를 묻는다. '나보다 세살 아래네(你比我少三岁)'라고 했다. 바로 '형(大哥)'이라고 했더니 너무 좋아한다.

 

그렇게 우리는 형제가 됐다. 다음에 꼭 다시 찾아오라고 한다. 당연하다. 이렇게 좋은 친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한국사람에게 자기의 집을 활짝 열어 보여준 고마운 중국 사람이다. 베이징 서민문화에 대해 해박한 허우씨와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술 한잔 깊게 기울일 생각이다.

 

 

난뤄구샹 거리는 베이징의 다른 문화거리들에 비해 느낌이 다소 달랐다. 아마도 옛 거리의 본래 생김새에 따라 조금씩 그 차이가 느껴지나 보다. 역시 징이나 북을 팔던 곳이라 더욱 문화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거리 양 편으로는 각각 8개의 골목, 즉 후통이 연이어 있다.

 

사합원 집을 개조한 가게, 술집들이라 분위기가 보다 더 옛스럽다 하겠다. 이곳을 소개하는 책자마다 '가장 특색 있는 술집 거리(非常特色的酒吧街)'라고도 하고, '가장 완전하게 보존된 사합원 마을(保护最完整的四合院区)이라 한다.

 

 

 

회색 벽에 기대어 거리를 봐도 좋고, 거리에 세워진 자전거 바퀴 살 사이로 봐도 멋지다. 공예품 가게마다 자연스레 발길이 닿고 이모저모 만져보고 가격 흥정도 해본다. 올림픽 분위기가 이곳 거리에도 잔뜩 묻어나는데 아마도 곳곳에 휘날리는 깃발들 때문이리라.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도 한적한 분위기를 즐기듯 한가롭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거나 떼지어 지나는 자전거족들을 빼면 바람결마냥 조금 흔들릴 뿐 요동 치는 거리가 아니다. 연인들은 더위와 피로를 잊으려고 그늘에 앉아 간식을 나눠먹는 풍경도 예쁘다. 공예품 가게의 유리창으로 반사되는 모습은 낭만도 흘러나온다.

 

명청 시대에는 '부자 마을(富人区)'이라 불리며 고관대작들이 살기도 했고 청나라 말기에는 북양군벌의 터전이었으며 국민당 총재이던 장제스도 이곳에서 살았다. 허우씨의 말처럼 베이징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부자들은 도시 중심에서 벗어나 아파트나 별장에서 살고 이제는 일반 서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아 그 전통의 향기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www.youy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베이징올림픽, #사합원, #올림픽지원자, #난뤄구샹, #문화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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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북경대전 : 2008 베이징올림픽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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