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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가 얼마 전 시각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속초의 한 물놀이장(워터피아)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물미끄럼틀 등 놀이시설이 갖춰진 가족 물놀이장에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인 한 무리가 들어섰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물미끄럼도 한 번씩 타보자"며 미끄럼틀로 향했다. 물미끄럼틀의 종류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깔판 없이 타는 1단계(아동용)이고 다른 하나는 깔판을 놓고 타는 2단계였다.

미끄럼틀 앞에서 안전요원들이 무리 앞을 막아섰다. 시각장애인들은 탈 수 없다는 것이다. 꼬맹이들도 마음껏 타는 물미끄럼틀을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탈 수 없다니…. 기가 막혔다.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다쳐도 물놀이장 측의 책임은 없다'는 식의 문구가 적힌 종이에 사인을 하고서야 미끄럼틀을 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나마도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건 1단계인 아이들용 미끄럼틀뿐이었다.

그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이를 인권위원회에 고발을 해야 할지 아니면 물놀이장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남겨야할지 고민 중이라 했다.

시각장애인들이 마라톤을 하고, 수영을 배우고, 악기를 연주하며, 때로는 무서운 놀이기구를 즐기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비장애인들은 흔히 '시각장애인이 그런 것도 해?'라는 반응을 보인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낳은 에피소드들 중 작은 단편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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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미끄럼틀 -
ⓒ 빛이 머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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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놀이장 안전요원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동의서에 서명을 하게 한 것은 명백한 차별이 아닌가.

정말로 장애인의 안전을 걱정했다면 미끄럼틀 아래에 안전요원을 한명 더 배치하여 위험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안전에 대해 스스로 책임진다는 내용에 서명하게 한 것은 자신들의 책임회피를 위한 수단일 뿐, 진정 장애인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는 날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점자도서관 월간지 <빛이 머문 자리>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태그:#시각장애, #한국점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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