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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

 

우리 어머니

오늘도 아예 까놓고 그러신다.

민망하게

 

푸른꿈 고등학교 강의 다녀와서

콩 국수 해 드릴 국수다발을 의기양양 내 놓고

"다녀 왔습니다."

넙죽 절을 했더니

 

"벌쌔오나? 그다네 댕기오나? 늦게 올 줄 알았띠 벌쌔 오네. 그래 내 아들이다."

어찌나 반가워하시는지.

 

내가 한 숨 돌릴 새도 주지 않고 상찬이 이어진다.

"만날 봐도 방가와 우리 아들. 만날 봐도 와 이리 방가욱꼬?"

 

민망스럽기도 하고 점심이 늦기도 해서

옷도 못 갈아입고

바로 부엌으로 가면서

"콩 삶아서 갈아가지고 콩 국씨 해 드릴게요."했더니

내 뒤통수에 대고 한참을 계속 하셨다.

 

"만날 웃는 얼굴이라. 된 줄도 모르고 만날 웃응께 내가 머락 칼 수가 있나."

"없으믄 돌라 칼 줄도 모르고 배고파도 더 달라 칼 줄도 모르고 커디마는 저기 한 번도 얼굴 안 찡그리고 힘들단 말도 없이 만날 웃어."

 

아.

우리 어머니.

오늘 아침 일을 까맣게 잊으셨군.

 

아침에 콩 국수를 해 달라고 해서

콩은 있는데 국수가 없어서 사다가 점심 때 해 먹자고 했더니만

 

"지 에미가 오죽하믄 그락까이 집 앞에 점빵에 가서 사 오믄 되지!"

대 놓고 푸념을 하셨었다.

"대신 누룽지 끓여드릴게요" 했더니

내 앞에선 알았다고 하고선

내가 방을 나오기 무섭게 내 뒤통수에 대고는

"저기. 지가 처먹고 시픙께 누룽지 끄린닥카지 잉가이 지 에미 생각해서 저랄락꼬?"

라고 하셨다.

 

밥상을 치우고 한참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강의 준비하랴 비온 뒤라 마당 정리하랴

몸이 두 쪽 나게 나대다가

우리 어머니 뭐 하시나 방에 다시 들어와서

"어머니. 또 나가서 설거지 하고 올게요" 했더니

"응"

하시더니만

방문을 채 닫기도 전에 역시 내 뒤통수에 대고

 

"이제까지 무슨 지랄하고 인자서 설거지 한닥꼬 찌랄학꼬."

라고 하셨다.

 

이럴 때는 분명 내력이 있는 법.

나는 아예 문 뒤에 몸을 숨기고 어머니 푸념을 엿들었다.

 

집에 있는 맛있는 거는 손님 오면 아까운 줄 모르고 다 퍼 준다느니

손님들이 다녀가고 나면 이것저것 다 없어진다느니

화장실 만날 청소 해 봐야 길가 가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와서 싸 놓는다느니

설거지부터 해 놓고 딴 일을 보야지 일 순서를 모른다느니

일 순서를 모르면 저만 생고생 한다느니

그리고는 늘 마지막에 덧붙이는 말

"저래각꼬 저기 언제 사람됙꼬 츳츳."

하는 말씀이었다.

 

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 처지에서 옛 사람 살림살이 기준으로 보면 딱 맞는 말이었다.

 

아침 일을 한 토막도 가슴에 남겨 두지 않으신

우리 어머니

콩 국수를 점심으로 맛있게 드시더니

 

지금 봉투를 붙이고 계신다.

 

라벨용지를 인쇄해서 봉투와 함께 드리면서 

붙여 보라고 했더니

삐뚤빼뚤 열심히 붙이신다.

거꾸로 붙이기도 하고

봉투 하나에 여러 장을 붙이기도 해서

다시 뜯어내게 해서는 풀로 다시 붙이게 했다.

 

<똥꽃> 공동저자로서의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시는지

이웃들에게 우송하는 책

근 50장 봉투 라벨을

다 붙이셨다.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이

참 좋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치매, #똥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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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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