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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당신이 영애씨가 맞단 말인가?

 

<막돼먹은 영애씨>(tvN 매주 금요일 밤 11시 방영)가 시즌 4로 돌아왔다. 내 비록 막강 본방 사수파는 아니지만, 영애씨의 막돼먹은 매력을 아직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그 매력을 설파함으로써, 영애씨 시리즈의 장수를 기원하는 막강 지지파는 기꺼이 된다고 자부해 오던 터였다.

 

그런데 반가워 마지않던 시즌 4를 보던 어느 순간 넋이 툭 빠져 그만 침을 쏟으며, "정녕 당신이 내가 알던 영애씨가 맞단 말이에요?"를 뇌까리고 말았다.

 

왠지 모를 기시감으로 충만했던 그 장면의 영애씨는 오히려 낯설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할게, 라고 조아리면서 화가 잔뜩 난 원준씨에게 매달리는 영애씨. 왜 이러세요, 안 그러셨잖아요, 늙었다고 치이고 살 쪘다고 놀림 받아도 "그래서 뭐 어쩌라구!"하며 기똥차게 눈 부라릴 줄 알았던 영애씨는 도대체 어디 가셨단 말입니까?

 

처음 원준씨가 샤방한 얼굴로 배실거리며 영애씨의 사무실에 들어설 때 사실 그는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얼굴 샤방한 것과 아버지가 돈이 많다는 것 말고는 세상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만한 매력을 찾기가 어려웠다.

 

만일 원준씨가 얼굴 되고 돈 있으면 세상 살아가는데 불편함 없다고 생각하는 허약한 어린애라면, 불의를 참지 못하는 영애씨의 강직함을 평가절하할 것이다. 그래서 다소 걱정이 되면서도 강직한 영애씨가 허약한 원준씨를 힐끔거릴 때, 그래, 세상에 널린 꽃미남들 구경도 좀 하면서 살아야지, 하며 영애씨를 핀잔주지 않았다.

 

그 매끈매끈한 얼굴과 뽀송뽀송한 미소에 넘어가지 말기를, 그에게 어필하기 위해 영애씨의 강직함을 훼손하지 말기만을 바라면서. 영애씨의 매력은 절대적으로 그 매력을 평가절하 하는 사람에게 가을서리처럼 냉혹하지만 한줌일지언정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봄눈처럼 녹아드는 것이기 때문에, 원준씨가 영애씨의 매력을 몰라준다면 그냥 핑! 무시해버려도 가슴 아프지 않을 만큼만 힐끔거리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원준씨는 시즌이 거듭되면서 변화해왔다. 집은 꼴딱 망하고 나영에게 홀딱 속고,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큰 키 자랑하며 서 있을 힘도 없다는 것을 처절히 깨달은 후 "당당한 선배가 좋다"며 영애에게 고백을 한 것이다.

 

영애씨는 여전히 뚱뚱하고 나이는 덧없이 쌓여가고 연애는 지리멸렬하고 비즈니스는 지지부진이지만, 막돼먹은 품성을 사포로 문질러가면서까지 세상에 맞춰 살려고 하지 않는 영애씨를 바라보는 원준씨의 시선이 변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의 강점이 있다.

 

영애씨와 원준씨의 캐릭터가 붕 떴어요

 

많은 드라마들에서 사회적 자산의 정도가 심하게 불균형을 이루는 커플의 해피엔딩을 보여줄 때, 대부분 보잘 것 없는 여자가 잘난 남자 만나 인생 역전하는 스토리였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가장 굵직한 비법은 사회적 자산이 없는 쪽이 내가 당신의 피그말리온이 될게요, 라며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그 남자가 재벌 2세라면 재벌가 며느리에 손색없는 여자로 거듭나야 한다. 화장 따위 전혀 하지 않고 살던 똑순이 같은 여자라도 하이 소사이어티 게스트들을 멋지게 접대하기 위해 가든 파티 전에 두어 시간쯤은 몸치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남자는 백조가 될 자질이 있는 미운 오리를 발견하고 백조로 만드는 기쁨을 얻고, 여자는 남자에게 선택된 후 백조로 변신할 때 둘은 손을 잡고 웃는다.

 

시즌 4의 영애씨가 속절없는 대사를 주억거리는 장면에서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던 것은 숱한 다른 드라마들에 길들여진 탓이었을 것이다.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가 그 동안 사랑받았던 것은 그런 불편한 기시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는데, 영애씨와 원준씨의 캐릭터가 길을 잃고 붕 떠버린 것 같았다.

 

변한 영애의 모습이 사실 더 '리얼'하다고 주장하는 시청자들이 있다. 나도 연하남을 사귀는데 진짜로 영애씨처럼 집착하게 되더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저런 마음가짐이 되는 거 다 이해가 가는 거 아니냐, 사랑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도 좀 하고 위치 추적 해보는 것쯤이야 세상에 널리고 널린 일이다, 고 말이다.

 

드라마 게시판에는 "영애씨가 왜 그러죠?"라며 강력하게 의문을 품는 의견들 못지않게, 리얼한 드라마를 표방하는 <막돼먹은 영애씨>가 그런 모습 보인다고 해서 당혹해 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수런거린다.

 

문득 리얼하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풍경을 눈에 보이는 대로 글로 옮기는 것은 '리얼'이 아니라 그냥 글재주이다. 풍경에서 통찰을 찾아낼 수 있도록 글 속에 사회의 면면을 뾰족뾰족하게 담아야 '리얼'한 글이다.

 

<동물의 왕국> 류의 프로그램을 리얼하다고 보는 것은 동물들의 군집 생활에서 인간 사회의 면면을 발견하기 때문이지, 동물행태학자도 아닌데 그냥 풍경 자체만을 재미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벌어지는 일을 없다고 숨기거나, 벌어지지 않는 일을 있다고 우기지 않는 것만으로 '리얼'한 드라마로서 지지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준씨를 지키고 싶은 영애씨의 사정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서 영애씨가 예전의 '리얼'한 모습을 잃었다고 힐난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 외모에 지독한 열등감을 가진 여성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몇 명을 선택해서 성형시술을 시켜주는 것이 있었는데, 모 케이블방송에서 방영될 때 제목이 <미운 오리 백조 되기>였다.

 

시술을 받고 열등감에서 벗어난 그녀들은 전부 눈물을 흘리며 이제 자신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한국에도 현재 모 케이블방송에서 이와 같은 포맷으로 외모 때문에 주눅 들어 살던 여성들에게 성형시술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성형수술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의 전형적인 것은 "자신감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외모 때문에 놀림 받던 시절의 상처를 딛고자 성형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사정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형시술이 외모지상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만능의 치료법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성형을 하지 않고도 자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을 지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성형 하지 않고 강직하게 사회의 '리얼'한 평가 잣대들을 돌파하는 캐릭터들이 나오는 드라마가 '리얼'한 드라마로서 지지 받는 것이 아닌가?

 

영애씨는 외모와 재산과 능력과, 특히 여자에게는 어린 나이를 사회적 자산으로 평가하는 사회에 맞춰서 자신을 굳이 변신시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당당하게 살아가는 강직한 여성이었다. 그래서 영애씨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지지했으며 환호했다.

 

영애씨의 변신은 <막돼먹은 영애씨>가 누리던 찬사를 거스르는 일이다. 만일 시즌 4에서 이후 영애씨가 더 강한 파워를 내뿜는 캐릭터로 발전하기 위해 드라마틱한 장치를 둔 것이라면, 그것 또한 제작진의 오산이다. 영애씨는 드라마틱한 드라마를 사는 캐릭터가 아니라 일상적인 드라마를 살아 온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영애씨, 다시 중심을 잡아 주세요.


태그:#방송 프로그램 리뷰, #TVN, #막돼먹은 영애씨, #다큐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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