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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온 '옥탑방 여자(이유하)'와 '반지하 남자(김귀현)'가 있습니다. 푸른 꿈을 품고 서울에 왔지만, 이들의 자취생활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밥 먹는 것부터 빨래하는 것까지, 자취경력 일천한 이들에겐 모든 일이 힘겹기만 합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생생한 자취 이야기를 기사로 만나보세요. 매주 1~2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일요일(11월 30일)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토요일 밤에는 새벽까지 책도 읽고, 인터넷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곤 알람시계를 맞춰 놓지 않은 덕에 만족스러울 만큼 푹자고 일어난 상태였다.

머리는 개운했고, 해야 할 일은 오후 4시에 맞춰 있어서 여유도 있었다. 영화를 볼까 쇼핑을 할까 고민하다가 쌓여둔 집안일부터 처리해야겠단 생각에 세탁기를 돌리고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너무나 완벽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러나 불행의 씨앗은 사소한, 정말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라면을 끓여서 작은 탁자에 올려놓고, 라디오 볼륨을 높인 후 막 면을 밀어 넣으려는 찰라 내 머릿속에는 뜬금없이, 주책없이, 쓸데없이,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라디오에선 경쾌한 <맘마미아>의 주제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라디오 소리가 좀 크나? 아래 집까지 다 들리는 거 아냐?"

그렇다. 이 사소한 내면의 목소리가 앞으로의 커다란 사건을 예고할 줄이야. 그땐 몰랐다. 쓸데없는 것만 실천에 옮기길 좋아하는 나는 라면을 한 젓가락 집다 말고 밖에 나가서 라디오 소리가 복도에는 얼마나 들리는지 들어보려고 했다.

일요일 아침, 눈곱도 떼지 않은 나에게 일어난 사건

아직 눈곱도 떼지 않은 얼굴에 '추리닝' 바지, 긴팔 티셔츠 한 장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을 닫고 소리를 들어보았다. 허걱, 소리가 꽤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앞으로는 볼륨을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방문을 돌리는 순간, 아악! 문이 그만 잠겨버린 거다.

이건 뭐 호텔도 아니고 옥탑방 주제에 그냥 닫았을 뿐인데 문이 잠기다니! 신기하고, 황당하고, 억울한 순간이었다. 내가 나오면서 습관적으로 문고리의 버튼을 눌러 버린 걸까? 안 그러면 문을 열 때 반쯤 잠긴 채 완전히 열리지 않은 걸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갑도, 핸드폰도, 열쇠도, 그 모든 게 방안에 둔 채 나는 티셔츠 한 장만 걸치고 덩그러니 밖에 내버려졌다. 게다가 방 안에는 한 젓가락 먹다만 라면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아, 오랜만에 한 건 했다. 아, 진짜 오랜만에 제대로 당황했다. 이건 뭐 시트콤도 아니고(하긴 내 삶에선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다행히(?) 옥상 문이 열려 있어서 일단 밖으로 나가 낑낑대면서 창문을 열었다. 

마치 유체이탈을 하듯 그 방에는 내가 없다 뿐이지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섬뜩하게도 그 방에 앉아서 맛있게 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열쇠가 든 가방은 창문에서 먼 곳에 놓여있었고, 창문은 굳건했다.

난 머리를 팽팽 돌렸다. 286컴퓨터가 최신식 고성능 컴퓨터가 되는 순간이었다. 차마 말은 못하겠지만 이것저것 많이 해봤다. 물론 아래층에 사는 주인집에도 가보았다. 혹시 열쇠가 있는지 물었다. 주인집 할머니의 답은 간단했다.

"우리 딸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버려진 막대를 이용해 내 집을 털어 봤지만...

사실, 문을 따고 돈을 내려는데 지갑 속에 현금이 없었다.(또 당황했다!) 될 턱이 없는 카드 결제 타령을 하자, 아저씨는 명함을 슬며시 내 손에 쥐어주었다. 뒷면에는 입금할 수 있는 계좌번호가 적혀있었다.
 사실, 문을 따고 돈을 내려는데 지갑 속에 현금이 없었다.(또 당황했다!) 될 턱이 없는 카드 결제 타령을 하자, 아저씨는 명함을 슬며시 내 손에 쥐어주었다. 뒷면에는 입금할 수 있는 계좌번호가 적혀있었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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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무관심이여.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초부터 예비 열쇠 따위는 없었다. 나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여러 공구들을 사용해 보았다. 밖에 굴러다니던 긴 막대들을 이어서 저 멀리 놓여있는 가방을 손에 넣기 위한 시도를 했다. 꼭 '내집 털이범'이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수고는 '헛'으로 돌아갔다. 나는 꽤나 방범이 좋은 집에서 살고 있는 거였다. 슬프게도.

하는 수 없이 생에 처음 문고리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바라봤다. '열쇠 OOO-OOOO'가 적혀있는 스티커였다. 용기를 내서 '문 따기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다. 내 방문을 딴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 아저씨가 다음에도 내 문을 따고 물건을 훔쳐 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그리고 세수도 안 한 내 얼굴에 대한 부끄러움, 이 모든 것 때문에 고민 좀 했다.

하지만 옥상으로 나온 내 몸은 이미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날씨 좋은 오후의 햇살이라 해도 이미 겨울에 들어선 날씨는 더 이상 나를 서있지 못하고 웅크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물 한 점 마시지 못한 상태라 배도 고팠다.

다시 주인집에 초인종을 눌러 전화를 빌렸다. 그리고 아저씨를 불렀다. 그 십 분 남짓 되는 시간 동안에 난 또 오만가지 생각에 잠겼다. 내 삶에 대한 저주, 부주의에서 오는 불행, '지금쯤 라면도 다 먹고, 빨래를 널고 있을 시간인데…'라는 자책감, 빨리 준비하고 아르바이트도 가야 하는 데에서 오는 강박감.

근사한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한 나의 '백마탄 왕자님'

아저씨는 근사한 오토바이를 타고 '백마탄 왕자님'마냥 나의 어리석음을 수습해주었다.
 아저씨는 근사한 오토바이를 타고 '백마탄 왕자님'마냥 나의 어리석음을 수습해주었다.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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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처럼 느껴지는 10분이 지나고 멀리서 '부웅' 하고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문 따기 아저씨'인걸 알았다. 재빨리 옥상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냥 우리 집을 지나가려는 게 아닌가. 난 다급했다.

"아저씨! 아저씨! 여기예요."

그러자 옥상을 올려다보면서 아저씨 왈, "왜 그렇게 높아요?"

죄송합니다. 높이 살아서…. 아저씨는 힘겹게 우리 집까지 올라왔다. 그리곤 007가방을 펼쳐 들었다. 나는 또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하고는, 초라하게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쉽게 열릴 줄 알았던 허술한 문고리여서 아저씨가 오자 내 마음엔 조금씩 옅은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몇 분 지나니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땀을 흘리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뭔가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오만가지의 기계가 가방에서 나왔다가 들어갔다. 그리곤 말했다.

"이거 안 되겠는데요? 문고리를 완전히 떼어내야 되겠는데요?"

아니, 뭐야. 이건 또 뭐야. 난 단지 라디오를 듣다가 밖에 얼마나 소리가 나는지 궁금했고, 그래서 라면을 먹다가 밖에 잠시 나왔을 뿐이고, 그래서 문이 잠겼고,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인줄 알았는데 문을 따야 한다니… 뭐야 이건!

아저씨는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자며, 완전 큰 공구 하나를 꺼내더니 문고리에 고정시켰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툭 하고 문이 열렸다. 마지막 순간에 문을 열어주는 요, 새침데기 같으니라고.

아저씨는 그 십 분 가량의 대가로 2만원을 받아갔다. 내 2만원.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를 해야 벌 수 있는 그 돈. 돈이 아까워 먹지 못했던 500원 비싼 밥이 머리를 스쳐갔다.  

불어 터진 라면(정확하게 말해서 스파게티면), 그래도 맛있었다. 다만 모든 면이 그 사이에 너무 친해져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는 것.
 불어 터진 라면(정확하게 말해서 스파게티면), 그래도 맛있었다. 다만 모든 면이 그 사이에 너무 친해져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는 것.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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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쩌랴. 천신만고 끝에 문은 한 시간 만에 열렸고, 라면은 이미 불대로 불어서 쩍쩍 들어붙어 있었지만 나는 기뻤다. 내 생에 반항을 하는 듯 뜨끈한 옥장판에 엉덩이를 붙이고, 쩍쩍 들어붙은 라면에 밥까지 말아서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맛있었다.

밥을 먹고 나서 부산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시시콜콜 좀 전에 일어난 나의 삽질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가만히 내 말을 듣더니 "이 가시나야. 자알한다"에서 시작해서 이렇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오늘 교회가는데, 니 안녕도 빌어주까?"
"진짜? 그라면 나도 이제 삽질 안 하는거가?"
"니는 많은 거 바라지 말고 앞으로는 한 달에 두 번 정도만 삽질하게 해주세요. 그캐라."

아! 하루하루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해주는 '상콤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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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옥탑방, #삽질,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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