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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온 '옥탑방 여자(이유하)'와 '반지하 남자(김귀현)'가 있습니다. 푸른 꿈을 품고 서울에 왔지만, 이들의 자취생활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밥 먹는 것부터 빨래하는 것까지, 자취경력 일천한 이들에겐 모든 일이 힘겹기만 합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생생한 자취 이야기를 기사로 만나보세요. 매주 1~2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퇴근 후,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다. 공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불가마 사우나'처럼 후끈후끈했다. 보일러가 가열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스비 아끼려고 잘 때 항상 보일러를 끄고 잔다. 이날 따라 아침에 정말 추웠다. 반지하방이 아니라 '이글루'였다. 아침에 30분이라도 좀 뜨끈한 방에 앉아 있고 싶어서 잠깐 보일러를 켰다. 그리고 그대로 집에서 나온 것이다.

어쩐지 보일러 굴뚝이 하얀 연기를 힘차게 뿜어내더라. 하얀 연기만큼 피 같은 내 돈도 날아갔다.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조금이라고 아껴보려고 별 짓 다한다. 500원 아끼려고 떡라면 대신 그냥 라면을 먹는다. 삼겹살을 먹을 때도 꼭 밥을 먼저 먹어 배를 채운다.

순간의 '삽질'은 나의 이런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밤에 약하게라도 보일러를 켜고 잤으면 이런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괜히 아껴보려다 저지른 삽질이다. 사실 삽질이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행위만은 아니다. 나랏님마저 '삽질의 아이콘'으로 우뚝 서있으니 말이다.

'삽질의 아이콘'께선 삽질 후 항상 이런 말씀하신다. "오해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모든 것은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다.

[삽질 유형① - 아껴야 잘 살죠] 휴지 아꼈다 대공사하고...

나의 삽질 덕에 고생 많이하신 변기님
 나의 삽질 덕에 고생 많이하신 변기님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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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 입성하면서 서울 시민이 됐다. 나도 이제 "서울사람이에요"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주민 센터에서 전입신고를 하고 등본을 두 통이나 뗐다.

경기도 수원에서만 인생의 90% 이상을 살았다. 수원의 묵은 때를 벗겨야 했다. "오늘 술 먹는 거?"하는 수원 사투리 대신 "오늘 술 먹는 거야?"라며 서울 사람처럼 다정다감하게 말했다. 잘 살고 싶었다. 서울에서 꼭 성공해 금의환향하고 싶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아껴 쓰는 것'. 조금이라도 돈이 들어갈 일이 있으면 아끼기로 다짐했다.

난 혼자 살게 되면서 '생필품 쇼크'를 겪게 됐다. 가족과 살 땐 몰랐는데, 이런저런 생필품 사는 데 돈이 은근히 많이 들었다. 특히 쓰레기봉투·물·휴지 등은 평소 내가 사지 않았던 것이라 여기에 쓰는 돈은 정말 아까웠다. 어떻게든 아껴보고 싶었다.

일단 쓰레기봉투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쓰레기를 담아 봉투를 아껴보려 했다. 꼭꼭 눌러 담고 발로 밟기도 했다. 열심히 쓰레기를 발로 밟던 어느 날이었다. 뾰족한 과자박스 모서리가 봉지 양쪽을 좍 긁어버렸다. 봉지는 다시 쓰기 민망할 정도로 너덜너덜 해졌다. 결국 그 봉지는 쓰지도 못하고 버려야 했다. 조금이라도 아끼려다 저지른 나의 첫번째 '삽질' 이었다.

휴지도 마찬가지다. 슈퍼에 가니 휴지엔 여러 종류가 있었다. '물에 녹는 휴지'와 '안 녹는 휴지'. 가격 차이가 있었다. 당연히 난 가격이 싼 '안 녹는 휴지'를 골랐다. 설마 뭔 일 나겠냐 싶었다.

근데 며칠 후 바로 '뭔 일'이 일어났다. 안 녹는 휴지를 변기에 열심히 버린 끝에 변기가 막혀 버린 것. 몇 천원 아끼려다 물에 안 녹은 휴지를 손수 건져내는 '대작업'을 해야 했다.

어떻게든 아껴보고 싶었다. 의도는 좋았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삽질'이 되고 말았다.

[삽질 유형② - 내 머릿속의 지우개] 내 속옷 누가 만졌을까?

혼자 자취를 하다 보니 할 일이 참 많다. 청소부터 빨래, 요리와 설거지까지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 그것도 많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니, 깜빡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외출할 때 보일러 안 끄거나, 가스 중간 밸브 안 잠그는 건 가장 기초적인 실수다. 한번은 밥을 해놨단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려 누렇게 색이 바랜 밥을 먹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자주 깜빡하는 건 바로 빨래다. 빨래를 돌려놓고, TV 보고 놀다보면 빨래를 널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 버리는 것이다. 보통 대여섯 시간은 기본이다. 그렇게 빨래를 묵혀 두니 야릇한 냄새가 났다. 결국 한 번 더 빨아야 했다. 

엄청난 양의 빨래.
 엄청난 양의 빨래.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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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건망증'은 '내 생애 가장 치욕스러운 순간'을 맞게 해준다. 어느 날은 빨래양이 많아서 근처 빨래방을 이용했다. 빨래를 돌려놓고, 집에 왔다. 그리고 당연하단 듯이 까먹어 버렸다. 오전 10시경에 돌려놓은 빨래 생각이 났을 땐, 밤 9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부랴부랴 빨래방으로 갔다. 나의 빨래들은 어느새 세탁기에서 나와 큰 빨래 바구니에 담겨있었다. 주인을 기다리다 지쳐,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가장 안쓰러운 모습의 빨래는 내 몸과 가장 가까운 녀석들이었다. 상당량의 '팬티'가 상당히 부끄러운 얼굴로 주인을 반겼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세탁기에 있는 나의 '팬티'를 비롯한 빨래를 꺼낸 것이다. 그분도 세탁기를 써야 했고, 결국 기다리다 지쳐 내 빨래를 손수 꺼내셨나보다.

그 누군가는 외간 남자의 속옷을 만져야 해서 괴로웠을 테고, 나 또한 민망함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빨래 건망증'이 이끌어낸 '대형 참사'였다.

이런 '삽질'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우리 어머니다. 네 식구의 모든 집안일을 어떻게 손수 다 하셨을까? 난 내 몸 하나 보전하기도 힘든데 말이다. 역시 어머니는 대단하다.

"난, 매일매일 삽질하고 있고… 엄마가 보고 싶을 뿐이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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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반지하, #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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