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부산에서 서울에 올라온 지도 벌써 9개월. (헉!) '서울 사람'을 자칭하면서 열심히 여기저기를 찔러대고 있지만 아직도 사투리 때문에 "지방에서 오셨나 봐요"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옥탑방 자취 생활이 6개월째에 접어들면서 나의 자취 노하우는 날로 부쩍 성장했다고 자부한다.

예를 들어서 빨래의 경우, 세탁물이 쌓이면 처리하는 데만 급급했던 나는 얼마 전 '섬유 유연제'를 사용하여 향내까지 폴폴 풍기게 만드는 2차 진화 과정을 거쳤고, 어떻게 하면 사용하는 그릇을 줄여서 설거지를 적게 할까를 고민하는 노련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게다가 예쁘다고 하나둘씩 사서 모은 잡다한 생활용품을 정리하기 위해 방에는 상자를 쌓아올린 진열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편안한 독서를 위해 위성 안테나를 닮은 커다랗고 둥근 의자도 구입했다.

마트가 싸다고? '싼 맛에 하나 더' 사는 곳!

내가 장을 봐온 물건들이다. 뭐라 딱 말하기 힘든 허술함이 느껴진다.
 내가 장을 봐온 물건들이다. 뭐라 딱 말하기 힘든 허술함이 느껴진다.
ⓒ 이유하

관련사진보기


이즈음하면 초보티를 벗고, 자취 중급자로 거듭나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장을 보면서 또다시 무참하게 깨졌다. 절대 고수인 우리 엄마의 경우, 일상적인 장을 보는 덴 단 몇 분이 걸리지 않는 것에 반해, 아직도 나는 장 한 번 보는 데 40분이 넘게 걸리는 '생 초짜 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싸고 종류도 많다는 그 유명한 대형마트를 이용했더랬다. 허나 한 번 갔다 오면 두어 개 샀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영수증을 보고 '허걱'하고 놀랐다. 게다가 집에 돌아오면 이건 꼭 필요했을까 심히 고민되는 물건들에, 맛있겠다고 덥석덥석 사버리곤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음식들이 즐비한 것을 보고 아차 했다. 마트는 결코 '싼' 곳이 아니었다. '싼 맛에 하나 더!' 사게 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 앞 작은 할인 슈퍼마켓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은 마트만큼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별천지였고, 게다가 편의점의 몇 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기도 했다. 음식·과자·잡화·과일·육류까지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과 동시에 우리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는 것도 좋았다.

나는 나름 '고급 식성(?)'이라 라면을 비롯한 인스턴트식품을 그리 즐기지는 않는다. 라면은 정말 피치 못할 때, 즉 너무너무 배고픈데 먹을 것이 쌀밖에 없을 때 먹는다. 그렇지 않고서는 집에 있을 때면 밥을 해 먹는 편이다.

채소를 좋아하고, 당근이나 다시마, 두부 등을 즐겨 먹는다. 얼마 전에 구입한 마늘종도 막장에 찍어서 잘 먹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앞에서 열거한 모든 것은 요리가 필요 없다는 점. 나는 이때껏 요리를 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만 골라서 먹고 있었던 거다. (요리로는 김치찌개를 딱 한 번 해봤다.)

어차피 주말에만 가끔 밥을 먹던 시기에는 그런 음식들이 맛있었는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요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그래서 장을 보는 데도 평소보다 더 신경이 쓰였고, 또 크게 좌절한 것이었다. 

장 보기 '최고 레벨'은 간장 고르기

일단 음식의 기본은 다진 마늘이라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다진 마늘은 몇 종류밖에 없었다. 작은 사이즈 중에서 '케이스 디자인이 맘에 드는' 마늘을 고르고는 당당하게 다음으로 넘어갔다.

다시다도 요리를 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말을 들어서 열심히 찾았지만, 슈퍼에는 다시다가 없었다(분명 있었지만 내가 못 찾았을 것이다). 나는 다시다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 대신, '국물을 직접 만들어 봐야지'하는 강한 집념에 사로잡혔다. 엄마가 '심심할 때 고추장에 찍어 먹으라'고 보내주신 작은 멸치들을 떠올리며, 문득 그거로도 국물을 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난관을 잘 해쳐나갔다. 섬유 유연제를 사이에 두고 도대체 '로즈 뭐시기'와 '코튼 뭐시기' 향이 뭐가 다를지를 고민하다가 10분가량 허비하긴 했지만 말이다. (향수처럼 냄새를 맡아볼 수 있게 해달란 말이다!)

하지만 마의 장벽이 눈앞에 놓여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둥그렇게 빚어놓은 만두가 맛있어 보여서, 냉동 만두를 집어 들다가 '아차! 간장은?'이라고 자문한 것까지는 좋았다 치자. 아무 생각 없이 간장 코너로 갔는데 이건 뭐 거의 '외계어' 수준. 간장의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나는 그 앞에 서서 대학 엠티 때 전을 먹으려고 샀던 간장이 너무 짰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건 국간장이었다. 20살을 갓 넘은 시절에 '아! 요리하는 간장이랑, 찍어 먹는 간장이 다르구나'라는 걸 처음 알았는데, 찍어 먹는 간장도 번호까지 매겨가면서 주르륵 진열되어 있는 걸 보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데, 둘러봐도 슈퍼 안에 손님은 나 혼자. 그래서 나는 간장 뒤에 적혀있는 설명서를 열심히 읽어가면서 뭐가 다를까를 분석했다.

무슨 함유량의 차이로 맛이 더 깊다나 어쨌다나, 국간장·몽고간장에 프리미엄도 있고 골드 프리미엄도 있고, 다시마로 우려냈다는 거, 상표도 어찌나 다양하던지…. 나는 15분가량 그 앞에 서서 고민한 끝에 결국 중간 가격의 간장을 골랐다. 비싼 게 맛있겠지만 역시 비싸고, 너무 싼 건 왠지 맛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중에 만두를 삶아서 찍어 먹으니, 내가 생각하던 바로 그 맛이었다. 짜지 않았다!

날 빤히 쳐다보는 '생선아, 미안해!'

냉장고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요?
 냉장고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요?
ⓒ 이유하

관련사진보기

음식 하니까 갑자기 생선이 떠오른다. 돼지고기는 몇 번 볶아먹어 봤는데, 생선은 괜히 비린내가 날 것 같아서 미뤄두었다가 얼마 전에 처음 몇 마리를 사봤다. 그냥 불에 구우면 될 줄 알았는데, 이게 참 미묘한 거다. 당최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꾸 뒤집다 보니, 살이 프라이팬에 달라붙으면서 고기가 완전 분해되는 참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구워놓은 걸 먹을 땐 몰랐는데, '생' 생선을 굽다보니까 좀 징그럽고(손으로 만지기엔 더더욱!) 좀 불쌍하고(걔네들 눈과 내 눈이 마주쳤을 때 특히 더!) 생각보다 맛도 없었다.

에휴, 아직 냉동실에는 서너 마리 더 있는데, 별로 손이 안 가서 그냥 얼려두고 있다. 

대신에 요샌 호시탐탐 청국장 도전을 노리고 있다. 혼자 사니까 어떤 게 계절 음식인지를 알게 되는데, 심심찮게 청국장이 보이는 걸로 봐서 요새가 철인가 싶다. 그 '쿰쿰한' 냄새의 청국장을 자작하게 끓여서 밥에 슬슬 비벼 먹으면 최고로 맛있는데, 조만간 꼭 도전해 봐야겠다.

이런저런 '장보기의 태클'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행복하다. 며칠 전 엄마한테 전화해서 시시콜콜 사는 이야기를 떠들다가, 전화가 끝날 때쯤 넌지시 던진 "엄마 김치가 떨어졌어"라는 한마디로 총알 같이 택배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직접 담근 잘 익은 김치와 쥐포 무침, 서울에선 보기 힘든 콩잎, 너무너무 맛있지만 도저히 만들기 힘든 다시마 무침, 그리고 잘 씻은 묵은지(쌈 싸먹으면 그만!)까지 내가 좋아하는 밑반찬들을 꼼꼼히 싸주셨다.

나는 택배를 푸는 즉시 그 자리에서 밥을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곤, 그릇에 차곡차곡 덜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리곤 몇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가끔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요거면 일주일은 끄떡없겠지. 그리고 김치만 있으면 뭐든 먹을 수 있으니까. 역시, 우리 엄마가 최고!


태그:#옥탑방, #장보기, #간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