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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흐린날엔 그림책을 펴세요
 마음이 흐린날엔 그림책을 펴세요
ⓒ 도서출판 수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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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서 세가지 결심을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좀 더 엉뚱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많이 하자는 것이었다. 한 해를 맞이하면서 또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굳어지는 것은 팔다리만은 아니다. 사고방식도 갈수록 굳어지고, 획일화되고 있음이 느껴진다.

흔히 말하는 '발상의 전환'을 어떻게해야 할 수 있을 것인가. 기발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아이디어 훈련법과 관련된 서적을 참고하면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여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아이디어관련 서적을 들춰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어떤 일정한 틀에 짜여있다고 해야할까. '이거다!'싶게 가슴에 확 와닿는 그 무엇인가가 없었다. 고정관념이라는 말뚝에 단단히 묶여있는 풍선을 공중으로 확 날려보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됐다. 그 길이를 조금 더 늘렸다 싶은 책은 있었지만 그 이상의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렇게 서점가를 서성거리며 이 책 저 책 하릴없이 뒤적여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마음이 흐린날엔 그림책을 펴세요>.

단지, 제목에 끌려서 우연히 집어든 이 책은 칠십줄에 들어서 '그림책의 발견'을 경험하게 된 한 항공 평론가의 그림책 이야기이다. 이 책은 지은이의 체험담과 그가 시작한 그림책운동 켐페인, 인상깊은 그림책 소개, 그림책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세월따라 굳어지는건 몸의 근육만이 아니다

그가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말기 암환자였던 한 첼리스트의 마지막 공연을 지켜보면서부터다. 혼신을 다해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지은이는 어릴적에 읽었던 동화 <플란더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느낌에 이끌려 그는 수십 년만에 그림책을 꺼내어보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곳에는 놀라운 세계가 있었다. 아직 글을 모르는 어린아이들만이 읽는 책으로만 알았던 그림책에는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추억과 꿈, 이야기가 있었다. 그림책은 상상력과 판타지의 무한텍스트였던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그림책을 열심히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림책과 아무런 상관도 없던 칠십세의 남자가 그림책을 읽자는 캠페인을 시작한다. 그가 내건 모토는 다음 세가지다.

'그림책은 인생에 세 번 읽어야한다. 먼저 자신이 아이였을때, 다음에는 아이를 기를때, 그리고 세 번째는 인생 후반이 되고나서 읽는다.'

그의 그림책 읽기 캠페인에 동참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엽서를 보내왔다. 젊은 아이엄마들도 있었지만 눈에 띄는 사연들은 역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70~80세대가 체험한 '그림책의 발견'이었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고 살았는데 그림책이 한줄기 생명수처럼 다가왔다는 사연부터 나이 90세에 인생관을 수정하게 되었다, 우울증 때문에 고민했지만 그림책을 보며 존재의미를 되찾게되었다는 대답까지 참으로 다양하고 절절하다. 한권의 그림책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기도 하고, 가슴깊이 스며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림책은 일생에 세 번 읽어라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림책과는 먼 삶을 살아왔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보여주긴하지만 어디까지나 '의무'였지 스스로가 정말 재밌다거나 좋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림책이 그 어느 철학책보다 더 깊은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고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 어느 영화보다도 감동적이고 그 어느 소설보다도 애틋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니…. 식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었다. 

굳이 훌륭한 그림을 보기위해 발품 팔아가며 비싼 돈 들여가며 외국 명화전시회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림책의 그림에는 다양한 색채만큼 다양한 감정이 녹아있다. 마치 마음의 구김이 쫙 펴지는 다리미같다. 찌푸려지고 어줍잖던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 등불과도 같다. 그 사실을 왜 예전에는 미처 몰랐을까.

그렇다고해서 그림책이 무조건 밝음, 순수함, 환상적인 이야기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요즘 그림책은 환경문제라든지 결손가정의 아픔, 실직의 고통,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는다. 진흙투성이 현실속에서도 사람들 마음 구석에 끝끝내 남아있는 순수함을 건져올려 말갛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림책에는 무엇보다 판타지가 있다. 판에 박힌 사고와 빈약한 상상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그림책의 상상력과 판타지에 동참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처음에는 잘 안될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이라도 날마다 그 판타지에 몰입하다보면 편협되고 획일적인 '지적노화'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하면 머리가 말랑말랑해지고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사고가 좀 더 유연하고 풍부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나의 한가지 숙제는 풀린 셈이다.

이 책의 원제는 <사막에서 발견한 한권의 그림책>이다. 정말 내 삶의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힘든 사막과 같다고 느낀다면 그림책을 펴보라. 당장은 눈에 안 들어오겠지만 꾸준히 보다보면 언젠가는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유년시절 비오는 날의 아련한 추억을 그린 <노란우산>


<노란우산>
 <노란우산>
ⓒ 도서출판 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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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지인으로부터 <노란우산>이라는 그림책을 선물받았다. 이 책은 글자가 한 글자도 없는 말그대로 '그림책'이다. 이 책의 나머지를 채워가는 것은 순수히 독자의 상상력이다.

누구라도 그러했겠지만 초등학교 시절,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받쳐들고 학교로 향했다. 처음에는 혼자 출발하지만 조금 지나보면 반 친구들을 하나둘 만나게 된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노란우산 빨간우산 찢어진우산 좁다란 학교길에 우산세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하나였던 우산은 서너개로 뭉치게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우산들이 무리들을 이루게 된다. 우산은 서로 섞이고 빙글빙글 돌면서 때론 옆 친구의 우산이 내 머리를 찌르기도 했고 우산을 밀고 당기기도 하면서 장난도 치곤했다.

귀가길에 이르면 우산의 방황(?)은 더 심각해졌다. 나는 운동장에서 가끔 우산을 펴놓고 그 안에 쭈그리고 앉아 우산을 지붕 삼아서 장난을 하곤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운동장에서 우산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모래성도 쌓고 소꿉놀이도 했다. 우산이 내 몸을 다 덮고도 남을 정도였으니 초등학교 1학년이나 2학년 정도였으려나.

우산을 미처 가지고오지 못한 날이면 아이를 찾아 학교로 찾아온 엄마와 그 자녀들의 감격어린 상봉을 보면서 막연한 부러움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책가방을 뒤집어쓰고 집까지 줄달음치거나 아니면 교실에 남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런 추억은 비단 나만의 추억은 아닐 것이다. 누구라도 유년기에 한번쯤 간직하고 있을만한 비오는날의 추억. 자라면서 추억은 퇴색했지만 이 <노란 우산>은 퇴색된 그 추억을 먼곳으로부터 끄집어내어 준다.

글자가 없는 대신 이 책에는 CD가 수록되어있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닮은 낭랑하고 간결한 피아노 솔로 연주곡이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밝고 경쾌한 연주는 비오는 날 아침의 명랑한 등굣길을 연상시키고 다소 무거운 느낌의 연주는 비오는날 느꼈던 막연한 그림움을 연상케한다.

마음까지 건조해지는 요즘, <노란우산>덕분에 촉촉이 젖을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마음이 흐린날엔 그림책을 펴세요/ 도서출판 수희재/ 야니기다 구니오 지음, 한명희 옮김/ 2006

노란우산/ 도서출판 보림/ 류재수 그림, 신동일 작곡, 한봉예 연주/ 2007



마음이 흐린 날엔 그림책을 펴세요

야나기다 구니오 지음, 한명희 옮김, 수희재(2006)


태그:#그림책, #노란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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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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