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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갈등의 시대가 열렸다. 수없이 많은 종류의 갈등이 있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공공정책을 둘러싼 갈등이다. 이는 각종 정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정부 기관들과 정책의 직접적, 간접적 영향을 받는 집단 또는 개인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을 말한다. 출범한지 일 년도 채 안된 현 정부는 공공정책갈등 제조기 같다. 문제는 정부가 현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다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공공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골이 깊어지고 해결하기 힘든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형식을 갖추면서 나타나는 공공정책갈등

 

공공정책갈등은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나타난다. 민주주의 형식을 갖췄지만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고 억압이나 인식 부족 때문에 국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공공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나타날 수가 없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정부의 일방정인 정책 결정과 실행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연유로 공공정책갈등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공공정책갈등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공공정책갈등은 민주사회의 발전 단계에서 직면하는 불가피한 현상 중 하나이며 공공정책갈등을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면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새로운 문제해결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표면화된 공공정책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어진 것은 참여정부 때부터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공정책갈등이 보다 표면화된 것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정부의 일방적 결정에 맡겨둘 수 없다는 국민들의 자각 때문이었다. 민주화의 진전으로 정부의 일방적 정책 결정과 강제 집행이 정당성을 상실한 때문이기도 했다. 

 

참여정부는 새만금 개발, 부안 방폐장 건설, 미군기지 평택 이전,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공사, 한탄강 댐 건설 등 굵직한 공공정책갈등을 겪었다. 이 외에도 봇물처럼 터져 나온 다양한 이익집단들의 정책적 요구에 직면했다. 정부는 기존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공공정책갈등에 대처하지 못해 결국에는 갈등을 덮어두거나 예전의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정책을 강제 집행하곤 했다.

 

참여정부가 한 가지 진전된 모습을 보였다면 그것은 공공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한국 사회가 새롭게 고민해야 할 심각한 사회갈등이라는 것과 정부가 갈등의 직접당사자 중 하나임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비록 공공정책갈등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과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는 실패했고 산발적으로 나타난 전향적 대응 방식은 잡음을 막기 위해 주로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단체들만 상대하는 편의주의로 흘렀지만 약간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공권력을 이용해 침묵 강요하는 이명박 정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우리 사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적 저항, 신문법과 방송법을 둘러싼 언론사 파업, 4대강 정비와 경인 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다수의 국민, 전문가 집단,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저항 등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으로 야기된 굵직한 사회갈등을 겪어 오고 있다. 공공정책갈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도록 잘 대처한다면 진정한 민주사회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유감스럽게도 현재는 정부에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순진한 일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정부는 공공정책갈등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나 정부가 갈등의 직접당사자 중 하나이자 근본 원인이라는 인식이 없다. 갈등 민감성도 없어서 정책 구상 단계에서 어떤 국민적 저항이 있을지, 어떤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갈등이 표면화된 상황에서조차 독선적인 태도를 고수하면서 말 바꾸기와 자기 합리화에만 골몰하고 있다. 정부는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과 국민들을 정책 집행을 위한 장애물로만 여기고 공권력을 이용해 침묵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억압적 방식으로는 공공정책갈등에 대처할 수도 이를 해결할 수도 없다. 정부가 국민들의 정책 참여를 완전 배제할지라도 이제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거나 왜곡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수준이 민주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정책 논의에의 참여를 요구하고 자신의 권리가 거부당할 경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저항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부의 정책 결정 절차는 시대를 거슬러 뒷걸음질 치고 있지만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은 높아져서 많은 부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에 만족하지 못하고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갈등에 대한 대응 방식 바꿔야 한다

 

국민들의 정책 참여 요구가 높아지는 것은 민주주의가 성숙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며 우리 사회는 이미 그러한 수준에 도달했다. 정부는 이제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도 단독으로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다는 낡은 행정 이론을 버려야 한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국민들의 수준을 고려할 의지가 있다면 공공정책갈등에 대한 대응 방식을 바꿔야 한다.

 

현재의 공공정책갈등은 이미 사안마다 논리 있는 반대 의견과 정책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대두된 상황이므로 갈등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은 적극적으로 갈등 해결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공정책갈등은 정책 자체의 중요성이나 갈등 전개 상황을 볼 때 형식적인 공청회를 넘어서는 심도 있는 논의를 필요로 한다. 정책의 직접적, 간접적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 시민단체들, 전문가들, 그리고 정책 구상과 실행을 담당하는 정부 기관이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참여하는 원탁회의나 정책회의 등 협력적 문제해결 과정이 마련돼야 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모든 과정은 직접 참여를 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위해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갈등이 이미 표면화된 상태에서 정부가 계속 억압적, 일방적 방식을 고집한다면 우리 사회는 경제난에 겹쳐 공공정책갈등의 증가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경제 살리기'를 위해, 그리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현 상황을 성찰해 보고 당면한 공공정책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전향적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자면, 위에서 언급한 방법들은 전혀 근거 없는 제안이 아니다. 북유럽이나 서유럽 국가들에서 공공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실행해 왔고 효과도 입증됐다. 정말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부라면, 그리고 정부가 공공정책갈등 제조기라는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공공정책갈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신중히 고려해봐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정주진 기자는 평화학 박사로 갈등해결을 전공했습니다 


태그:#갈등해결, #공공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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