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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기 씨는 의료사고가 더이상 일어나면 안된다고 말했다
▲ 김윤기 씨 김윤기 씨는 의료사고가 더이상 일어나면 안된다고 말했다
ⓒ 김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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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너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마. 너의 억울한 죽음을 꼭 밝혀내마. 앞으로도 너같이 의료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이 애비가 노력하마. 너는 나에게 큰 사명감을 주고 갔다. 의료사고 피해자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병원의 말 바꾸기, 흰 가운 뒤에 숨겨진 의사들의 두 얼굴을 용납하지 않으마."

건장하던 아들을 한순간에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그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의료사고로 막내 아들 김진현(사망 당시 23세) 하사를 잃은 김윤기(52)씨는 지난 2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금쪽 같은 아들의 사망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담당 의사들의 책임을 묻는 1년6개월간의 길고 긴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아들의 죽음보다 힘들었던 의사들과의 싸움

고 김 하사는 2007년 6월 22일 부천대성병원에서 치질수술을 받은 직후 발생한 마취부작용으로 사망했다. 사인은 '지속성 간질 발작에 의한 중증 저산소성 뇌손상'. 수술 직후 심한 경련을 일으키는 김 하사에게 병원은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들이 사망하자 김씨는 병원 측과 법정 다툼을 벌였다. 결국 지난 1월 22일 부천지방법원은 외과담당의 김아무개씨와 마취전문의 이아무개씨에게 각각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금고 8개월을 선고했다. 경련이 30~60분간 지속될 경우 심각한 뇌손상을 입고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해당 담당의들이 기관 내 삽관식 산소공급 혹은 전신마취 등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아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 순간 산소를 공급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인도 알 만한 상식인데 그 의사들은 왜 몰랐을까 의문"이라며 "의사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잘 안다고 자만한 것이다, 부천대성병원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며 똑똑하고 유능한 의사들이 오히려 환자들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의료법상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 부상을 입게 되었을 경우 의사들에게 책임을 묻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인이 다가가기 어려운 게 의료관련법이다. 그런 측면에서 의사들에게 의료사고의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미가 깊다.  그러나 김씨는 아직 만족할 수 없다.

김씨는 "1심판결의 형량으로는 부족하다, 대법원까지 가서라도 의사들 죗값에 맞는 책임을 지우도록 할 것"이라며 "그래서 다시는 이런 억울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우리 진현이가 하늘에서 바라는 일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억울한 죽음

- 아들 고 김진현 하사가 사망한 경위를 자세히 설명해 달라.
"2007년 6월 22일 진현이가 부천대성병원에서 치핵제거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오후 5시경부터 시작되었는데 30분 만에 끝났다. 수술이 끝나고 병원 신관 5층 입원실로 이동하는 중에 경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당시 외과담당의 김아무개씨와 마취담당의 이아무개씨는 이미 퇴근한 상태였다. 간호사들이 달라붙어 응급처치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도 어떻게 할 줄 몰라 '저희도 이런 상황은 처음입니다'라고만 말했다. 6시경 담당의 2명이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2시간 30분 동안 경련이 지속되었음에도 항경련제 주사, 수동식 산소공급 밖에는 이뤄지지 않았다. 나의 항의로 8시경 부천 순천향병원으로 진현이를 이송했다. 하지만 5분 만에 절명, 20분간의 심폐소생술로 심장박동이 재개되었지만 결국 이틀 후에 이 세상을 떠났다."

- 병원 측의 응급조치에 문제가 컸다는 말인가.
"나도 의료지식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경련으로 떨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잘 아는 의사 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지금 당장이라도 기관 내 삽입을 통한 산소공급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 측에 요구했더니 병원에서는 '수동식이든 기계식이든 별반 다를 것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도저도 안되면 전신마취 등 다른 방법이라도 강구했어야 하지 않나. 결국 병원은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2시간 30분 동안 응급상황인 환자를 방치한 것이 아니냐."

의사들이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항소할 것

故 김 하사는 생전 훌륭한 부사관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 故 김진현 하사 故 김 하사는 생전 훌륭한 부사관이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 김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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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은 1심에서 ‘경련이 30~60분간 지속될 경우 심각한 뇌손상을 입고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해당 담당의들이 기관 내 삽관식 산소공급 혹은 전신마취 등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렇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우리는 응급조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몰랐는데도 죄가 되나'하는 식이었다. 끝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 1심 재판에서 외과담당의 김아무개씨는 금고 6월·집행유예 2년을, 마취담당의 이아무개씨는 금고 8개월을 선고받았다.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또 두 사람의 태도도 다른데 외과담당의 김아무개씨의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 얼마 전에 형사합의를 봤다. 하지만 마취담당의 이아무개씨의 경우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죄 없는 목숨 하나를 죽여 놓고 그게 의사가 할 말인가. 이아무개씨의 잘못에 합당한 죗값을 받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 1심 판결 내용을 만족하지 못한다면 어떤 내용을 두고 항소할 계획인가.
"일단 법원은 담당의들이 응급처치를 적절히 하지 못했다는 점만을 두고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밝혀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 먼저 수술 전후 과정에서 병원 측의 부주의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수술 전부터 환자는 안정을 취해야 함에도 아들이 누운 침대를 입원실에서 수술실까지 145미터를 뛰어서 이동시켰다. 불안감 조성, 혈압과 맥박 상승 등으로 수술에 부작용이 올 수 있다. 그리고 마취제의 배합도 마취 전문 간호사가 아닌 일반간호사가 했다는 점도 있다. 수술 직후 안정이 필요한 환자를 울퉁불퉁한 지하도를 통해서 이송함으로서 직접적 충격을 준 점,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지도 않고 의사들이 퇴근해버린 점 등도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표리부동한 의사들... 신뢰 무너져

- 사고 직후, 병원 측에 어떻게 항의했나.
"아들이 죽고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병원에 전화해서 '멀쩡한 애가 말 한마디 못하고 죽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고 물었다. 그랬더니 병원 측 관계자는 '의료사고는 미묘한 것이다. 우리의 과실은 맞지만 그 부분들을 밝혀내고 싶으면 법으로 하든지 조폭을 동원하든지 그쪽에서 알아서 하시오'라고 했다. 그 말에 너무나도 기가 막혔다. 병원의 의도는 자신들의 과실을 인정하지만, 법적인 책임은 절차에 따라서 지겠다는 것이었다.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병원이 과실을 인정했음에도 법적책임은 회피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인 것인가.
"그렇다. 병원에서 자신들에게 100% 과실이 있다는 '경위 및 확인서'를 써주었고 이미 공증까지 받았다. '경위 및 확인서'에는 '치질 수술 전 수술 중, 수술 후, 응급대처 과정에서 일어난 의료사고임을 100% 확인합니다. 사망원인은 마취제에 의한 부작용으로 생각됩니다. 최종 사망원인은 국과수 부검 결과 참조. 향후 수사기간 진술시 진실에 입각하여 사실 그대로를 진술할 것을 확인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지만 법적인 책임을 지우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의료법은 의료사고로 죽거나 다친 환자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의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 그렇다 보니 병원에서 잘못을 인정해도 법적인 절차로 들어가면 100% 과실을 물을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법조계에 있는 분들이 의료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데다가 의료사고를 '최선을 다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라고 하면 책임을 묻기가 상당히 애매하다. 병원 측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결국 법적 차원으로 가면 보상액수를 줄일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것 같다."

- 병원 측이 진료기록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병원 CCTV기록과 진료기록부를 대조하면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진료기록부가 30분이나 늦게 기록되어 있다. 병원 측에서는 이를 두고 '당시 상황이 긴박해 잠깐씩 메모를 해 놓았다가 나중에 기록하였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지 조작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병원 측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조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재판에서도 제기된 부분이지만 법원은 이를 병원이 고의적으로 조작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 구체적으로 진료기록부가 조작되었다는 근거를 들어달라
"CCTV 기록을 보면 진현이가 5시 40분경에 5층 입원실에 도착했다. 하지만 진료기록부에는 6시10분이라고 적혀있다. 그 30분간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경련을 멈추게 했어야 할 중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30분간 병원 측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경련 상태일 때 가장 중요하다는 산소공급조차 경련 시작 50분 만에 이뤄졌다. 대성병원 측은 이 부분을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의료사고가 없어지는 날까지 싸울 것

그는 "병원과 의사들의 표리부동한 태도에 깊은 실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 김윤기 씨 그는 "병원과 의사들의 표리부동한 태도에 깊은 실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 김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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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6개월 동안 싸워오면서 느낀 점은?
"왜 내 자식이 죽었나하는 의문에 마취통증의학과, 마취대처 관련 서적을 3권을 샀다. 그걸 두고 석 달 동안 공부했더니 상황이 보이더라. 마취부작용으로 경련을 일으킨 그 순간에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쌓여만 갔다. '산소공급은 일반인도 알만한 상식인데 그 의사들은 왜 몰랐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의사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잘 안다고 자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천대성병원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똑똑하고 유능한 의사들이 오히려 환자들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고 있다."

-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죽은 진현이에게 떳떳한 애비로 남고 싶다. 죽은 아들이 '아버지, 내가 억울하게 죽었는데 진실을 밝혀야하지 않겠어요'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또한 내가 앞장서서 의료사고해결의 지표를 만들고 싶다. 의사들도 죄를 지으면 분명히 죗값을 받아야 한다. 의료사고의 책임을 물음으로서 의사들이 생명을 다루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끔 만들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김효성 기자는 <오마이뉴스> 9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김윤기, #의료사고,치질수술, #육군하사, #부천대성병원, #김진현, #대성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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