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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의 역사는 제국주의에 유린당한 비참한 한국 현대사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우리 민족 고난의 역사다. 우리 나라의 순박한 처녀들이 남양 곳곳에 퍼져있는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가 그들의 삶이 산산이 파괴되어버린, 우리 민족의 역사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유린당했던 치욕적인 사건이다.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인데도 정신대 역사는 오랫동안 은폐되어 왔다. 지울 수만 있다면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은 무서운 사건이다.

 

이 엄청난 역사적 사실에 다가간 작가는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던 민족의 고통을 낱낱이 증언하고 있다. 그 깊은 한을 묘사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담담한 필치로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이 작품은 위안부였던 순이라는 한 여성의 삶을 통하여 일본이 우리 민족을 얼마나 잔혹하게 짓밟았던가를 감정의 굴절 없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배광수는 일제 말 노무국회에서 남양 군속을 징집하기 위해 경상 남북도에 동원대를 풀어 길에서, 들녘에서, 가택수색에서 청장년들을 마구잡이로 끌고 간 몰이사건 때 길에서 학병으로 징집 당한다. 필리핀에서 부상당한 그는 일본의 패전으로 현지에서 안락사에 의한 부상병처리로 죽을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순이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나서 고국의 품에는 안기나 정신대 출신인 순이를 고향으로 데려갈 수도, 그렇다고 버리고 갈 수도 없는 고뇌 속에서 부산 영주동 꼭대기에 방 한 칸을 마련하여 살림을 시작하나 순이가 해산하던 날 달아나 버린다.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고자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떠나지만 결국 그 피해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술로 인생을 탕진하다가 한 줌 재로 사라진다. 아들을 호적에 올려놓고도 자기자식이 아니라고 펄펄 뛰며 죽어도 인정할 수 없다는 그의 삶이 독자를 진한 슬픔에 빠지게 한다. 일제가 남긴 상흔이 얼마나 뿌리깊었으면 단 하나뿐인 혈육마저도 거부하며 평생을 자학 속에서 그렇게 비참하게 살다 가야만 했던 것일까.

 

오빠의 징용을 대신해서 정신대를 지원, 식민지 백성으로서 민족의 수난을 온 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순이는 일본의 패망으로 배광수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고국에 돌아왔으나 고향에는 돌아가지도 못하고 남편에게까지 버림받는다. 혼자서 탯줄을 끊고 낳은 아들이 정상임을 알고 떠나버린 남편을 기다리는 모습은 눈물겹도록 애처롭다. 일본이 남긴 과거의 음영 때문에 끝까지 거부하지만 그 내면의 고뇌와 갈등을 잘 아는 순이는 원망 한 마디 없이 그를 수용하면서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다.

 

배광수의 아들 배문하는 아버지가 술값 때문에 가끔씩 나타나서 갖은 욕설을 퍼부어도 결코 대꾸하는 법이 없었던 어머니가 아들에게 던진 **새끼라는 한 마디에 집요한 항변을 보였고 그 한 마디가 기억 속에 낚시고리처럼 걸려 자살까지 시도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그는 아버지가 죽는 순간까지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 어머니로부터 듣고 싶어서 굳게 닫힌 말문을 열게 했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머니의 입에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정신대의 참혹한 실상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고 그 짐승 같은 삶의 현장이 낱낱이 드러난다. 나는 그 비인간적인 참상 앞에 전율했고, 며칠동안을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순이는 사실을 은폐하기보다는 적나라하게 파헤쳐서 심판을 받고자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살아남아서 아들에게 그 치욕적인 역사가 주는 의미, 민족비극의 원형이 어떤 것인지를 상세하게 들려준다. 배광수는 이러한 피해의식을 끝까지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떠나지만 순이는 거추장스러운 과거를 훌훌 털어 버리고 스스로의 모습을 직시하며 배광수가 그들 모자를 버리고 떠났어도 남은 삶을 건강하게 일구어낸다.

 

배문하는 아버지가 학병에서 귀국까지 그 절망적인 세월의 언저리에서 아들의 출생을 분리하고자 출생을 두 해 늦게 신고한 것에서 자신을 그토록 철저히 거부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혀왔던 부모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비로소 해방된다. 배문하는 아버지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행했던 삶을 승리로 이끈다.

 

문학은 그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다. 한 가족의 불행한 삶을 통해 우리 민족의 비극을 들추어내고 있는 이 작품은 결코 덮어버릴 수 없는 역사를 파헤침으로써 던진 충격이 컸다. 또한 이 작품은 우리 시대에 작가가 왜 필요한가를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문학은 그 시대에 발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사적인 엄청난 문제에 접근한 것은 가상하나 일가족의 문제로 처리해버림으로써 거창하게 벌여온 문제를 축소시켜버린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작가가 과연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던 나는 허탈하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는 결론일 수도 있겠으나 거대한 주제에 대한 결론으로는 너무 약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윤정모 지음, 당대(1997)


태그:#정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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