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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떡 일어서서 오데요!"

 

학교 다닐 적에 들었습니다. 태평양에서 저기압을 만났는데, 파도가 높아져서 산이 하나 딱 서가지고 오더라고! 그때는 무슨 소린가 했지요.

 

얼마 후 손에 꼽던(?) 배를 타게 되었고, 동남아시아에 있는 동지나해나 일본근해까지 오르락 내리락 하던 배를 탔습니다. 그곳에서는 파도라고 하는 것은 정말이지 잠 못자게 하는 것이라고만 느꼈습니다.

 

파도가 치면 배가 흔들리고 침실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드르륵 거리면 밀려다닙니다. 서랍 안에 있는 물건들이 특히 소리가 귀에 거슬리게 들리지요. 서랍의 합판에서 물건이 드르륵거리며 밀려다니면 잠 못 이루고 침대에 엎어져 있다가 서랍을 열고 조치를 취합니다. 이 서랍 저 서랍 다 까발려서 한곳에 몽땅 넣고는 소리가 안 나게 되면 잠을 청합니다.

 

조금 있으면 이번엔 방안에 조용히 있던 쓰레기통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줍니다. 게다가 쓰레기통이 엎어지면서 내놓은 쓰레기들이 같이 쓸려 다닙니다. 또 일어나서 쓰레기통을 쓰레기와 함께 집어넣을 곳을 찾습니다. 이번엔 아예 책상의 의자까지 고정시켜둡니다.

배에 있는 의자는 모두 의자 자리에 고정시키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귀찮게 하는 파도들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였습니다. 제가 탄 배는 미국 본토에서 원목을 가득 싣고 오던 참이었습니다. 원목을 가득 실은 원목선은 좌우측으로 5도 이상 넘어가지 않습니다. 좋겠다고요? 물론 배 안의 물건들이 돌아다녀서 귀찮게 하진 않습니다.

 

그 대신 그 배를 5도 이상 넘어가게 하는 파도가 오면 원목을 배의 주갑판상에 묶어 두었던 쇠사슬들이 터지면서 배가 전복되고, 배에서 떨어진 원목들은 물속 깊이 잠겼다가 빠른 속력으로 또 올라서 수면 위로 얼마간 점프를 한 다음 다시 수면으로 떨어진답니다.

 

그러면 수면에 있는 조그만 구명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원목선에서 생기는 조난 사고에는 생존하기가 힘들답니다. 간혹 있는 원목선 사고의 생존자는 그나마 잔잔했던 바다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을 떠난 원목선이 가야할 곳은 나무의 수요가 많은 일본입니다. 그런데 그쪽을 향해 가다가 밑에서 올라온 저기압과 만났습니다. 꽤 세력이 큰 저기압이었습니다. 바람의 세기가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나지않습니다. 파도 때문이었습니다.

 

180미터가 되는 배를 조종하는 선교에서 파도의 방향을 주시했습니다. 배의 목적지는 일본이었지만, 선수는 하와이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파도가 잔잔한 곳으로 피항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수쪽의 파도를 어느 정도 각으로 부딪혀야 배가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파도의 끝이 '어' '어' 하는 사이에 수평선보다 더 위로 올라갔습니다. 파도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파도가 만드는 골도 깊어졌습니다. 아파트 10층 쯤 되는 높이가 선교에서 보는 눈높이라면 파도의 크기가 얼마가 되어야 그 끝이 수평선을 넘어가겠습니까? 미터로 나타내는 높이가 약 23에서 25미터 정도 된답니다. 그 정도의 파도가 바로 사진의 파도입니다.

 

 

오른쪽 끝을 보시면 수평선이 보이지요? 한 장밖에 못 찍었습니다. 그것도 무슨 생각에서 찍었는지 모릅니다. 이 상황에 잠깐이라도 방향타가 고장나면 큰일이 납니다. 밤중에는 불빛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창문에 모두 커튼을 쳐야 하지만 오늘은 주갑판상의 크레인 위에 붙어 있는 라이트를 모두 켜고 항해합니다. 파도의 방향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 이틀 후에는 저 파도가 점점 잔잔해지더군요. 다시 일본으로 향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1993년 제가 외항선 선원으로 일할 때 겪은 일을 토대로 썼습니다.


태그:#파도, #대양, #원목선, #외항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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