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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새학기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났다. 저학년 교실은 새로 들어온 아이들 때문인지 활기가 넘쳤다. 고학년 교실도 지난주에 올라온 4학년들 때문인지 수업시간마다 떠드는 소리가 제법 컸다. 기세로 봐서는 당분간 누나 형들이 곤욕을 치를 것 같았다.

그렇게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나는 오후 세시만 되면 공부방은 꽃망울 터지듯이 아이들의 왁자한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물론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투기도 하고 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토라지기도 했다. 특히 저학년 교실은 작은 어린이집이라도 된 것 같았다. 무턱대고 안아달라는 아이, 손가락이 아프다며 호~ 해달라는 아이. 신입생들 응석 받아 주느라 저학년 선생님은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면 녹초가 되어 버리셨다.

"이제 곧 있으면 새 학기도 시작했으니 다음주부터 가정 방문을 해야겠어요."
"그래야 할까봐요."

새학기 가정방문을 해야겠다는 말에 저학년 선생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 3월 수업 일정표를 보며 가정 방문일정을 잡았다. 형제가 있는 가정을 빼고 확인해 보니 모두 스무 가정이었다. 한 달 안에 가정방문을 끝내려면 일주일에 최소한 네 가정씩은 돌아야 했다.

다음날 학부모님들께 가정 통신문을 보내며 가정방문 계획을 알렸다.

"선생님, 우리 집엔 절대 오지 마세요."
"우리도요."
"가정 방문 하시려면 선생님 집부터 가요."
"그러지 말고 작년처럼 모둠별로 외식해요. 그렇게 해요!"

다음주부터 가정방문을 하겠다는 나의 말에 아이들은 대부분 볼멘소리를 해댔다. 작년에 모둠별로 외식을 했던 아이들은 스파게티와 피자를 외쳐대며 올해도 그렇게 하잔다. 부모님들께서도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상당히 부담을 느끼시는 듯했다.

"선생님, 어제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요..."

육학년 소연(가명)이가 슬쩍 다가오더니 말을 꺼냈다.

"응! 엄마가 뭐라셨는데?"
"하이, 귀찮게 가정 방문은 뭐하러 오고 그랴~ 그러셨어요."

그러면서 헤죽 웃었다. 소연이는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어제 통화 할 때는 그렇게 말씀 하지 않으셨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맨 처음 방문 한 곳은 입학한 지 한 달 정도 된 민수(가명)의 집이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지금은 할머니와 고등학생 형 셋이 생활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할머니께서 안방에 앉아 계셨다. 허리가 아프셔서 못 일어나신다며 연신 죄송해 하셨다. 한 시간 정도 말씀을 나누는 동안 손주들 걱정 때문에 할머니의 한숨이 끊이지 않으셨다.

"엄마는 몇 년 전에 병으로 죽고 아빠도 작년에 뺑소니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밥이라도 챙겨주려고 시골서 올라왔다오!"

두 번째 방문지는 쌍둥이 아이들이었다. 그 친구들도 입학한 지 이제 석 달이 조금 넘었다.

"선생님, 근데요. 우리 집 무척 작아요."

집이 작은 게 몹시 걱정이 됐던지 골목길로 들어서자 쌍둥이 중 형인 상진이(가명)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집은 달랑 방 한 칸이야. 아마 다른 친구들도 다 비슷할 걸."
"정말요? 다른 아이들도 그래요? 전 다른 친구들은 다 넓은 아파트에 사는 줄 알았어요."

어머니께서 언어장애가 있으셔서 아이들 상담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아버님이 일을 일찍 끝내고 들어오셨다. 상담을 하는 동안 쌍둥이들은 부모님들과의 대화가 궁금한지 계속 방안을 들락날락 거렸다.

"선생님 가정 방문 언제 오실 거예요?"

멀리 복정동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4학년 형은(가명)이는 매일 확인을 했다.

"다음 주 금요일에 갈거야."
"근데요, 선생님 우리 집에 오시면 꼭 거실에만 계셔야 해요?"
"그건 왜?"
"그냥요. 꼭 약속 하셔야 해요."
"그래 알았어."

저학년 선생님도 가정 방문을 시작하셨다. 다녀오시고 나면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하곤 했는데 아이들이 공부방에서 보이는 모습들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단다. 나도 물론 동감이었다. 그래서 가정방문을 하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가정 방문을 할수록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대부분 어머니와 상담을 해야 하는데 아직 미혼인데다가 남자인 나로서는 아이들이 공부방에서 생활하는 것 외에는 부모님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었다. 부부간의 갈등이나 아이들의 갈등이 화제가 되어 버리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상담 중에 대화가 끊기면 어정쩡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고민 끝에 저학년 선생님과 같이 가정 방문을 했다. 그렇게 하니 혼자 갈 때보다 훨씬 부담도 덜했고 부모님들께서도 나 혼자였으면 하지 않았을 고민도 풀어놓으셨다.

그때부터는 저학년 고학년 상관없이 아예 같이 다녔다. 그만큼 가정 방문을 다녀야 하는 횟수도 더 늘었지만 나로서는 그 편이 훨씬 좋았다. 저학년 선생님도 어둑 어둑한 밤거리를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든든하고 좋다고 하셨다.

복정동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형은이의 집을 방문할 때였다. 그날은 가정 방문 두 곳을 다녀야 했다. 아홉시쯤 첫 번째 가정 방문을 끝내고 시간이 늦어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를 타고서도 한참을 갔다. 택시를 내려서도 깜깜한 길을 상당히 걸어야 했는데 초등학생인 형은이가 다니기엔 상당히 멀고 무서운 길이었다.

공연을 보거나 체험학습을 가는 날은 밤 아홉시가 넘어서 도착할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집에 가는 길이 무섭다고 울먹울먹 하며 빨리 보내달라고 하던 형은이였다. 그때는 몰랐는데 막상 이렇게 가보니 정말로 무서웠겠다.

"선생니임~"

횡단보도 앞에서 우리를 발견한 형은이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선생님 가정 방문 오시면 꼭 거실에만 계셔야 해요' 라던 말이 떠올랐다. 가보면 이유를 알 수 있겠지.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이 꼭 삼년 만에 만나는 엄마를 만나러 오는 아이 같았다. 도착한 곳은 상당히 큰 빌라 촌이었는데 가정방문을 다녀본 곳 중에서 가장 크고 근사한 집이었다. 거실이 운동장만 했다. 공부방보다 더 넓었다.

형은이의 할머니가 우리를 보자마자 말씀하셨다.

"이 빌라가 우리 것이긴 해도. 그건 할아버지 할머니 거지. 아이 아빠 것은 아니에요. 아이 아빠는 사업 실패해서 지금도 빚이 몇 억이 넘어요. 월급 몇 푼 받으면 다 빚 갚는데 빠져 나가 버려요. 그래서 우리가 손녀딸 키워만 주고 있어요."

"아 !네."

형은이 할머니는 그렇게 우리가 묻지도 않은 말을 서너번 반복하셨는데 처음에는 그 영문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공부방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만 다니는데 자기가 이렇게 큰 집에서 사는 거 알면 내일부터 공부방 못 갈 수도 있다고 우리 손주가 하도 걱정을 해서..."

그래서 미리 말씀하신다는 거였다. 그렇게 가정 방문을 다녀오고 나면 다음날 그 아이의 눈빛은 알게 모르게 달라져 있었다. 선생님이 우리 집을 다녀갔다는 뿌듯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선생님, 우리 집 가정 방문은 언제 와요?"

아직 차례가 안 된 아이들은 선생님이 혹시라도 가정 방문을 오지 않을 것 같았는지 매일 매일 확인했다. 처음엔 볼멘소리를 해대더니 이제는 선생님이 하루 빨리 집에 오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스무 군데 가정 방문을 다녔다. 가정 방문을 다니는 동안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형은이처럼 한 두 가정을 제외하고는 부모님들 사는 형편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아버님은 일을 나가셨고 어머님도 일을 하셨다. 둘 중에 한 분은 아프셨다. 둘이 같이 벌어도 힘들었고 혼자서 벌어도 힘들었다. 빚에 쪼들리기도 했고 파산 신청을 한 분도 있었다. 힘겨운 삶을 토로하다가는 끝내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다. 과일 한쪽과 차 한 잔을 마시며 공부방 교사들의 고충도 함께 털어놓았다.

깜깜한 골목길을 자기 몸피보다도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앞장서며 선생님을 집으로 안내하는 우리 아이들의 뒷모습이 왠지 측은하면서도 가슴 한 켠이 이상하게 저려왔다. 아직은 3월, 해가 짧았다. 7시만 되면 깜깜해졌다. 이렇게 좁고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서 다녔나? 늠름하게 다니는 우리 아이들이 대견했다. 공부방을 나와 어둑해진 골목길을 커다란 가방을 메고 집으로 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쁨과 즐거움 있으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태일 기념 사업회 소식지 '사람세상'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가정방문, #공부방, #가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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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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