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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주의 〈아빠, 제발 잡히지 마〉
▲ 책겉그림 이란주의 〈아빠, 제발 잡히지 마〉
ⓒ 삶이 보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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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앞 길목에서 가끔 수정과와 미숫가루 차를 나눠 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 길목을 지나다니는 해외 여성들과 이주노동자들을 만난다. 해외 여성들은 자유롭게 차를 마시면서 얼굴을 마주치고 이야기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다들 마주치는 것조차 꺼려한다.

이유가 뭘까? 해외 여성들은 우리나라에 시집 온 여성들이다. 그녀들은 한글학교에 입학하여 우리말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얼굴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섞지 않는 것이다.

이란주의 〈아빠, 제발 잡히지 마〉는 우리나라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환을 담고 있다. 네팔과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등 해외거주자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우리 땅에 들어와 일하고 있지만, 하나같이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경제 상황이 좋아 노동력이 필요할 때는 너도 나도 불러들였던 일꾼들이, 경기가 나빠진 요즘은 아주 찬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등록이든 미등록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곱지 않은 눈길이 쏟아지고, 일자리 축내지 말고 빨리 사라지라는 고함과 재촉이 달려듭니다."(작가의 말)

이주노동자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무엇일까? 불법 브로커들로 인하여 신분보장이 자유롭지 못한 채 들어와 일하고 있다는 것, 불법체류자일 경우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차별된 임금과 대우를 받고 일한다는 것, 필요할 때는 일하다가도 일거리가 없거나 공장 문을 닫을 경우에는 제 일한 값도 당당히 받지 못하고 내몰림 당한다는 것 등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자녀와 함께 살다가 부모가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혔을 경우, 당장 자국으로 들어가 정식체류 절차를 밟아 우리 땅에 들어온다 할지라도, 자녀와 함께 동반으로 입국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어렸을 때부터 우리나라 말과 우리나라 교육을 받았던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그들 부모로서는 참담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우리 땅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고 있던 모루도 그랬다. 그 날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출퇴근할 때 외국인인지 알아보지 못하도록 헬멧을 쓰고 다녔고, 엄마는 낮 단속을 피해 야간 일만 골라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모루 엄마가 시장에 나갔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단속반에 붙잡히고 만 것이다.

그 길로 모루는 엄마를 따라 강제로 출국을 당하게 되었는데, 몇 달이 못 되어 한국말을 잘 하는 모루를 통해 모루 엄마가 〈아시아인권문화연대〉대표로 일하고 있는 이란주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모루 엄마는 아빠가 보내준 월급으로 모두가 살아가고 있으니, 아빠가 잡히지 않도록 도와 달라고 그녀에게 요청해 온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마음고생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체류자로 낙인이 찍힌 채 공장에서 일하다 다쳤을 경우 제대로 된 치료비도 못 받을 뿐더러, 퇴직금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물론 1997년 대법원에서는 미등록 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에 따라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했고, 2000년에는 연수생도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례를 명시했다. 하지만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몫은 미등록 노동자 당사자들의 몫이 되어 있으니, 누가 강제로 출국당할 그 일을 감행하려 들겠는가?

"나는 돌아가서 무슨 일 할 거냐고 물어 보는 게 제일 무서워요. 나는 아무 준비도 못하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전혀 모르잖아요. 그 동안 우리나라는 많이 변했을 텐데……."(240쪽)


아빠, 제발 잡히지 마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기록

이란주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09)


태그:#이주노동자, #아시아인권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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