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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관 무기를 배경으로 한 <조선무사(朝鮮武史)>
 전수관 무기를 배경으로 한 <조선무사(朝鮮武史)>
ⓒ 최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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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아야 할 올바른 역사는 무엇일까?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을 분명히 가르는 것이 올바른 역사일까? 그래서 나와 관계된 사람이나 조상이 성공한 사람으로 기록되면 자랑스럽고, 그렇지 못하면 부끄러운가?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역사를 선조의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우리 생각 뒤에는 역사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어 온 것으로 착각하는 '영웅사관'이 버티고 있다. 한 예로, '세종대의 문화적 업적이 이룩되었던 것은 세종대왕 한 사람 때문이었고, 연산군 한 사람의 잘못으로 그 시대는 암흑의 시대였다'고 생각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이 한 사람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조선무사(朝鮮武史)>(최형국, 인물과 사상사, 값 12,000원)는 이런 물음에 대해 단호하게 대답한다. '영웅 뒤에 가려진 수많은 민(民)들과 이름 없는 병사들이 큰 전쟁을 치러냈고, 역사를 만들어왔다'고. 그래서 '이런 작은 역사들을 꼼꼼히 되새겨 볼 때 역사의 길고 긴 횡간을 채울 수 있으며 거대한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전쟁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은 언제 어디서 새롭게 발발할지 모른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두 가지 상황으로 나누어 말할 때, '전쟁 중' 이거나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항의 지속'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를 보고 배우면서 역사전개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전쟁을 그 겉모습만을 보아왔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전쟁이라는 이야기는 시종일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들이 맹활약을 펼치며 신나게 뛰어다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만다.

우리의 역사인식은 이렇게 영웅사관이나 사건주의 사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런 관점은 한 개인 혹은 한 가지 사건으로 관심을 집중시켜 그 저변에 깔린 무수히 많은 다양한 이야기를 어디론가 증발시켜 버렸다. 결국 우리가 보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한 개인이나 사건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고의 방향은 결국 편협한 역사인식이라는 결과를 낳고 만다.

하나의 전쟁이라는 사건을 비롯한 역사 사건들을 앞뒤 사정 볼 것 없이 모든 것이 왜곡된 상태로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전근대사회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광복 직후의 한국전쟁(6.25), 피로 얼룩진 민주화 항쟁을 비롯한 근·현대사 속의 수많은 사건들도 그러하다.

전쟁은 물론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 그 거대한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자칫 놓쳐버릴 수도 있는 아주 작은 구성원들의 거대한 모임이다. 그 구성원에는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이 있고, 삶의 터전인 땅도 있고, 사람을 기쁘게 해주거나 절망에 이르게 하는 날씨도 있으며,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사는 뭇 생명들도 있다.

전쟁이라는 괴물은 일단 발발하면 전 국가의 구성원들이 그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런데도 전쟁 와중에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아파하는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웅호걸들뿐일까? 시간이 흐른 오늘날, 이름난 장수나 대세를 이끌어간 국가 지도자의 업적이 아닌 고통스러웠던 백성들의 삶과 말단 병사들의 고통은 관심 받지 못하고 기억 저 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 가장 급격한 삶의 변화를 겪어야 했던 사람들은 바로, 실제 전쟁에서 총칼을 쥔 군사들과 그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물자를 보급했던 일반 백성들이었다. 이들의 삶과 일상이 곧 전쟁의 기반이 되는 것이며, 이들 없이는 아무리 뛰어난 장수나 지휘관도 자신의 이름을 역사 속에 남길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진짜 역사'보기는 작은이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작은 역사에서부터

이 책은 이러한 풀뿌리들의 역사를 들추어 좀 더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가까이 접근하여 새롭게 역사를 검토하자는 저자의 미시적 역사관이 잘 집약된 대중역사서이다. 이런 시각은 '조선시대 무인들이 과연 천대받았을까?' 하는 우리들의 상식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된다.

흔히 조선시대는 무를 천시하고 문을 숭상한 것으로 알려졌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조선 초기 무과는 대과(大科)의 핵심적인 시험에 속할 정도로 무인 계층은 지배권력 체계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책을 보면 조선 초기는 물론 역대 왕들의 무예와 무인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다. 연산군은 무인들을 우대했고 선조는 무예서를 편찬했으며 효종은 궁궐 정원에서 칼 수련을 했을 정도다. 숙종, 정조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또한 '무기력한 조선군'의 이미지를 깨뜨린다. 그는 조선군은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조선시대 전력의 재검토로 증명한다. 조선군은 선발에서부터 엄격했으며 밥 먹는 것까지 훈련을 받았을 정도로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 세계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군대든 강할 때가 있고 약할 때가 있듯이 조선군 사상 최악의 상황 또한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해주고 있다. 병자호란 때 청의 기병 300명에게 조선군 4만 명이 전멸당한 쌍령(雙嶺) 전투를 말이다. 역사란 과거의 흥망성쇠를 함께 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초들의 고되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 실제 그들이 겪었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묘사는 이제껏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가 바로 오늘의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잘못된 역사상식을 바로잡고자하는 의도로 글을 풀어갔다. 이를 통해 진실로 우리 삶에 깊숙이 다가 설 수 있는 역사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높은 산허리를 감싸 안은 거대한 산성을 바라보며 그 웅장함에 취해 감탄사를 연발하는 역사바라보기가 아니라 산성을 쌓기 위해 흘려야 했던 피와 땀방울의 가치, 그리고 그들의 고통까지도 함께 생각하는 낮은 곳을 향한 역사 바라보기다.

저자는 병사의 하루야말로 국가 존망과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했다. 곰팡내 나는 조선시대 병서를 참고해 고달픈 조선 병사의 하루를 소개한 대목은 이전의 책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상 나팔 소리에 맞춰 잠에서 깨 물을 긷고 땔감을 구해오고, 조총사격훈련, 비상식량 만들기, 완전군장훈련, 행군 등 온종일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다 곤한 몸을 재우는 조선 병사의 모습은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책을 읽으면 날씨 탓에 죽어라 고생해야 했던 봉수군들의 고통은 조선 최고의 통신수단인 봉수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알 수 있었고, 몸이 부서져라 돌을 이고지고 날라야 했던 축성역은 우리나라의 훌륭한 성곽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무기제작을 위해 짐승들을 잡으러 끌려 다니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고향에 돌아오면 남은 것은 주린 배를 움켜쥔 처자식과 망가진 몸뚱아리가 전부였던 백성들의 모습을 모두 과거의 군사제도와 갖가지 제도들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인조반정의 빌미를 제공한 호랑이 사냥, 조선 최고의 특수부대 장용영, 국왕의 호위부대 겸사복, 조선의 비밀병기 편전, 백성들이 직접 손에 들고 싸웠던 조선 특유의 다양한 병기들이 500년 조선 역사를 지켜 온 힘이었음을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이 하나같이 말해 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연구 업적을 쌓아 가면서 집필된 책이라 일반 대중에게 재미있으면서도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저자가 실제 무예를 익히고 있기 때문에 글과 문장 하나하나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분야 연구가 사료 자체가 빈약하고 기존 연구 성과도 그리 많지 않아 힘든 작업이지만, 거대한 퍼즐조각을 맞추는 더디고 지루한 일을 계속 하고 있다. 그는 오늘의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현실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쉽게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 먼지 쌓인 도서관 서고의 오래된 역사가 아닌 바로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숨 쉬는 역사이야기 보따리를 풀어가고 있다.

필자가 만나본 저자는 대단하다는 표현을 아끼기 힘든 인물이었다. 무예24기연구소 소장인 그는 낮 시간을 이용해 마상무예 복원과 무예훈련을 하면서도 단 몇 분의 짬나는 시간도 글과 함께 했으며, 밤에는 자리에 앉으면 몇 시간이 지나도 일어날 줄을 모를 정도로 무예사와 전쟁사를 깊이 연구하고 있다.

그는 역사학에 본격적인 발걸음을 딛기 시작한 후부터「조선후기 왜검교전 변화 연구」(『역사민속학 25』, 한국역사민속학회, 2007),「조선후기 군사 신호체계 연구」(『학예지 15』,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2008)를 발표했고, 올 해에 「조선후기 기병 마상무예의 전술적 특성」(『군사 70』,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09년 4월), 「조선시대 기병의 전술적 운용과 마상무예의 변화」(『역사와 실학 38』, 역사실학회, 2009년 4월)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연구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탐구 작업들을 통해 오늘날 아직도 일제침략기 식민사관에 의해 폄하되고 왜곡된 시각에서 부유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조선의 무사(武史)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이 책에 앞서 영웅, 사건 위주에서 벗어나 조선을 구성했던 수많은 조선 민(民)들의 작은 역사를 재현한 <친절한 조선사>(미루나무, 2007) 역시 역사대중서로 독자들에게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며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경영학도와 무예가를 거쳐, 시민기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며 이제는 중앙대에서 역사학 공부를 하고 있는 저자의 폭넓은 경험이 녹아들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삶을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펜을 들고 하루하루를 천금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표현하는 그는, 정말로 하루 24시간을 48시간 이상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 실학자였다. 이제 갓 역사학에 입문한 필자가 참으로 닮고 싶은 학자이다. 이제 두 번째 책을 내놓은 저자의 향후 저술 활동이 가슴 설렐 만큼 큰 기대로 다가온다.

청산되어야 할 영웅사관과 역사바로보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영웅사관을 벗어나지 못했고 이 시대 이 땅의 국가 지도자들은 케케묵은 구시대 유물인 좌우이념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역사의 심판에 눈 가리고 아웅 하려는 웃지 못 할 해프닝들을 버젓이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이 팽배해지면 대중들은 자칫 역사와 나는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그저 교양 혹은 입시를 위해 배워야 할 먼 시대 혹은 먼 나라의 이야기로 생각하게 되어 버릴 것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이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 남긴 모습과 생활이 훗날 다른 세대에게는 곧 '역사'라는 놀라운 이야기로 전해진다는 아주 단순명쾌한 사실마저도 망각한 채 오늘을 보내고 있다.

이 책은 찬란했던 과거를 보는 책이 아니다. 과거가 찬란한 영광을 누렸든 후세에 부끄러운 모습을 남겼든 그것을 추억하는 것은 단순한 추억의 유희일 뿐 더 이상 우리의 당면 과제가 아니다. 역사는 현재를 보는 것이며, 미래를 위한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으려는 인간의 노력 때문에 끊임없이 기록되어왔다.

이 책에서 깊이 공감할 수 있듯이 과거의 우리 조상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현재의 우리처럼 생활하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과연 쌍령전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전쟁 통에 죽어나간 힘없는 백성들을 보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과거 전제국가 체제가 행한 수많은 실정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꼭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문명을 고도로 이룩한 현대사회에서 역사에 대해 접근하는 것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쉬운 일이다. 오늘날 국민들은 옛날 백성들처럼 지식을 얻기 힘든 처지가 아니다. 옛 사람들이 역사를 보지 못하여 범했던 실수, 그 이후에도 역시 역사를 제대로 보고 읽고 생각하지 못하여 되풀이했던 수많은 실수들을, 수 천 년 동안 반복해야 했던 실수들을 이 시대에 와서 반복해서야 되겠는가. 조선을 건국한 왕조가 <용비어천가>를 지어서 선조들의 업적을 미화했다고 해서 역사가 바뀌지 않았듯이, 역사의 뼈저린 교훈은 권력의 입맛에 맞게 역사 교과서를 뜯어 고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첨부파일
musa_b.jpg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중앙대 역사학과 석사과정에 재학중입니다.



조선무사 - 조선을 지킨 무인과 무기 그리고 이름 없는 백성 이야기

최형국 지음, 인물과사상사(2009)


태그:#조선, #전쟁사, #무예사, #백성, #미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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