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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여론에 반해서 미디어법이 통과됐단다. 어떤 이들은 사사오입 개헌의 부활이라 했고, 어떤 이들은 대리투표, 재투표로 점철된 원천 무효 행위라 했다. 반면 직권상정과 강행처리를 주도한 쪽에서는 법안 통과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월드컵 4강 신화처럼, 김연아나 박지성의 성공처럼 꿈은 알뜰살뜰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장밋빛 선물일까.

 

가난한 사람들의 꿈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갈까.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끼니 걱정 하지 않고 사는 세상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끼니 걱정 없이 산다면 아무 걱정 없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도 먹고 사는 일이 나아지질 않았다. 대구에서는 전매청 연초 공장에서 직공들이 하도 배가 고파 담배를 말아 붙이라고 내놓은 풀을 자꾸 먹어치웠다. 회사에서 먹지 못하게 풀에 물감을 탔다. 물감 탄 풀까지도 몰래 먹으며 허기를 달래다 쫓겨났다. 말이 아니라 실제 '입에 풀칠' 하던 노동자의 자리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아야 '해방 공간'이 제대로 보인다.(책 속에서)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해방의 날은 밝았지만, 가난한 이들의 끼니 걱정은 여전했다. 배고픈 노동자들에게 버스비를 아껴 풀빵을 사주고 걸어 다녔던 전태일이 살던 때에도 배고픈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배가 고프다"란 말이었다고 한다.

 

형수에게 밥주걱으로 뺨을 얻어맞은 뒤 얼굴에 묻은 밥풀을 떼어 먹으며 한 다른 쪽 뺨도 때려달라던 흥부의 이야기가 호랑이가 담배 피던 먼 옛날의 비현실적 이야기만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힘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은 겉모양으로는 어진 목민관이요, 주민과 국민의 종복인 것처럼 내세우길 좋아했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힘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힘과 권력을 휘두르기 일쑤였다.

 

그들이 휘두른 힘과 권력은 가난한 이들의 생존마저 위협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싸울 수밖에 없었다. 먹고 사는 일이 힘들어 싸울 수밖에 없었고, 먹고 살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역사

 

가뭄 때 텃밭에 땀 흘리며 물이라도 몇 차례 주어보면 안다. 씨앗이 싹터서 자라고 열매를 맺어 다시 씨앗이 되는 순환의 과정에서 사람이 하는 일이 하늘이, 태양이, 바람이, 비가, 땅이, 곤충이, 식물이 미생물이 하는 일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수많은 역사책은 왕이나, 지도자나, 위인이나, 장군이나, 많이 가진 자들이 마치 똑똑하고 힘이 있어 역사를 움직여 온 것처럼 쓰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얼마나 될까. (책 속에서)

 

박준성이 태어난 곳은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이다. 전국을 들불처럼 불사르던 동학농민전쟁이 뜨겁게 타올랐던 강원도 격전지 중의 한 마을이다.

 

동학농민전쟁의 전적지에서 나고 자란 때문이었을까. 역사를 전공했던 박준성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역사에 주목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려고 한 게 아니라 스스로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했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과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살았다. 노동운동, 민중운동 단체에서 '한국근현대사', '노동자와 역사철학','노래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슬라이드로 보는 노동운동사' 등의 강의를 했으며, 역사 현장을 찾아 역사 기행 안내를 지속했다.

 

밭을 갈고, 공장에서 일하고, 전쟁터에서 죽고 다치고, 가진 것 없이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를 찾아내어 일하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일로 20년을 살았다. 일하는 사람들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서로 어울려 돕고 나누며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

 

역사에서 찾는 희망

 

역사는 늘 힘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늘 패배와 좌절의 연속처럼 보인다. 세상의 변화를 꿈꾸던 이들도 견고한 현실의 벽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곤 한다. 희망이 안 보이기 때문에.

 

박준성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얘기한다.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역사관에 젖어 살기 때문이라고. 앞길이 안 보일 때는 역사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1980년 광주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려주며 1987년 6월항쟁과 7 ․ 8 ․ 9월 노동자 대투쟁을 이끌었다. 그리고 1988년 전두환을 백담사에 유폐시키고, 1995년 성공한 구데타 주역 전두환과 노태우를 감옥에 보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제 발로 감옥을 간 게 아니었다. …(중략)… 우리는 앞서 살아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에 기대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후배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운 기둥에 기대고, 우리가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서 살아가게 된다. (책 속에서)

 

덧붙이는 글 | 박준성/도서출판 이후/2009.6/16,000원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이야기

박준성 지음, 이후(2009)


태그:#박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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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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