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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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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편집위원이면서 노동자 <노동자교육센터> 부대표와 <역사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계신 박준성 선생이 책을 냈다.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이야기>(이후 출판사). 그동안 다른 이들과 같이<1862년 농민항쟁>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라는 책을 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혼자서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준성 선생 소개를 간단하게 해 본다. 자본가들이 본다면 박준성 선생은 백수다. 돈 버는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왜곡하기를 좋아하는 수구 신문들이 본다면 '순진한 사람들 앞에서 매번 통박만 굴리고 이빨만 까는' 사람이다.

아무 직업도 없이 허름한 옷차림으로 커다란 등산 가방에 뭔가 잔뜩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노동자들을 모아 놓고 역사랍시고 '썰'을 푼다. 그 역사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여지없이 이 나라 역사를 잘못 배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깨달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실제로 한 발 내딛게 된다. 이 나라를 지배하는 자들이 보면 '순진한 백성을 의식화'시킨다.

박 선생 강연은 여느 강연과 다르다. 요즘처럼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파워포인트도 아닌 슬라이드로 강연을 한다. 찰칵! 찰칵! 한 장 한 장 필름이 넘어가는 소리는 우리를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강연 도중 가끔 노래를 한다. 우렁찬 목소리와 가늘게 떨리는 바이브레이션이 섞여 있는 목소리다.

즐거웠던 그날이 올 수 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 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노래를 부른 뒤 손뼉 치는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잠깐 동안 기다린다. "와! 짝짝짝짝!" 무슨 뜻인지 알고 손뼉을 치면 강연이 이어진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를 하고 뉘우쳐도 과거는 다시 돌이킬 수도, 없앨 수도, 바꿀 수도, 물릴 수도 없습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과거의 기억인 역사가 필요하다고 썰을 풀기 시작하면 누구든 선생의 강연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렁찬 노래 소리에 졸다가 깜짝 놀라는 수가 있다.

박준성 선생의 강연을 들으면,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깨닫게 된다. 역사는 기억이다. 한 사람이 여태껏 살았던 것을 모두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자기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르고, 지금 우리나라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왜 90퍼센트나 되는 서민들이 1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부자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가들은 우리 노동자들에게 역사를 잘못 이해하도록 끊임없이 세뇌시켜 왔고 노동자들의 생각을 지배해 왔다. 박준성 선생은, 수많은 역사책이 "왕이나, 지도자나, 위인이나, 장군이나, 많이 가진 자들이 마치 똑똑하고 힘이 있어 역사를 움직여 온 것처럼" 나와 있지만, 그 뒷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의 역사>(동녘)라는 책에서 나온 이야기를 빌려 "김대성이 불국사와 석굴암을 혼자 다 만들었을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가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순신 장군 혼자 나무를 베어 거북선을 만들고 혼자만 나라 걱정하며 싸우다 죽었을까?" 하는 질문을 노동자들에게 던진다.

박준성 선생은 길거리에서도 자본주의가 알게 모르게 서민들을 세뇌시킨다는 것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했다. 1990년 전반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옆 건물에 그려져 있었던 김홍도의 <타작도>에도 그런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역설한다. <타작도>에는 농부 여섯 명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장면이 들어 있는데 그림 오른쪽 위에서 자리 깔고 누워 혼자 술잔 기울이다 깜빡 졸기도 하는 지주를 빼 버렸다. 왜 뺐을까?

박 선생은 책에서 그 까닭을 자세히 설명했다. 자본가들은 이렇게 길거리에 널려 있는 사소한 그림이나 광고 하나도 서민들을 세뇌시키는 도구로 이용한다. 박준성 선생은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역사가 단순한 과거의 박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책에서 자세하게 밝힌다.

이 책 끝 부분에는 '박준성의 항암 투병 일기와 아내 김명희의 간병 일기'가 실려 있다. 박 선생은 2003년 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의사가 하는 말 "6개월 뒤에 봅시다" 하는 반가운 말을 들은 지 몇 년째. 이제 박 선생은 다시 건강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부인인 김명희 선생의 노력은 실로 눈물겨웠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은 2003년 11월부터 전국에 수소문해 5년 동안 몸에 좋다는 나물과 채소를 구해 다듬고 밤새도록 중탕해서 챙겨 주었다. 김명희 선생은 남편 건강이 회복되는 것을 보고 "그저 살아 주는 것만도 이렇게 고맙다"고 했다.

박준성 선생은 2006년 5월부터 다시 '노동자 교육'에 복귀했다. 복귀한 첫 강연에서 박 선생은, "부르고 싶어도 못 불렀던 노래"를 불렀다.

"그날이 올 때까지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의 깃발을 내릴 수 없다
이름 없이 쓰러져 간 동지들이여
외로워 마 서러워 마 우리가 있다
그대 향한 깃발 들고 나 여기 서 있다"

박 선생은 눈물이 나와 노래를 마치지 못했다. 노동자들 앞에 서서 다시 강의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겠지만 "'노동 해방'을 꿈꾸며, 자본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맞서, 반자본 대안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에 아직도 내가 물 주고 씨 뿌릴 일이 있다고, 기억이 살아나 손짓을" 하는 것이 더 기뻤기 때문이리라.

박 선생이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말이 있다.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이라는 말이다. 덕숭산에 있는 만공 스님의 '만공탑'에 써 있는 말인데 천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박준성 선생은 그 말을 실천하느라 여전히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슬라이드로 보는 노동운동사'를 강의하고 다닌다.

박준성 선생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천사불여일행'과 함께 가슴에 품고 다니는 말에서 우리는 그 세상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을 장악하는 자(세력)가 역사를 지배하고, 역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했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바로 노동 해방의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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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작은책 홈페이지와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
www.sbook.co.kr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이야기

박준성 지음, 이후(2009)


태그:#작은책, #역사, #박준성, #노동자,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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