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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숙명여대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의 특강이 있었다. 주제는 "나도 새 매체를 창간해볼까". 필자가 시민기자로 데뷔한 것도 사실 전부 이 강의 덕이다. 그런데 이 강의가 평범한 특강은 아니었다.

 

명사초청 특강 <우리 시대의 창조적 지성>

 

한창 수강신청 전쟁이 치러지던 여름방학, 몇 학기 전 교양과목을 수강했던 황영미 교수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학교에서 새로운 전략과목을 개설하는 데 수강하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는 추천의 말이었다. 강의 이름은 <우리 시대의 창조적 지성>. 매 시간 저명인사를 초청하여 특강과 질의응답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했다.

 

정원이 20명으로 한정된 데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형식의 전략과목이기 때문에 우선 수강신청을 받은 후에 면접을 거쳐 수강생을 선발한다고 했다.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고도 수업시간을 통해 다양한 연사들의 수준 높은 특강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에 바로 수강을 결정했다. 수강생 구성원은 교내 토론대회 상위 입상자들이 많았는데, 평소 토론에도 관심이 많은 터라 괜스레 더 기대가 됐다.

 

생각하는 힘을 가진 창조적 인재 양성

 

학교에서 왜 이런 전략과목을 개설하나 했더니, 올해 새롭게 등장한 우리 학교의 교육 목표 때문이었다. '생각하는 힘을 가진 창조적 인재 양성'. 어딜 가나 '크리에이티브'를 부르짖는 세상이기에 시대에 맞게 잘 지은 슬로건이라고는 생각했는데, 내가 수강하게 된 <우리 시대의 창조적 지성>과 함께 개설된 <우리 시대의 인문 지성> 두 과목을 통해 슬로건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영화감독 이명세, 조한혜정 교수, 소설가 김훈 등 명사들의 릴레이 특강

 

한 학기 동안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 영화감독 이명세,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소설가 김훈 그리고 오마이뉴스를 창간한 오연호 대표기자 등 저명인사들의 특강이 이어졌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들을 수 있는 특강들을 단순히 한 자리에 모아만 놓은 게 아니었다. 연사 초청 기준과 강의 주제와 초점 모두 '창조적 지성'에 집중됐다. 또한 수동적으로 강의만 듣는 것도 아니다. 수강생들은 수업 전에 연사에 대해 주제탐구 조사를 하고 질문거리를 미리 준비한다. 강의 시작 전에는 담당 교수의 오프닝 멘트와 간단한 연사 소개 시간도 있다.

 

평소 기회가 닿으면 여러 기관에서 주최하는 특강에 즐겨 참여하는 편인데, '창조적 지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 학기 동안 명사들의 강의를 꾸준히 들을 수 있어 도움이 됐다. 특히 연사들의 삶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영감을 얻는지에 대해 들을 때는 입을 다물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명세 감독이 처절한 열등감 가운데 어떻게 영화감독의 꿈을 꾸게 되었는지, 소설가 김훈이 단 한 문장을 정제하기 위해 며칠이나 잠못 이루는 밤을 보냈는지, 오마이뉴스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고 세계적으로 얼마나 주목받아 왔는지 알게 됐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강의에서는 문화인류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이 세상을 보는 거의 '신비한' 시각에 경탄하고 말았다. 덕분에 관심 없던 대학원에 진학하여 문화인류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꿈도 갖게 됐다. 이렇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걸 보면, 단 몇 번의 명강이 얼마나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지 알 수 있다.

 

  오픈클래스, MIT서 시작된 지식기부에 동참중

 

필자가 좋은 강의 들은 얘기를 왜 그렇게 자랑하느냐 하면, 이 수업의 모든 강의가 온라인으로 공개되어 누구나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수업의 특징은 창조적 지성을 주제로 하고 명사 초청 특강으로 이루어지는 것 외에도 '오픈클래스' 즉 '온라인 무료강의 프로그램(Open Course Ware)'이라는 점에 있다.

  

오픈클래스(오픈코스웨어, OCW)는 2002년 MIT공대에서 시작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대학의 지식공유운동이다. 대학의 수업을 사회기여와 인류의 지적 진보를 위해 일반시민에게 통째로 공개하는 것이다. OCW는 실제로 반향이 엄청나다. MIT의 OCW 누리집(ocw.mit.edu)은 매달 방문자만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OCW를 한국에 흔한 사이버강의, 온라인강의와 혼동하기 쉽지만 다르다. 취지부터가 공익 목적이기 때문에 모든 시민에게 개방돼 있고 전면 무료다. 하지만 실제 대학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따를 수 있다고 하여 학점이나 학위를 취득할 수는 없다. 순수하게 학업에 열의를 가진 시민들을 위한 지식공유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도 KOCW(Korea Open Course Ware)라고 하여 고등교육 교수학습자료 공동활용 서비스(www.kocw.net)가 운영 중이지만 아직 초보 단계다. 참여하는 대학 수는 71여개 강의 수는 400여개로 턱없이 적다. 게다가 홍보가 부족하고 로그인을 해야 하는 등 접속 과정에서의 접근성도 떨어져서 실제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숙명여대 오픈클래스는 홈페이지(www.sookmyung.ac.kr) 메인화면의 '오픈클래스'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로그인과 같은 별도 절차 없이 바로 강의를 볼 수 있어 편리하다. 초청강의로 이루어지는 강의 특성상 단순히 영상뿐 아니라 연사 약력도 보여주기 때문에 참고하면 된다. 제공되는 강의는 아직 <우리 시대의 창조적 지성>과 <우리 시대의 인문 지성> 두 가지뿐이지만 점차 확대되리라 기대한다.

 

 

  "나도 새 매체를 창간해볼까" 창조적 영감 주는 오연호 특강

 

서두에 언급했듯 이 강의에 오연호 대표기자가 초청된 덕분에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가입하게 됐다. 오마이뉴스는 평소 좋아하는 언론이지만 시민기자 시스템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에 참여하려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던 거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미리 읽게 된 그의 책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 도대체 내가 왜 이걸 이제야 알았던가 이마를 치며 시민기자로 가입했다.

 

강의가 있던 날 오전 나는 첫 기사를 송고했고 두근거리는 몇 시간이 지난 후 기사가 잉걸로 채택된 것을 확인한 후 환희에 들떠 수업에 들어갔다. 그 계기로 강의 후에는 오연호 대표와 짧게나마 환담을 나눌 기회도 얻었다. 강의 내내 얼른 질문을 하고 싶어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본 기사는 그에게 내가 시민기자임을 밝히고 취재허가를 얻어 쓰는 것이다.

 

 

강의는 그의 저서에 많은 부분 기초하고 있었다. 83학번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김유정처럼 농촌소설을 쓰는 작가를 꿈꾸었지만 허구를 쓰기에 시대는 아직 냉혹했다. 대신 그는 현실을 쓰는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89년 입사한 <말>지와는 성향이 잘 맞아 12년 개근에 빛나는 근무를 했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월간지 기자로서 설움도 많이 겪었다. 한 예로 94년 <말>지가 보도했던 노근리 사건에 세상은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기사에 조금 보완된 내용이 99년 AP에 보도되자 국내의 모든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했다. AP 기자들은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오연호 기자는 매체나 기자의 유명세가 아닌, 기사의 질로만 평가받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슬로건도 <말>지 근무 당시 만들어낸 것이다. 이 말은 당당함과 겸손이라는, 어찌보면 모순되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모든 시민은 기자이기 때문에, 그는 비주류 월간지의 기자이지만 대형 일간지 기자들 사이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모든 시민은 기자이기 때문에, 그는 기자로서 가질 수 있는 특권의식을 떨쳐버려야 했다.

 

 

오마이뉴스의 창간, 창조적 도전

 

<말>지에서 열심히 일했으나 권태가 찾아왔다.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외부 환경의 변화 때문이었다. 자신이 근무하는 매체가 시대에 뒤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는 편집장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오연호를 워싱턴 특파원으로 보낸다. 그에 따른 모든 비용은 오연호 개인이 부담한다.'

 

편집장은 일 잘 하다가 무슨 소리냐며 말렸지만, 오연호 기자는 워싱턴 특파원으로 보내주지 않는다면 퇴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근속 기자를 내보내느니, 제 돈으로 가겠다니까 편집장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가 미국으로 가서 공부한 것이 '매체창간' 저널리즘 석사 과정이었다. 그렇게 그는 오마이뉴스를 준비했다. 현재 67000여 명에 이르는 시민기자와 함께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그의 슬로건이 현실화되었다.

 

본래 직업기자가 등장한 것은 윤전기가 발명된 이후다. 고작 몇 백 년도 안 됐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은 정확히 말해 재발견한 것이지 만든 것은 아니다. 원래는 정말로 시민이 기자였기 때문이다. 이웃집 김 씨가 벼를 베다가 다쳤고, 소나기가 내리니 마당에 넌 고추를 걷어야 한다는 등 모든 소식은 시민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매스미디어가 등장한 이후 시민들의 언론참여 창구가 제한됐지만 오연호 기자는 뉴스를 시민들에게 되돌려준 것이다. 사고의 틀을 전환하는 창조적 지성이 아니고서야 쉽게 하지 못할 도전이다.

 

강의를 보려면

 

기사가 작품이 되지 않으면 시간의 쓰레기가 되어 버릴 뿐이라는 오연호 대표기자의 특강은 숙명여대 오픈클래스(ocw.sookmyung.ac.kr)에 17일 업로드될 예정이다. 오연호 기자 외에도 다양한 연사들의 특강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조한혜정 교수와 소설가 김훈의 강의를 추천한다.


태그:#오연호, #숙명여대, #O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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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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