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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이곳에서 고성이씨 이응태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 망자의 가슴을 덮고 있는 한글 편지가 발견되었다.

"원이 아버지께, 아내가."

편지는 아내가 죽은 남편에게 쓴 것이었다.

원이 엄마의 애절한 글
▲ 원이 엄마의 편지 비석 원이 엄마의 애절한 글
ⓒ 손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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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나 저에게 둘이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저와 어린아이는 이제 누구 말을 듣고, 누구를 의지하며 살라고 먼저 가십니까? 당신, 저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오셨나요? 저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저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당신은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잊으셨나요? 그런 일을 잊지 않으셨다면 어찌 저를 버리고 그렇게 가시는가요? 당신을 잃어버리고 아무리 해도 저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빨리 당신 곁으로 가고 싶습니다... (중략)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이 편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4백 년 전(1586년)에 쓰인 것이다. 수백 년의 세월동안 남편의 무덤을 지켜온 이 편지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무덤에서 발굴된 편지와 미투리 등의 유물은 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원이 엄마를 형상화한 '안동 아가페상'
▲ 안동 아가페상 원이 엄마를 형상화한 '안동 아가페상'
ⓒ 손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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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 안동 아가페상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 손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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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는 이들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무덤이 있던 인근에 편지 비석과 원이 엄마상을 세웠다.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를 고이 들고 있는 원이 엄마상에는 먼저 간 남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배어난다. 그녀는 이 짚신을 삼으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눈가에 가득 고인 슬픔과 볼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이 애처롭다.

귀래정의 가을 풍경
▲ 귀래정(歸來亭) 귀래정의 가을 풍경
ⓒ 손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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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근처에는 고성이씨 귀래정파 종택인 귀래정(歸來亭)이 있다. 이응태가 태어나 자라고 훗날, 이응태 부부가 살았을지도 모를 이곳에서 이들 부부의 사랑을 그려본다. 귀래정 주변의 벚나무에는 단풍이 붉게 물들고 있다.

이응태 부부의 사랑이 간직된 목책교
▲ 월영교(月映橋]) 이응태 부부의 사랑이 간직된 목책교
ⓒ 손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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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엄마의 미투리를 형상화했다.
▲ 월영교(月映橋]) 원이 엄마의 미투리를 형상화했다.
ⓒ 손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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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명물인 월영교(月暎橋)에도 이응태 부부의 사랑이 간직되어 있다. 월영교는 원이 엄마가 먼저 간 남편을 위해 삼은 미투리 모양을 담아 지은 것으로, 이들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을 영원히 이어주기 위한 '안동의 오작교'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건너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새벽안개가 자욱한 월영교의 모습.
▲ 월영교(月映橋]) 새벽안개가 자욱한 월영교의 모습.
ⓒ 손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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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한가운데에 위치한 월영정(月映亭)에서 강물에 비치는 하현달을 바라본다. 새벽안개에 비끼는 달그림자가 사뭇 몽환적이다. 꿈속에서라도 먼저 간 남편이 찾아와 주기를 기원했던 원이엄마. 월영교의 경관은 4백 년의 시간을 넘어 원이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는 듯하다.

조두진 작가의 <능소화>.
▲ 능소화 조두진 작가의 <능소화>.
ⓒ 손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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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는 이응태 부부의 사랑을 바탕으로 한 조두진 작가의 <능소화>가 출간된 바 있다. 활짝 핀 모습 그대로 지는 능소화에는 어여쁜 여인이 꽃이 되어 님을 기다린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그러나 그들만의 사랑의 역사를 편지로 전해주는 이응태 부부의 사랑. 새벽안개가 걷힐 무렵, 월영교의 하늘 위로 백로 한쌍이 지나간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그 모습 뒤로 원이엄마의 편지와 능소화를 생각해본다.

능소화 연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곳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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