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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가 새해 업무보고에서, "현재 중학교 2학년이 대학에 들어가는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외국어(영어) 영역 듣기평가 비중을 현재 34%에서 50%로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엇갈렸다. 박수치는 사람과 한숨짓는 사람! 대한민국의 연말은 또 그렇게 두 편으로 갈릴 처지에 놓였다.

 

쾌재를 부르는 집단은 당연 강남과 특목고, 광역시 부자 동네, 그리고 사설 학원이다. 영어야말로 사교육 효과가 가장 잘 먹히는 교과 영역임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육 격차 및 빈부의 대물림을 사실상 견인해 왔다는 사실 역시 모르는 이가 거의 없다. 대전만 해도 시도교육청연합듣기평가를 치르면 잘사는 서구, 유성구 지역 중학생들은 한 문항만 틀려도 석차가 저 아래인 반면, 구도심(동구, 대덕구, 중구) 지역 학교의 중학생들은 거꾸로 100점을 얻은 학생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반대로 부모 학력이 떨어지는 계층 및 소득이 낮은 지역의 학부모들은 한숨을 짓는다. 명품 사교육은 고사하고 보습학원비조차 대기 버거운 상황에서 이번 '수능 듣기 50%로 확대 방침' 발표는 "그만 발버둥치고 이제 자식 대학 보내는 거 포기해라"라는 소리로 들린다. 가뜩이나 토익, 토플, 텝스 등 영어인증 점수가 명문대학 입시(수시 특별전형)의 유력한 도구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능마저 배신을 하였으니 볼멘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초중고교에서 실용영어 위주의 교육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2014학년도 수능부터 외국어 영역의 듣기평가 비중을 대폭 늘릴 방침"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학교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수능에서 듣기평가 문항 비율을 높인다고 해서 실용 영어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모의고사 시험 많이 보면 볼수록 성적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근거 없는 얘기다.

 

더군다나 2015년부터 <국가영어능력인증시험>으로 수능을 대체할지 여부를 2012년에 결정한다고 발표하지 않았던가. 아무런 중장기적 비전이나 체계적인 연구 과정 없이 졸속으로 발표되는 '널뛰기 입시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건 학부모와 아이들이다. 수능 영어 듣기평가 문항을 50%로 확대하면 가뜩이나 심각한 교육격차가 50% 이상 확대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10년 이상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 보면 누구나 그런 예상을 할 수 있다.

 

교과부는 요식행위로 공청회만 한두 번 치를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표본을 상대로 믿을만한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설문조사라도 실시해야 한다. 또한, 현장 영어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마땅하다.


태그:#수능 영어듣기, #사교육 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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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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