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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와 학원가에는 'SKY대' 입학을 목표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수십만 명의 수험생들이 '열공' 중이다. 나 자신도 꼭 30년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 낙방한 뒤 재수 학원에서 '열공'한 바 있다. 당시로서는 이른바 '일류대'에 입학하는 것이 내 인생 최고의 목표였다. 마침내 나는 그 목표를 이루었다.

그러나 막상 대학을 들어가고 나니, 내가 배우는 공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들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노력한 만큼 대접받으며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가르쳐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갈수록 내가 느낀 건, 내가 바라는 공부는 강의실 안에서는 얻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강의실 밖에서 만났던 선생님들이 더 인간적이었고 인생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다. 그러던 도중에 나는 내 삶의 방향을 세울 수 있었다.

1970년 11월, 청년 전태일이 외치며 죽어간 것처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인간다운 삶'을 평생의 화두로 삼기로 했다. 공부를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즐겁게 일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이런 방향으로 탐구하기로 했다. 그래서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처럼, 내가 바로 그 '대학생 친구' 아니 '대학교수 친구'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대학 교수가 되었고, (나 혼자 짝사랑인지는 모르나 전태일의 친구인) 대학교수로서 13년이 흐른 지금, 나는 '김예슬 선언' 앞에 서 있다.

김예슬 선언 앞에 선 나 '올 게 왔군'

1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시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발길을 멈추고 글을 읽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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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2010년 3월 10일 오후, 고려대 서울 교정에 나붙은 대자보의 제목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SKY대'의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예슬씨가 주인공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김씨가 대자보까지 쓰며 대학을 거부한다고 선언한 배경을 날카롭게 지적한 대목이다. 나는 이 대목을 보면서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 사실, 김씨가 말하기 이전에도 많은 대학생들이나 양심적인 교수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걸 것인가?'하는 물음처럼,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막상 이 '불편한 진실'을 누가 까발리고 누가 먼저 나서 대안적 실천을 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는 모두들 마음속으로만 앓고 있었던 게 아닌가.

"큰 배움 없는 '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돼 부모 앞에 죄송하다."

이 부분에 이르면 나는 과연 대학 선생으로서 학생들에게 '큰 배움'을 얻을 수 있게 잘 도와주고 있는지 자성하게 된다. 나아가 1년에 1천만 원 가까운 등록금을 내는 대학생들이 취업도 잘 안 되는 지금, 결국은 미래의 불안정한 노동력을 미리 저당 잡힌 채 부모들의 어깨만 무겁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생각해 보면, 대학 졸업 이후에 대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취업을 쉽게 하던 시절은 이미 지난 것 같다. 게다가 보다 엄밀히 따지면 대학이 글자 그대로 큰 배움을 얻는 곳이라면 (실은 취업과 무관하게) 세상의 참된 이치를 깨닫고 자신과 사회의 참된 발전을 위해 실력을 쌓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예전에 취업이 잘 되던 시절조차 대학 본연의 진리탐구나 사회 공헌을 제대로 했는지도 의심이 간다.

다만, 졸업 이후에 취업이 잘 되는 것만으로도 그저 대학 생활을 잘 한 것으로 대충 넘어간 면도 없지 않다. 그리고 졸업하기만 하면 먹고사는 걱정이 별로 없던 시절이니만큼 '스펙 쌓기'나 장래 걱정에 안달하기보다는 대학생으로서의 낭만을 즐기기도 하고 사회 비판 의식으로 저항과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던 것이 아닌가?

기업처럼 변한 대학, 광장의 대학으로 바뀌려면


그러나 오늘날 학생들의 사정은 너무나 다르다. 4년간 대학 등록금이 약 4천만 원에 이르고 있지만 고교에서 대학 진학률은 80%를 넘어 세계 최고의 수치를 기록한 지 오래고, 또 막상 대학 졸업식이 곧 '실업식'이라는 자조 섞인 공식마저 떠돈 지 오래다. 그러니 대학 입학을 하자마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각종 공부, 즉, 영어, 기술사, 취업 준비 학원, 해외 연수 등에 몰입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낭만을 즐길 수도, 비판적 지성을 연마할 수도 없다. 그러니 '큰 배움'을 얻는다는 건 한가한 소리로 밖에 치부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렇게 비싼 돈을 내면서 대학에 힘겹게 들어왔으면서도 큰 배움보다는 기껏해야 취업 준비만 하는 현실이 계속될수록 우리 사회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진다. 좋은 '스펙'을 쌓은 일부 학생들이야 구제받겠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취업이 어렵다. 게다가 큰 배움을 위해 교수와 학생들이 좋은 책을 읽고 진지한 토론을 벌이면서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이 사라질수록 사회 전체에 빛을 밝히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실제로, 오늘의 대학은 참된 이치를 밝히고 희망의 빛을 던지는, 그야말로 '진리 탐구'의 전당으로부터 멀어간 지 오래다. 기껏해야 '100% 취업이 보장되는 대학'이라든지, '브랜드 가치를 올려주는 대학'이라는 구호로 기업을 위한 인력 공급처 역할을 할 뿐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대학이 스스로 기업처럼 변했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한 사회 발전'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돈벌이'를 추구하는 것이 문제다.

학생들을 고객으로, 등록금을 수익으로 사고하는 방식이 문제다. 대학 교정에는 각종 민간 기업들이 장사를 하기 일쑤이고 대학은 임대료 수입을 거두기 바쁘다. 기업들은 각종 건물을 지어주는 대신 그 회사 홍보를 해주기 바라고 돈벌이에 좋은 연구 결과와 인적자원을 대주기 바란다. 심지어 대학이 기업을 설립해 지식이나 정보를 곧장 상품화한다.

예슬씨가 쓴 대로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의 걱정처럼 "길을 잃고 상처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훨씬 더 당당하고도 멋있게 살아갈 것임을 굳게 믿는다. 김예슬씨의 획기적인 '대학 거부'를 마음으로 존중하면서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더 이상 그러한 개별적 탈출 운동을 할 필요가 없는 사회, 즉 대학이 명실상부 '大學'으로서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일, 이것을 우리 모두의 사회적 과제로 끌어안는 일이다.

대학 교수인 내가 김예슬씨처럼 "나도 오늘 대학을 떠난다, 아니, 거부한다"고 대자보를 써 붙이며 멋있게 양심 고백을 하지 못해 정말 부끄럽다. 그러나 대학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늘 '김예슬 선언'을 생각하며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노력할 것이다. 무엇이 삶의 참된 이치이고 무엇이 대학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지 더욱 더 진지하게 탐구하고 토론할 것이다.

물론 대학의 안이나 밖이냐, 하는 기준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아니다. 안과 밖에서 모두가 본연의 양심으로, 진리탐구의 정신으로, 만나야 한다. 그리하여 '스트레스 사회'가 아닌 '행복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내고 실천할 것인지, '스펙 쌓기 대학'이 아닌 '희망 찾기 대학'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돈벌이 경제'가 아닌 '살림살이 경제'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보다 광범위하게 보다 진실한 모습으로 한걸음씩 걸어 나가야 한다.

학교 교문을 당당히 걸어 나간 김예슬씨는 물론, 교문 안에서도 길을 찾고 있는 수많은 다른 '김예슬'씨들을 만나 이런 개방적 토론을 하고 싶다. '제도권 대학'에만 갇히지 않고 '광장의 대학'에서 참된 삶이 무엇인지,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더불어 개방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다.

대학생들이여, 전문가 백치 대신 철학있는 실력자가 돼라

내가 사는 조치원 신안리 마을엔 작은 마을도서관이 있다. 내가 마을 이장으로서 지난 5년 간 활동하는 동안 마지막 숙원 사업이었다. 이미 작년 가을 이후로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하여 어린이 책과 성인이 볼 책을 구분하여 라벨을 붙이고 분류기호를 일일이 붙였다. 연기군의 지원으로, 한 아이가 태어나 초중고를 거치며 자라 어른이 되어 삶을 마감할 때까지 볼 수 있는 좋은 책들을 모아 놓았다. 그리고 이번 학기부터는 그 마을도서관에서 마을 공부방을 열었다.

물론 총괄 지도는 내가 하지만 우리 대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선생님 역할을 한다.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오후 7시만 되면 유치원 나이의 아이들부터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이 마을공부방으로 달려온다. 또 한 달에 한 번 수요일이면 좋은 영화도 본다. 작은 '마을 극장'이다. 마을도서관, 마을공부방에서 마을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공동체 문화를 만들고 경험하는 일이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이 이런 공간에서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쏟아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본다. 물론 대학생들 마음속으로는 '스펙쌓기'나 '장래취업'도 걱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을과 대학이 만나는 이런 과정 속에서 대학생들도 많은 느낌과 생각을 갖게 될 것이고, 많이 배울 것이다. 또 이런 작은 체험의 싹들이 모여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물론 이런 '작은' 활동만으로 세상이 모두 바뀌진 않는다. 사회 전체를 겨냥하는 큰 그림도 함께 그려나가야 한다. 그러나 과연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인가? 나부터, 우리로부터, 작은 모임이나 만남으로부터, 공동체로부터 소박하게 시작해보자. 대학생들이여, 자신만의 멋있는 삶의 목표를 정하라. 자신의 끼를 찾아라.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 배워라. 남들의 눈치를 보지 마라. 생계나 생존의 문제에 묶여 빌빌거리지 마라. 자신만의 '꿈의 길'을 가라. 그리하여 실력자가 되어라. 그러나 '전문가 백치'가 아니라 '철학 있는 실력자'가 돼라. 그리하여 그 실력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새 세상을 만드는 데 힘껏 발휘하라.

이것만이 희망의 근거가 아닌가. 이런 이야기를 가는 데마다 나눠보자. 둘러보면 군데군데 훌륭한 실천가들도 많다. 돈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떠나 온 몸으로 도전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분들과 마음으로 연결하고 같이 힘을 북돋우자. 기껏해야 80년 정도 사는 인생, 소신껏 아름답고 멋있게 살아야 후회가 없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강수돌(고려대 세종캠퍼스 교수, 조치원 마을 이장)



태그:#김예슬, #대학, #스펙, #김예슬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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