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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진반' 학급의 아들

 

지난 일요일(7월 25일), 오랜만에 서울에서 고등학교 2학년의 아들, 영대가 왔습니다. 지난 5년간, 영대는 어쩔 수 없이, 그리고 묵묵히 모티프원의 청소를 도와준, 스스로의 말에 의하면 '청소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저의 청소를 돕고, 자신의 개와 더불어 헤이리에 살면서 '방목된 가축'처럼 자유롭게 중학교 시절을 보내던 영대는 누나들의 질책으로 하루아침에 그 자유를 몰수당하고 말았습니다.

 

"공부 대신 청소만 시키면 영대의 미래는 아빠가 어떻게 책임질 거에요?"

 

나리와 주리, 두 누나의 입을 맞춘 한 목소리에 저는 어쩔 수 없이 영대를 서울의 누나들 곁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울로 학교를 옮긴 영대는 그 학교의 '부진반'에서 한 학기를 보내면서 방과 후에도 밤 10까지 하교하지 못하는 고난의 날들을 맞아야했습니다. 영대에게 서울생활의 유일한 낙은 저의 청소를 돕는다는 핑계로 헤이리로 와서 해모(영대의 애완견)와 보낼 주말을 기다리는 것인 듯싶었습니다.

 

쇠코뚜레를 한 소나, 유치원생 어린이나

 

그렇게 하기를 2년, 몇 개월 전부터 주말에도 헤이리로의 발걸음이 뜸해졌습니다. 혼자 청소하기가 힘겨운 저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왜 헤이리로 오지 않는 지를 물었습니다.

 

"아빠, 저는 공부 안 해도 돼요? 고등학교 2학년인데……."

 

저는 아들의 똑 쏘는 이 말 한 마디 때문에 조용히 통화종료버튼을 눌러야했습니다.

 

그랬던 아들이 지난주 주말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독서실에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동생 끼니도 챙겨주지않는 이기적인 딸들에게 치를 떨면서 저는 얼려두었던 닭 한 마리를 삶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자는 달랑 삶은 닭 한 마리를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청소 뒤의 기운을 보충했습니다.

 

"최근 일주일 동안 먹은 것 중에서 가장 잘 먹는 거네."

"누나들도 밥을 먹지 않나?"

"누나들은 항상 나가서 먹어요. 집에서는 오히려 제가 밥을 해놓지않으면 절대 안 먹어요."

 

서울에서 오히려 영대가 누나들의 식사를 챙기는 형편이었습니다.

 

맹물에 익힌 닭살을 맛있게 씹던 영대가 의미심장한 말 한 마디를 뱉었습니다.

 

"닭이 불쌍하네."

"무슨 말이냐?"

"살아서는 평생 갇혀 지내다가 죽어서는 제 뱃속으로 들어가고 있잖아요. 만화에서 보았는데 닭과 소가 죽었는데 농부가 소의 무덤만 만들어 주었데요."

"왜?"

"닭은 죽어서 자신의 몸만 주었지만, 소는 살아서는 주인의 일을 돕고 죽어서도 온 몸을 다 주었기 때문이래요. 그러고 보니 사람이나 소나 어릴 때 잠시밖에 자유가 없네."

"무슨 소리야?"

"소는 송아지 때 잠시 자유를 누리다가 조금 커면 코뚜레를 하고 평생 일을 해야 하고 사람도 유치원만 들어가면 자유 끝이잖아요."

"사람은 어른이 되면 오히려 자유로워지잖아. 어릴 때야 부모가 이런 저런 간습이 있지만 그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아니지요. 어른들이 회사가고 싶지않다고 회사 안 갈 수 있어요? 그리고 아빠가 지금 청소하고 싶지않다고 해서 청소 안할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공부 안하는 게 더 스트레스

 

"그럼, 너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겠구나."

"만약, 외국에 태어났다면……."

"외국의 어떤 나라?"

"선진국에서는 학생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미국에서 살다온 친구가 그러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 스포츠클럽이 여러 개 있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그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고해요.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때 축구나 야구하고 있으면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미쳤다고해요."

"그렇지만 너는 공부안하잖아. 나나 엄마가 공부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아빠! 친구들은 모두 공부하고 있는데 혼자 공부 안하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아세요? 전교 2등하는 내 옆 짝은 늘 졸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이것은 시험에 나온다' 하면 눈 감고도 필기해요. 그 친구는 졸면서도 알아듣는데 저는 안 졸리면서도 못 알아들으니 얼마나 스트레스겠어요."

"그럼 너도 열심히 공부하면 되잖아."

"그럼, 아빠는 아들이 새벽 3시 반까지 공부하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학교를 가는 것이 좋겠어요. 크는 아이가 3시간도 못자기를 바라요?"

"그럼 어쩌란 말이야. 공부를 열심히 해도 문제고, 공부를 안 해도 스트레스라면?"

"그러니까 소나 사람이나 자유는 젖먹이 시절뿐이라는 거예요."

"그럼, 네가 어른이 되고 아빠의 입장이 되면 너는 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할 거야?"

"저도 아빠처럼 할 거예요."

"아빠처럼 이라니?"

"아빠는 제게 한 번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막진 않았잖아요."

"그렇지만 아빠는 네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서 학교에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게 했고, 성공할 가능성에서 좀 더 멀어지게 했잖아."

"하지만, 아이가 자유로운 게 더 중요하지요. 그리고 성공이라는 게 공부하고 비례하나요? 뭐."

 

아들과의 이 대화는 닭 한 마리가 앙상한 뼈를 드러내고 아들은 해모 목욕을 시켜야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저도 헤이리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오자 해모의 목욕을 끝낸 아들은 제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양지바른 발코니에서 해모의 털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목욕으로 행복하진 해모는 영대에게 한 발을 주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자유, #교육, #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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