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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문화 드라마 <마주보며 웃어> 베트남 여성과 한국 남성이 결혼하는 모습
 EBS 다문화 드라마 <마주보며 웃어> 베트남 여성과 한국 남성이 결혼하는 모습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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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에 정부의 허락을 받아 정부가 지정하는 교육을 받으라고 한다면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일 당사자들이 있을까? 최근 정부가 내놓고 있는 국제결혼 관련 정책 이야기다.

결혼을 할 때 정부가 지정하는 교육을 받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펄쩍 뛰며 성을 내는 것이 상식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상식적인 반응을 해야 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근래 언론에 보도된 결혼이주여성 피해 사건 등으로 인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서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국제결혼 관련 정책들을 살펴보고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결혼하려면 '교육'부터 받아라?

법무부가 지난 9월 29일 발표한 '출입국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에는 국제결혼을 위해 거주비자(F-2)를 신청했다가 거부된 사람은 6개월이 지나야 다시 비자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숙려기간' 규정이 포함됐다.

또한 비자 발급 심사 기준도 강화하여, 당사자 의사에 따라 당사국 법령에 맞춰 혼인절차를 이행했는지 여부와 함께 교제 경위, 상대방 국가의 언어능력, 혼인 경력과 경제적 능력, 건강상태와 범죄 경력 등을 서로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심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국제결혼을 준비하는 내국인 남성들에게 국제결혼 관련 법령·제도, 피해사례 등을 교육하는 결혼 전 사전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는 날로 증가하는 결혼이주여성의 인권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들이 자국에서 제공받는 사전정보 프로그램 이수를 의무화하여 한국문화와 결혼 실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 이러한 제도를 실시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인권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반론이 적지 않다.

기본적으로 출국 혹은 결혼 전 사전 교육이나 국제결혼 숙려제는 그 절차상 이미 양국에 혼인 신고된 이들이 교육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용인이주여성쉼터 양수희 팀장은
"이는 결과적으로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하여 취약한 이주여성의 지위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결혼은 사적 계약인데, 봉건국가나 경찰국가도 아닌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적 계약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질문이 야기될 수 있다"며 정부 정책이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사적 영역인 결혼에 국가라는 공권력이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럼에도 결혼하기 전에, 꼭 이 교육을 받고 결혼하라고 강제한다면 누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결혼하고 나서도 "인신매매를 했네, 마누라를 돈 주고 사 왔네" 하는 차가운 주위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에게, 시작부터 가혹한 차별과 편견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인, 일본인과의 결혼에도 '교육'과 '숙려'를 요구할까?

아울러 제도 시행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국적에 따른 차별과 인권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출국 혹은 결혼 전 사전 교육이나 국제결혼 숙려제가 사회적 약자들을 쉽게 교육에 동원할 수 있는 만만한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성동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의 이은하 교육문화팀장은 "이주여성의 중개업을 통한 결혼은 며칠 사이에 첫날밤을 치르고 신혼여행까지 다녀오는 형태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미 결혼을 한 몸인 이주여성에게 행해지는 결혼 숙려제도는 또 다른 발목 잡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이어 "정부가 국제결혼 대상자들을 손쉽게 모아서 교육시킬 수 있는, 혹은 교육해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전제로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국제결혼을 하고자 하는 피교육자들은 다들 배우자에 대한 배려도 모르고, 다분히 인권침해나 일으킬 소지가 있는 잠재적 범죄자들인 건가요? 결혼 전 교육 의무화 대상에는 미국과 일본과 같은 선진국 출신 외국인도 포함될까요? 선진국 출신 배우자와 결혼하고자 하는 내국인도 포함될까요? 이미 만만한 동남아 출신 이주여성들과 그들의 배우자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정부가 '계몽'과 '개입'이라는 방식으로 국제결혼에서 발생하는 인권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는 근거에는 이미 인종적, 계급적 편견과 차별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국제결혼과 관련한 정부 정책이 입에 오르내리는 과정을 두고 당사자들의 인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 이주가 세계적인 현상이 된 이 시대를, 혹자는 '신유목민 시대'라고 칭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꿈을 위해 보금자리를 떠나 해외로 눈을 돌리지만, 보내는 나라와 받아들이는 나라는 물론 이주민에게도 기회와 고통이 수반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한 고통을 줄이려는 노력은 일방의 수고로 되지 않는다.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일이다.

이주여성을 지원한다는 단체들을 포함한 우리 사회 다수는 국제 결혼을 하는 이들과 그들의 배우자에 대한 이해와 인권에 깊은 관심 없이는 인권보호를 위한 조치들이 오히려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태그:#국제결혼, #인권침해, #다문화가족, #결혼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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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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