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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ㄲ, ㄸ, ㅃ 읽어보실 분? 빠리야디씨!"
"끼역, 띠귿, 삐읍"
"하하하, 웃자고 한 거죠?"
"네, 인도네시아는 K(까), T(떼), P(뻬)라고 읽거든요. 그러니까, 끼역, 띠귿, 삐읍이라고 읽어본 거예요."
"대단한 응용력이긴 한데, ㄲ(쌍기역), ㄸ(쌍디귿), ㅃ(쌍비읍)이라고 읽습니다."

지난 3일 일요일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주노동자 가을학기 한국어교실에 앞서 분반 테스트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손을 들며, 시험인지 수업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첫 수업치고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빠흘란, 빠리야디, 엔다, 아구스 등 평소 한국어 공부에 열심이던 낯익은 얼굴들 외에 새로운 얼굴은 없었다. 그나마 봄학기에 보였던 많은 얼굴들이 보이지 않았다. 대구에서 열린 친선축구시합에 다들 몰려가서 그렇다고 한다. 

축구시합이 있고, 잔업이 있으면 수업 빠지는 건 예사인 터, 빠졌다고 나무랄 수도 없다. 그래서 한국어교실 선생님은 이번 학기부터 수업 방식을 변경하기로 했다. 매주 교재에 맞춰서 진도를 나가던 방식을 지양하고,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했던 이주노동자들이 2010년부터 근로계약 만기로 귀국해야 하는 상황에 맞춰서 한국어능력시험 준비반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선생님은 매주 시험 문제를 같이 풀며 일상회화도 연습하고, 진도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글과 한국어에 서툰 이들에겐 시험 준비반이 어렵기만 하다. 역으로 한국어교실에 꾸준히 참석하던 사람들은 이런 식의 수업이 따분할 수도 있어 분반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심화학습을 이끌어 줄 선생님을 찾기도 쉽지가 않은데 한글반 선생님의 고민이 있다. 이처럼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실은 쉼터가 처음 열릴 때부터 해왔던 것이지만, 아직까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어 능력' 때문에 학교 생활 어려움 겪는 아이들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
▲ 지구촌한국어학교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
ⓒ 성동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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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성동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의 지구촌한국어학교는 올해(2010년도)에 새로 개설해 한국어교실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수요 역시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 봄에 개설된 지구촌한국어학교는 서울시 평생교육 프로그램 신소외계층 공모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인데,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1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구촌한국어학교는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이나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한글 습득과 한국어 능력 향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학교가 개설된 이유는 결혼이주를 한 여성의 본국 자녀들이나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경우 제도권 교육에 편입되기 전에 한글을 배울 기회가 없고, 한국어 구사 능력 또한 떨어져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국학교에서 학습을 중도 포기하는 아동들의 사유를 보면 한국어 구사 능력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지구촌 한국어학교는 소외 계층의 사회통합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성동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한국어교실
▲ 한국어교실 성동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한국어교실
ⓒ 성동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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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8세부터 18세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동과 이주여성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 이주아동들은 유치원 단계를 지나 한글 습득과 한국어 구사문제를 학교에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전 교육의 일환으로 지구촌한국어학교를 선택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학교에서 아동들의 언어 구사 능력 문제로 편입을 받아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고, 받아준다 해도 아동이나 학교 양측이 준비가 돼 있지 않아 아동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일이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국가에서 이주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이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구촌한국어학교가 아동의 학교 적응을 위한 완충작용을 위해 설립된 셈이다. 

이 점에 대해 성동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의 이은하 교육문화팀장은, 이주아동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외국의 경우에는 ELS나 거점학교 등을 통해 가까운 학교에 편입을 시킬 수 있도록 준비를 시켜 주는 과정을 두고 있는데, 우리사회도 그러한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의 귀국 후 본국취업 등에 필요한 질 높은 교육을 위해, 그리고 이주여성들의 대인관계 및 사회관계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 한국어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이 심화과정 혹은 좀 더 고급 과정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기초학습을 제공하는 역할을 지구촌한국어학교가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지구촌한국어학교는 지난 4월부터 시작됐는데, 학생수가 계속 증가해 분반하려 했으나, 강사 수급 문제로 학생수를 15명으로 제한하여 학생들이나 학교 양측에서 아쉬움이 많다고 한다. 

"한국어 교육 문제 기본적으로 정부가 책임져야"

수업 모습
▲ 성동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한국어교실 수업 모습
ⓒ 성동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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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은하 팀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한글학교를 운영하며 느끼는 어려움이 있다면?
"각 파트별로 다른데요. 가장 큰 문제는 아동이든, 이주노동자든 전문 교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교재들은 기본적으로 대학교재로 제작된 것들이거든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교재도 있으나, 이는 수업용 교재로 부적합한 부분이 많아요.

그 외 아이들의 경우 학교를 다니기 전 시스템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주아동들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빨리 배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귀가 열려 진도가 엄청 빨라집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위한 시스템 개발이 어렵다는데 아쉬움이 있죠. 그러다보니 수업준비가 어려워요. 수준이 높아지면 다른 과목과 연계해서 한국어를 가르쳐야 하는데, 오래 봉사하신 교사들조차 어려워해요.

어려움을 말하려면 한 둘이 아닌데… 여성결혼이민자의 경우, 가르쳐야 하는 내용이 일상생활 언어여야 하는데 교재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점과 이주노동자의 경우 결석이 많아서 진도를 잘 못 나간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이들 중 아주 먼 곳에서도 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이 교육 내용에 대해 상당히 만족해하고 있어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힘을 내는 거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실·한글교실의 의의는 어디에 있나?
"이주아동을 위한 공교육 가운데 한국어교육이 체계적이지 못하다보니, 그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고 보면 됩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 적응을 지원하는 셈이죠. 한편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가정생활의 원활함과 가족관계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어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이고요. 이주노동자를대상으로 한 교육은 안전한 노동환경의 이해, 노동법 등의 강의를 통해 한국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이들의 귀국 후 생활에도 유의미한 교육이 진행된다고 봅니다."

-결혼 이주민 자녀·이주민 2세를 대상으로 한글교육을 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18세 몽골 아이가 있었는데요. 아이를 중학교 1학년에 보냈을 때가 기억나요. 처음에는 한국어 때문에 못 다니겠다고 하더니, 이곳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며 그나마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서 이젠 어엿한 대학생이 됐어요. H대 건축학과에 재학중이에요."

-그럼 가슴 아팠던 일은 무엇인가?
"지금도 생각하면 짠하고 가슴 아픈 일들이 한 둘이 아닌데요. 학교에 적응 못하고 여기에서도 적응 못한 아이들이 생길 때마다 심란해지죠. 그리고 가르치던 아이들 중에 미등록이던 부모가 단속되어 추방될 때는 가르치던 교사들마저 당혹스러워하고, 영향을 받죠. 또 결혼이주여성의 자녀들의 경우 여성이 가출했다고 남편이 찾아올 때 등등… 말하면 뭐하겠어요."

-더 하고 싶은 말?
"말을 못하는 사람의 답답함이야 당사자가 아니면 누가 이해하겠습니까? 까막눈도 마찬가지 문제고요. 그런 문제들을 우리사회가 껴안아야 된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나라가 해야 하는 것이 맞고, 나라가 못 하면 시민단체가 하는 것이고요. 함께 사는 세상이니까요."


태그:#성동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한국어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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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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