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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행장 (16)

지야이지스고(채가구) 역 표지판
 지야이지스고(채가구) 역 표지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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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안중근, 우덕순)이 산책을 끝내고 식당으로 돌아오자 조도선은 수프를 앞에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식사 후 안중근은 조금 전 우덕순과 약속한 대로 조도선에게 하얼빈으로 여비를 구하러 간다고 둘러대고는 지야이지스고 역에서 12시 무렵 하얼빈 행 열차에 올랐다.

그날 오후 4시, 안중근은 하얼빈의 김성백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유동하가 집에 있었다. 안중근은 그를 보자 벌컥 화가 났다.

"어제의 전보대로라면 일본의 고관이 이미 도착했어야 하는데 어찌 그런 엉터리 전보를 보냈는가?"
"수소문해 보니 그렇기에 그대로 전보를 쳤어요."

안중근은 곧 그를 꾸짖은 것을 후회했다. 사실 이토의 도착 일시는 일반인은 그 어디에서도 정확히 알 수 없지 않은가. 안중근은 곧 집을 나섰다. 하얼빈 공원을 한 바퀴 돌면서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고자함이었다. 하얼빈 공원 옆 송화강에는 붉은 저녁놀이 아름답게 물들고 있었다.

하일빈(현 조린) 공원 옆의 송화강
 하일빈(현 조린) 공원 옆의 송화강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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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토의 심장에 총을 겨누는가?'

안중근은 하늘을 향해 기도를 드렸다.

- 사키류조 <광야의 열사 안중근> 114쪽~120쪽 발췌 요약정리
- 나명순 ․ 조규석 <대한국인 안중근> 50~57 발췌 요약정리

자네가 일을 성공치 못하면

이튿날 이른 아침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세 사람과 함께 정거장으로 가서 조도선에게 남청열차가 서로 바뀌는 정거장이 어디인가를 역원에게 묻게 했더니 지야이지스고(채가구)라고 했다.

나는 곧 유동하를 돌려보내고 우덕순 조도선 두 사람과 열차를 타고 남행하여 지야이지스고 역에 이르러 차에서 내려 여관을 정하고 유숙하며 정거장 역원에게 묻기를 "이곳에 기차가 매일 몇 차례나 왕복하는가?"하였더니 "매일 세 번씩 내왕하는데 오늘 밤에는 특별열차가 하얼빈에서 창춘으로 떠나가서 일본대신 이토를 영접해 가지고 모레 아침 여섯 시에 여기에 이를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같이 분명한 정보는 이번에 처음 듣는 확실한 소식이었다. 그래서 다시 깊이 헤아려 생각해 보니 "모레 아침 여섯 시쯤이면 아직 날이 밝기 전이니 이토가 이 정거장에 내리지 않을지 모른다. 또 설령 차에서 내려 시찰한다고 해도 어둠 속이라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분간할 수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내가 이토의 모습을 모르는 데야 어찌 능히 일을 치를 수가 있을 것이랴"하고 다시 앞서 창춘 등지로 가보고 싶어도 여비가 부족하니 어쩌면 좋을지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만 몹시 괴로웠다. 그때 유동하에게 전보를 쳤다.

지야이지스고 역 플랫폼
 지야이지스고 역 플랫폼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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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 이르러 하차했다. 만일 그곳에 긴급한 일이 있거든 전보를 쳐주기 바란다."

황혼이 된 뒤에 답전이 왔으나 그 말뜻이 전연 분명치 않았다. 더욱 의아스러움이 적지 않아 그날 밤 곰곰이 생각하고 다시 좋은 방책을 헤아린 뒤, 이튿날 우씨에게 상의하기를

"우리가 이곳에 같이 있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첫째는 돈이 부족하고, 둘째는 유씨의 답전이 심히 의아스럽고, 셋째는 이토가 내일 아침 새벽에 여기를 지나갈 터인즉, 일을 치르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일의 기회를 잃어버리면 다시는 일을 도모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자네는 여기서 머물며 내일의 기회를 기다려 틈을 보아 행동하고, 나는 오늘 하얼빈으로 돌아가 내일 두 곳에서 일을 치르면 충분히 편리할 것이다.

만일 자네가 일을 성공치 못하면 내가 꼭 성공할 것이요, 만일 내가 일을 성공치 못하면 자네가 꼭 일을 성공해야 할 것이다. 또 만일 두 곳에서 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다시 여비를 마련한 다음 상의해서 거사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완전한 방책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서로 작별하고, 나는 기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돌아와 다시 유동하를 만나 전보의 글 뜻을 물었으나, 유씨의 답변이 역시 분명치 않으므로 내가 성을 내어 꾸짖었더니, 유씨는 말도 아니하고 문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 <안응칠 역사> 173~174 쪽

이토 히로부미 행장 (2)

1909년 10월 25일

이토 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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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특별열차는 밤 11시 창춘(관성자) 역을 출발하였다. 러시아 측이 이토에게 제공한 특별열차는 최신형 기관차가 끌고 귀빈차에는 응접차가 연결되어 있었다.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후초프는 이토 히로부미를 영접코자 동청철도 민정부장, 영업과장, 철도수비대 군무장, 헌병대위 등을 파견하였다. 열차가 달리자 동청철도 민정부장 아파나셰프 소장이 이토 앞으로 와서 환영사를 낭독했다.

"금세기의 대정치가이신 이토 공작을 맞이함으로써 러시아정부를 비롯한 우리 동청철도회사의 전 직원, 그리고 하얼빈 시민에 이르기까지 관민이 모두 환영의 목소리를 높이 외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각하께서는 고향에 오신 듯이 편안하게 여행하시기를 우리 일동은 충심으로 바랍니다."

이토는 즉석에서 답사를 하였다.

"하얼빈을 방문하는 데에는 정치외교상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북만주의 신천지를 내 눈으로 보는 기쁨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천하 명사 코코후초프 대신과 회견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고, 이렇게 여러분들과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다니 너무도 유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예전부터 바라던 러시아와 일본의 친선이 이렇게 차 안에서 시작되어 점차로 깊어져 가리라고 기대하는 바입니다."

열차는 만주 대륙을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귀빈차 실내는 스토브 열기로 훈훈했다. 이토는 브랜디를 머금고는 칠흑의 차창 밖 만주 대륙을 바라보며 이생에서 마지막 밤을 마냥 즐겼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일행을 태운 열차는 9시 정각 도착 예정보다 빠르게 하얼빈에 근접하고 있었다. 기관사는 하얼빈에 가까워지면서 시간 조정을 위해 열차의 속력을 늦췄다. 이토는 간밤에 객수로 늦게 잠든 탓으로 오전 8시 귀빈실 침대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플록 코트 정장차림을 했다. 차비를 차린 이토가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열차는 하얼빈 역 구내로 천천히 접어들었다. 하지만 하얼빈 역 플랫폼에 그의 저승사자인 대한의 영웅 안중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 사키류조 <광야의 열사 안중근> 11쪽~147쪽 발췌 요약정리

이토 도착 직전의 하얼빈 역 플랫폼
 이토 도착 직전의 하얼빈 역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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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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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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