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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행장 (18)

1909. 10. 26. 9 : 25

 의거 직전의 하얼빈 역 플랫폼
 의거 직전의 하얼빈 역 플랫폼
ⓒ 눈빛<대한국인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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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는 코코후초프의 정중한 안내를 받으며 열차에서 내린 다음, 러시아 의장대 앞을 지나 환영 나온 각국 영사들이 서 있는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토 일행이 특별열차에서 내리고 있다(왼쪽에서 세번째가 이토).
 이토 일행이 특별열차에서 내리고 있다(왼쪽에서 세번째가 이토).
ⓒ 눈빛<대한국인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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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악대의 연주 속에 이토와 코코후초프가 나란히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나카무라 제코(中村是公) 만철총재, 가와카미 토시히코(川上俊彬) 하얼빈 주재총영사, 다나카 세이지로(田中淸次郞) 만철이사, 모리 야스지로(森泰二郞) 비서관, 무로타(室田) 귀족위원 등이 뒤따랐다.

그때 하얼빈 역 플랫폼 기둥에 달린 시계침은 9시 25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이토는 그들과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뒤, 일본거류민단 환영객 앞을 지나 다시 러시아 의장대쪽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러시아군 의장대 뒤편에 있던 안중근은 이 순간을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로 알고, 가슴에 숨겨뒀던 브라우닝 권총을 뽑아들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안중근은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준 하늘에 감사하며 회심의 첫 발을 쏘았다. 그때 안중근과 이토와 거리는 불과 열 발자국이었다.

 안 의사가 의거에 사용한 브라우닝 권총(총기번호 262336)과 탄창, 탄알.
 안 의사가 의거에 사용한 브라우닝 권총(총기번호 262336)과 탄창, 탄알.
ⓒ 눈빛<대한국인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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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탄알이 이토의 팔을 뚫고 가슴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총소리가 주악 소리에 뒤섞여 그때까지 경비병들은 영문을 몰랐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안중근은 다시 혼신을 다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두 번째 탄알은 이토 가슴에 명중했다. 경비병과 환영객들은 그제야 돌발 사태를 알아차리고 겁을 먹은 채, 우왕좌왕 흩어지고 도망쳤다. 총을 맞은 이토는 가슴을 움켜쥐고서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비틀거렸다. 다시 안중근은 이토의 절체절명 마지막 남은 명을 확실히 끊어주고자 침착하게 가슴을 정조준하여 회심의 세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세 번째 탄알은 이토 복부 깊숙이 명중되었다. 제3탄이 이토를 확실하게 절명시킨 결정의 탄알이었다. 그제야 늙은 여우 이토는 꼬리를 내리고 코코후초프 쪽으로 픽 쓰러졌다.

안중근은 그 자가 혹 이토 히로부미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에, 만일을 대비하여 그 곁을 수행하던 하얼빈 주재 일본총영사 가와카미, 수행 비서관 모리, 만철 이사 다나카 세 사람에게도 총알을 한 방씩 안겼다.

 하얼빈역 플랫폼에서 안중근 의사가 권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리고 있다(박영선 화백 그림).
 하얼빈역 플랫폼에서 안중근 의사가 권총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리고 있다(박영선 화백 그림).
ⓒ 눈빛<대한국인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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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 우라!

안중근의 권총에 장전된 일곱 발 총알 가운데 발사된 여섯 발은 단 한 방도 헛방이 없었다. 대한 남아의 대단한 담력과 신묘한 사격술이었다. 의기의 대한 남아가 일본 열도를 향해 던지는 불방망이였다.

그 불방망이로 일본 열도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대한 남아의 장엄한 기백이었다. 대한의 영웅 안중근은 불타오르는 적개심으로 네 사람을 쓰러뜨린 뒤, 러시아어로 만세 삼창을 목 놓아 불렀다.

"코레아 우라(대한 독립 만세)!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그런 뒤 안중근은 권총을 거꾸로 잡아 러시아 헌병에게 건네주고 태연자약 의연하게 체포되었다. 그때가 오전 9시 30분이었다.

잠깐 사이에 안중근은 당신이 바란대로 모든 걸 다 이루었다. 대한의 영웅, 대한의군 참모중장 특파독립대장 안중근 의사의 쾌거였다.

이 순간 우리나라 백성들은 강화도조약 이래 30여 년 쌓였던 체증을 한순간에 시원히 '뻥' 뚫었다.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대한의군 안중근 의사가 권총 한 자루로 통쾌히 치렀다.

세 방의 총알 세례를 받은 이토 히로부미는 곧장 열차에 옮겨졌다. 이토의 수행 의사 고야마(小山)가 맥을 짚고 캠퍼 주사를 놓고 브랜디를 입에 넣어 주었지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소생 불능의 즉사였다. 대한 남아 안중근 의사가 일본 열도 심장부에 꽂은 비수였다. 만일 안중근 의사의 쾌거가 없었다면 어찌 우리의 민족혼을 말할 수 있으랴.

 안 의사가 발사한 탄알로 일본헌정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안 의사가 발사한 탄알로 일본헌정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 눈빛<대한국인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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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의 뒤를 따르랴

이토 히로부미 피살 전보에 일본 국민들은 순식간 마른하늘의 벼락같은 충격에 빠졌다. 요미우리신문, 동경 일일신문, 대한매일신문 등에서는 호외를 발행하는 등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해외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은 환호의 찬사를 보내는가 하면, 조정의 친일파들은 몹시 당황했다. 친일내각의 우두머리 이완용은 사저에 일본헌병이 파수를 보게 했고, 친일의 거두 송병준은 일본 순사 셋을 청하여 숙소를 지키게 하는가 하면 한성부민회장 유길준은 이토의 영구를 맞고자 다롄으로 향했다.

10월 28일, 순종은 통감부에 행차하여 이토를 애도했으며, 30일에는 이토에게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밖에 숱한 벼슬아치들이 통감부로 가서 이토의 죽음을 조상했다. 이와는 달리 당시 중국 총통이었던 원세개(袁世凱)는 다음 글로 조문했다.

평생을 벼르던 일 이제야 끝냈구려.
죽을 땅에서 살려는 것은 장부가 아니고말고.
몸은 한국에 있어도 이름은 만방에 떨쳤소.
살아서 백년을 사는 이 없는데 그대 죽어서 천년을 사오.

平生營事只今畢  死地圖生非丈夫
身在三韓名萬國  生無百世死千秋

안중근 순국 후 동북 일대 소학교에서는 중국인이 작사 작곡한 〈안중근을 추모하며〉라는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진실로 공경할 만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자신도 용감히 죽었다.
마음속으로 비로소 나라의 한을 풀었다.
역사 속에 충의 혼을 우러르지 않을 자가 없었다.
천고에 길이 살아남아 있어라.
누가 그의 뒤를 따르랴.
누가 그의 뒤를 따르랴.

- 박도 <항일유적답사기> 22~32쪽

러시아군악대의 장송곡

안중근은 이토를 쓰러뜨린 뒤 곧장 러시아 경비병에 끌려 하얼빈 역구내 러시아철도 헌병분파소로 연행되었다. 나카무라 제코 만철 총재는 바로 동청철도 측과 교섭하여 이토가 타고 온 열차를 창춘으로 돌아갈 조치를 취했다. 얼마 뒤 이토를 담을 관이 귀빈실로 운반되어 시신이 담겨졌다. 러시아 관헌이 이토 시신을 검시하려했으나 나카무라가 거부했다. 러시아 관헌의 중대한 경비실수에 몹시 화난 볼멘소리였다.

"후일 의사진단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러시아 관헌은 머쓱하게 물러났다. 오전 11시 15분,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는 러시아군악대의 장속곡이 울려 퍼졌다. 이토의 시신을 태운 열차는 코코후초프 러시아재정대신을 비롯한 러시아 관헌들이 묵도하는 가운데 하얼빈 플랫폼을 기적도 없이 떠났다.

- 나명순 ․ 조규석 <대한국인 안중근> 59~69쪽 외 종합 

 의거 직후의 안 의사
 의거 직후의 안 의사
ⓒ 눈빛<대한국인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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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김성백의 집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새 옷을 모조리 벗고 수수한 양복 한 벌을 갈아입은 뒤에 단총(권총)을 지니고 바로 정거장으로 나가니 그때가 오전 7시쯤이었다.

거기(하얼빈 역)에 이르러 보니, 러시아 장관(코코후초프 러시아재정대신)과 군인들이 많이 와서 이토를 영접할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차 파는 집에 앉아서 차를 두서너 잔 마시며 기다렸다.

9시쯤 되어, 이토가 탄 특별기차가 와서 닿았다. 그때는 사람들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나는 찻집 안에 앉아 그 동정을 엿보며 스스로 생각하기를"어느 시간에 저격하는 것이 좋을까?"하며 십분 생각하되 미처 결정을 내리지 못할 즈음, 이윽고 이토가 차에서 내려오자 도열해 있는 군대가 경례하고 군악소리가 하늘을 울리며 귀를 때렸다. 그 순간 분한 생각이 북받쳐 일어나고 삼천리 길 업화(業火, 불같이 일어나는 노여움)가 머릿속에서 치솟아 올랐다.

"어째서 세상이 일이 이같이 공평치 못한가. 슬프다! 이웃 나라를 강제로 뺏고 사람의 목숨을 참혹하게 해치는 자는 이같이 날뛰고 조금도 꺼림이 없는 대신, 죄 없이 어질고 약한 사람은 이처럼 곤경에 빠져야 하는가?"하고는 다시 더 말할 것 없이 곧 뚜벅뚜벅 걸어서 용기 있게 나가 군대가 도열해 있는 뒤에까지 이르러 보니, 러시아 측 관리들이 호위하고 오는 맨 앞 가운데에 누런 얼굴에 흰 수염을 가진 한낱 조그마한 늙은이가 이같이 염치없이 감히 천지 사이를 활보하여 오고 있었다.

"저 놈이 필시 이토 노적(老賊)일 것이다."

곧 단총을 뽑아들고, 그 오른 쪽을 향해 4발(실제는 3발)을 쏜 다음, 생각해 보니 십분 의아심이 머릿속에서 일어났다. 내가 본시 이토의 모습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만일 한 번 잘못 쏜다면 큰 일이 낭패가 되는 것이라, 그래서 다시 뒤쪽을 향해서, 일본인 일행 가운데서 가장 의젓해 보이는 자를 새로 목표하고 3발을 이어 쏘았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니, 만일 무죄한 사람을 잘못 쏘았다고 하면 일은 반드시 불미할 것이라 잠깐 정지하고 생각하며 머뭇거리는 사이에 러시아헌병이 와서 붙잡히니 그때가 바로 1909년 음역 9월 13일(양력(10월 26일) 상오 9시 반쯤이었다. 그때 나는 곧 하늘을 향하여 큰 소리로 대한만세를 세 번 부른 다음, 정거장 헌병분파소로 붙잡혀 갔다.

- <안응칠 역사> 177~178쪽

1909년 10월 26일 아침의 지야이지스고 역

1909년 10월 26일 아침, 지야이지스고 역에서 우덕순은 어쩔 수 없이 특별열차를 놓치고는 하얼빈에서 안중근의 성공을 마음속으로 빌었다. 우덕순과 조도선이 아침도 거른 채 어슬렁거리자 식당 주인 세미코노프가 측은해 여기면서 아침을 차려주었다. 두 사람이 낮차로 하얼빈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하며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데 러시아 경비병 두 명이 식당으로 들어와 다짜고짜로 두 사람을 체포했다.

"왜 이러시오."

조도선이 강력히 항의했으나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상부의 명령이다."

두 사람은 경비초소로 연행되었다. 우덕순은 거기서 안중근이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우덕순은 환희에 젖었다. 오후 1시, 이토를 태운 남행 특별열차가 지야이지스고 역에 멎을 때 우덕순과 조도선은 포승줄에 묶인 채 하얼빈 행 북행 열차에 올랐다.

- 사키류조 <광야의 열사 안중근> 157쪽~158쪽 발췌 요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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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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