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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목)

문내면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가다 중간에 77번 국도로 갈아타서는 화산면 월호리까지 이동한다. 확실히 국도가 빠르긴 빠르다. 굽어 도는 길도 거의 없고, 도로도 매우 평탄해 마음껏 속도를 낼 수 있다. 이 길을 버리고 해안선을 따라가야 한다면 이보다 2배 이상 길어질 수도 있다.

경사도 역시 상당히 완만해 보인다. 해안도로나 지방도로에 비해 도로의 경사가 낮게 설계가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덕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넘는다. 게다가 도로 안내 표지판이 길 안내를 확실하게 해주고 있어 헷갈리거나 머뭇거릴 일도 없다.

다만, 국도에서는 차들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가는 게 흠이다. 차량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새로 개설이 되거나 개선이 된 국도는 도로도 넓고 갓길도 충분해 큰 위협을 받지 않지만, 77번 국도 같이 오래된 도로는 2차선 도로에 갓길이 없는 구간도 자주 나타난다. 국도라고 해서 다 같은 국도가 아니니까,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월호리에서 다시 해안가 길로 들어선다. 다시 고생길로 접어든다. 해안도로와 농로를 번갈아가며 달린다. 농로에서는 여전히 어디가 어딘지 모를 때가 많다. 지도를 들여다봐도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당황하지 않는다.

농로라 할지라도 어딘가로 반드시 길이 열려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때는 할 수 없이 감으로 길을 잡는다. 이 길들은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길이다. 다행히 해안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길을 찾아간다. 오늘따라 왠지 일이, 아니 길이 술술 잘 풀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것도 다 착각에 불과하다.

오늘은 길이 술술~~ 착각이었다

해남군의 배추밭. 산밑에까지 배추밭이 들어서 있다.
 해남군의 배추밭. 산밑에까지 배추밭이 들어서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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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가 끝나가는 해남군의 들판.
 추수가 끝나가는 해남군의 들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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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해수욕장을 찾아간다는 게 길을 잘못 들어 송평항 부근에서 헤맨다. 송평항 부근의 해안에도 꽤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백사장 뒤로는 해송숲이 높이 솟아 있다. 거기에서 한동안 그곳이 송평해수욕장이라고 착각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무언가 이상하다.

아무리 여름이 지나 해수욕장으로서 용도가 사라졌다고 해도 백사장에 김을 양식하는 도구들이 가득 차 있는 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혹시 지나쳐 온 게 아닌가 싶어 길을 되짚어 나간다. 어디에서 어떻게 길이 어긋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송평해수욕장은 송평항으로 들어서기 이전의 도로변에 있었다. 농로를 헤매다 보면, 이렇게 가끔 방향감각을 상실할 때가 있다.

송평해수욕장은 백사장이 매우 넓고 깨끗한 해수욕장이다. 바닷가 경치도 아름답고 물빛도 남해답게 맑고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해수욕장이다. 그런데 다른 해수욕장들에 비해 부대시설이 너무 부족해 보인다. 부대시설이 많은 게 꼭 좋은 건 아니지만, 너무 없어 보이는 것도 문제다.

송평해수욕장
 송평해수욕장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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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배가 아니라 김 양식 도구로 가득 차 있는 어란진항.
 고깃배가 아니라 김 양식 도구로 가득 차 있는 어란진항.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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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우거진 백포방조제를 벗어난 뒤 도깨비바늘로 고슴도치가 된 바지.
 풀이 우거진 백포방조제를 벗어난 뒤 도깨비바늘로 고슴도치가 된 바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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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해수욕장을 나와 다시 송평항을 지나쳐 간다. 한동안 계속 바닷가 길을 달리다가 마을 안쪽 길로 들어선다. 두모리라는 마을이다. 여느 농촌 마을과 다를 것이 없다. 별 생각 없이 마을 안쪽 골목길을 지나가다 마을 공터에서 특이하게 생긴 비각을 하나 발견한다.

비각은 열녀각이고, 그 안에 작은 비석이 하나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이 비석을 세우게 된 연유를 적은 안내판이 서 있다. 어떤 사연을 가진 비석이기에 안내문까지 내걸었는지 궁금해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내용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다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여기에 옮겨 적는다.

현산면 효열부 나주임씨정려
(孝烈婦 羅州林氏 旌閭)

해남군 향토유적 제13호
소재지 : 해남군 현산면 백포리 739-3

두모마을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효열부나주임씨정려는 효와 열을 겸비한 나주임씨의 덕성을 기리기 위해 어사 성수묵의 특명으로 고종 3년인 1866년 중건된 건물이다. 효열부나주임씨는 1895년(고종 32)에 편찬된 <해남상감록>효행열행편에 효열부나주임씨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집안에서 펴낸 '효열임씨여각실기'에는 고종 3년인 1866년 중건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오고 있다.

나주 임씨는 15세에 시집왔으나 남편이 일찍 병사하자 맹인 시아버지를 정성껏 봉양하였다. 친정에서 부지가 위급하다고 하여 가 보았으나 개가(改嫁)시키려고 거짓 연락을 한 것임을 알고 맹인 시아버지를 봉양하러 다시 돌아오려 하였다. 이에 친정에서는 청년들을 동원하여 강제로 잡아가려 하자 바다에 투신하려 했다. 이때 개가 나타나 임씨 부인을 업고 바다를 건네주어 시가에 도착한 임씨는 맹인시아버지를 모시고 평생 정절을 지키며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진도 고군면 원포가 친정인 김철산의 처 나주 임씨의 정절과 효성을 기리고자 성수묵이 장계를 올려 정려를 세우도록 하고 삼강록(三綱錄)에 올렸다고 한다.

나주 임씨, 극적인 열녀의 삶을 남겼네

두모리의 효열부나주임씨정려
 두모리의 효열부나주임씨정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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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말을 늘어놓는 게 무례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냥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사례 중에 하나로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다. 사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열녀비를 이곳에서만 본 것도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이기는 해도, 이처럼 극적인 서사 구조를 갖춘 설명문은 처음 보았다.

두모마을을 지나서는 다시 해안에서 벗어난 길을 달린다. 한동안 추수가 끝나가는 들판이 계속 이어진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꽤 심하게 바람이 불고 있다. 좀처럼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앞서 18번 국도에서 번 시간과 속도를 다 까먹고 있다. 그러면서도 땅끝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엄남삼거리에서 '경치좋은길'이 시작된다. 해안 절벽을 오르내리는 길이다. 도로가 경사가 심한 편이라 힘들긴 하지만, 절벽 아래 경치가 좋고, 또 이 지점만 지나가면 가까운 거리에 땅끝이 있어 그 고통을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처음부터 서두르지 않는다. '경치좋은길'이 끝나도, 땅끝에 도달하려면 그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 고비를 더 넘겨야 한다. 여기에서 힘을 뺄 필요는 없다.

땅끝마을 들어가기 직전 '경치좋은길' 시작점
 땅끝마을 들어가기 직전 '경치좋은길' 시작점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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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페달을 밟다가 한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길가 풀숲에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아지가 모로 누워 있는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입을 약간 벌리고 혀를 빼문 채 죽어 있다.

나를 놀라게 한 건 멀쩡히 뜨고 있는 두 눈이다. 그 눈이 죽기 직전의 고통을 그대로 담고 있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눈에 공포가 가득 차 있다. 그 눈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터져 나온다. 소름이 쫙 끼친다.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수없이 많은 로드킬을 봤지만, 이보다 더 끔찍하고 처참한 광경은 처음이다. 머리가 깨지고, 내장이 터져 나온 동물들도 수없이 봐왔다. 하지만 그 사체들에서도 이처럼 강렬한 공포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 개를 햇볕 잘 드는 따뜻한 곳에 묻어주지 못하고 온 게 너무 마음에 걸린다.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이 도로 위에서 죽은 채 먼지가 돼서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둬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버리고 죽이고, 죽여서는 계속 짓이기고, 짓이겨서 먼지가 되어 바람에 실려 날아갈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고는 누구 하나 뒤돌아보지 않는다.

도저히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나 역시 뾰족한 수는 없다. 나 또한 그런 인간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땅끝에 들어서는 내 마음이 몹시 무겁다. 그 개를 본 이후로 '경치좋은길'에서 경치 같은 게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소름끼치는 로드킬, 경치가 눈에 안 들어왔다

땅끝에 가 닿으려면 마지막으로 높은 언덕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 마지막 고비이자, 시험이다. 그 언덕 정상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 선다. 생각 같아선 쏜살같이 내려가 땅끝에 발을 딛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엔 무언가 여운이 부족하다.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과 거리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길고 멀다. 앞으로 가야 할 길 또한 결코 그에 못지않다. 조급해 하지 않기로 한다.

땅끝마을 언덕에서 내려다본 갈두선착장
 땅끝마을 언덕에서 내려다본 갈두선착장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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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도로 주변 시멘트벽에 낙서가 가득하다. 그동안 이 고개를 넘어간 사람들이 적어놓은 기록이다. 그중에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 도중에 이곳을 지나갔음을 자랑스럽게 기록한 낙서도 보인다. 그 낙서들을 보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고개를 넘어갔는지 알 수 있다.

부산에서 온 사람도 있고, 대전에서 온 사람도 있다. 젊은이들이 경향 각지에서 땅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광경을 떠올릴 수 있다. 그 낙서들에서 땅끝을 코앞에 둔 감동이 묻어난다. 갖은 고생과 힘에 부치는 고통 끝에 드디어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의 열광을 느낄 수 있다.

감동은 오늘도 계속된다. 땅끝마을을 산책하다 자전거를 타고 이제 막 땅끝에 도착한 세 청년을 만난다. 아주 잘생기고 건장한 청년들이다. 이제 막 땅끝에 도착한 듯 얼굴이 상기돼 있다. 이제 막 언덕에서 내려와 어디가 어딘지 구분을 못하고 있기에 길을 가르쳐줬다.

그들은 서울을 출발해 여기까지 꼬박 6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는 무려 6일이나 걸린 걸 겸연쩍어 한다. 그래서 내가 나는 여기까지 오는데 30일이 걸렸다고 하니까 다들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이다. 6일도 길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30일은 너무 긴 시간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보면서 그들이 가진 체력과 젊음이 부러웠다. 그들이 타고 온 자전거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 소위 '철티비'로 불리는, 강철로 만든 유사산악자전거다. 산악자전거를 흉내 낸 생활용 자전거로, 장거리여행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단점이 지나치게 많은 자전거라고 할 수 있다. 차체가 너무 무겁다. 특히 언덕을 오르는 데 취약한 조건을 갖췄다.

그런 자전거를 타고 500km 이상을 달려 땅끝까지 달려온 건데, 보통 체력과 인내력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6일이 아니라 중간에 여행을 포기하지 않은 것만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다음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 내가 서울로 돌아갈 날은 언제일까? 땅끝에 왔으나 땅끝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 내가 달린 거리는 83km, 총 누적거리는 2147km다.

한반도 최남단, 땅끝탑
 한반도 최남단, 땅끝탑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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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내려가기 직전의 언덕 위 도로. 이 길을 지나간 사람들의 환희와 열정이 느껴진다.
 땅끝마을 내려가기 직전의 언덕 위 도로. 이 길을 지나간 사람들의 환희와 열정이 느껴진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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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땅끝, #땅끝탑, #땅끝마을, #로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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