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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사(海東祠)'

군작(群雀, 참새 무리)이 어찌 대붕의 뜻을 알겠는가. 나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행장인 1909년 10월 중순부터 1910년 3월 26일까지 150여 일의 장엄한 대장정을 아흐레 만에 뒤쫓고는 내 글방에 앉았으나 한 달이 넘도록 붓을 들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했다.

그런 가운데 섣달 초순 하늘의 별을 보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아찔한 순간 나는 안중근 의사가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상처가 아물어가자 신기하게도 붓을 들 수 있었다. 꼭 두 달간 그동안 취재노트를 펴놓고는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들긴 다음 원고와 사진자료를 출판사로 모두 넘겼다.

이 일을 끝내자 나는 체액을 다 쏟은 누에처럼 몸도 마음도 텅 빈 듯했다. 그런 탓인지 며칠간 열병을 앓았다. 2010년 정초부터 호남의병 후손들이 나에게 머리도 식힐 겸 한번 다녀가라는 초청을 받고는 몸을 추스른 다음 남도 길에 나섰다.

 전남 장흥 만수사 내 안 의사 사당 해동사를 참배한 족친들과 독립지사 후손
 전남 장흥 만수사 내 안 의사 사당 해동사를 참배한 족친들과 독립지사 후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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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길에도 나의 제1차, 3차 중국 대륙 항일답사 안내를 맡아준 이항증(임정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증손) 선생이 동행해 주었다. 2월 26일 전남 영광 김용구·김기봉 부자 의병장 후손 김근순 전 대마면장의 안내로 함평의 독립운동역사관(상해임시정부청사)과 안중근 의사 동상을 참배한 뒤, 녹천 고광순 의병장 생가인 담양 창평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아침 녹천 후손 고영준씨의 안내로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 용두산 기슭에 있는 만수사(萬壽祠)로 갔다. 안중근 의사 일문인 안종복, 안경순, 안춘섭, 안병만 족친들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만수사는 장흥에 세거(世居, 한 고장에 대대로 삶)하고 있는 죽산(竹山) 안씨들이 '해동공자'로 일컫는 고려 충렬왕 때 문성공 안향(安珦, 1243~1306)의 학덕을 기리고자 세운 사당이다. 이곳 일문들이 1910년 안중근 의사가 뤼순에서 순국한 뒤 집안이 풍비박산되어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여러 유지들의 성금을 모아 만수사에다 안중근 의사의 사우(祠宇, 따로 세운 사당)를 지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해동명월(海東明月)'이라는 글을 내려 '해동사(海東祠)'로 명명(命名)케 되었다는 얘기를 족친(族親, 같은 성을 가진 일가붙이)들이 들려주었다.

'義士 安公重根'

 해동사에 안치된 안 의사 위패
 해동사에 안치된 안 의사 위패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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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봄을 재촉하는 단비를 맞은 만수사 일대는 더욱 청아하고 고즈넉했다. 우리 일행은 족친들의 안내로 해동사에 든 뒤 '義士 安公重根(의사 안공중근)' 위패 앞에 분향 재배했다.

"안중근 의사님! 잘 다녀왔습니다. 충심으로 안 의사님을 흠모합니다."

나는 안 의사 위패 앞에 깊이 엎드려 고유인사를 올렸다. 사당 안에는 안 의사의 유묵 세 점과 이승만 대통령이 내린 편액, 그리고 안 의사의 자음시(自吟詩, 자작시) 한 편이 걸려있었다. 안 의사의 유묵 앞에서 일행과 족친들이 유묵에 대한 감상 촌평을 했다. 먼저 내가 '극락(極樂)'에 대해 말했다.

"이 유묵은 '경술3월'이라는 작품 쓴 때로 보아, 안 의사 순국 직전으로 여겨집니다. '極樂'이라는 휘호는 일제가 당신을 감옥에 가뒀지만, 당신은 이곳이야말로 '지상 극락'으로 알고 지낸다는 역설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일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 의사의 그 기개에 탄복했다. 안씨 족친 한 분이 유묵 '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안 의사 유묵
 안 의사 유묵
ⓒ 눈빛<대한국인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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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묵은 '스스로 잘난 체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로, 안 의사의 겸손한 성품이 배어있는 글입니다."

 안 의사 유묵
 안 의사 유묵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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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세에 굴복치 않는 사람

이어 동행 이항증 선생이 다음 작품을 가리키며 이 시는 이백의 '여산 오로봉'에서 연유된 작품이라며 풀이를 했다.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삼상(三湘)의 물로 먹을 갈아
푸른 하늘을 한 장 종이 삼아
마음속에 담긴 시를 쓴다.

五老峰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丈紙 寫我腹中詩
(오로봉위필 삼상작연지 청천일장지 사아복중시)

나는 작품의 풀이를 듣는 순간 문득 <맹자>의 '대장부' 일절이 떠올랐다.

"대장부는 넓은 천하를 집삼아 살며, 천하 한가운데 서서 대도(大道)를 행하나니, 그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도(道)를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그 도(道)를 홀로 행한다. 부귀해도 음란치 않고, 빈천해도 절개를 변치 않으며, 위세에도 결코 굴복치 않는 사람이다."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
ⓒ 눈빛<영웅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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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안중근

안중근 의사이시여!
당신은 진정한 대장부요, 영웅이십니다.
저는 그동안 당신의 길을 뒤쫓던 날이
매우 행복했습니다.

당신이 있기에
이 나라 이 겨레는 영원할 것입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도
이 나라와 이 겨레를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는 답사기 책 제목 <영웅 안중근>을 해동사 안 의사의 위패 앞에서 확정 지었다.

장흥 안 의사 족친들이 우리 일행에게 점심을 들고 가라는 간청을, 갈 길이 멀다고 굳이 사양하고는 용두산 해동사를 떠났다. 도중 광주 포충사(褒忠祠)에 들러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1523~1592) 의병장 영정에 절을 드린 뒤 날이 저물까 급히 귀로에 올랐다.

잠시 갠 하늘이 다시 비를 뿌렸다. 그 비와 함께 내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위대한 영웅 안중근 의사를 만난 기쁨의 눈물이요, 무딘 붓으로 그 분을 그리기에 정성을 다한 한 작가의 마지막 '화룡점정(畵龍點睛)' 눈물이었다.

 효창원 안 의사 무덤에서 기자가 답사 종료 고유인사를 드리다.
 효창원 안 의사 무덤에서 기자가 답사 종료 고유인사를 드리다.
ⓒ 홍소연(백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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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
그리고 답사 길에 도와주신 국내외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영웅 안중근> 연재 마지막 회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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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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