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부도 영흥도 방면에서 바라본 부도
▲ 부도 영흥도 방면에서 바라본 부도
ⓒ 박상건

관련사진보기


부도 선착장과 보급선 인천지방해양항만청 행정선이 부도 등대에 보급품을 전달한 후 잠시 정박 중이다.
▲ 부도 선착장과 보급선 인천지방해양항만청 행정선이 부도 등대에 보급품을 전달한 후 잠시 정박 중이다.
ⓒ 박상건

관련사진보기


인천 영흥도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부도. 무인도인 이 섬은 물오리가 두둥실 떠서 낮잠을 즐기는 모양새라고 하여 '오리 부(鳧)'자를 따서 부도라고 부른다. 도깨비가 많다고 하여 도깨비 섬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뭍으로부터 오랫동안 외롭게 떠 있는 섬이다. 도깨비를 쫓기 위해 도깨비가 싫어한 피(血)와 소금(鹽)을 섞는다는 뜻의 피염도라고도 불렀다.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인천항 관문에 위치하고 있어 106년 전에 이미 등대를 설치했다. 작은 섬이지만 갖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국내 최초로 불빛을 회전하며 비추는 이곳 등대의 등명기는 국산 프리즘 렌즈를 사용한다. 그 불빛이 자그마치 50km 먼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까지 식별이 가능하다. 그 빛의 힘이 대단하다.

또한 부도 앞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매우 커서 선박운항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래서 부도등대에는 조류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할 수 있는 조류신호시스템이 국내 최초로 설치됐다. 이곳 등대에서는 실시간으로 항해자에게 조류정보를 제공하여 안전운항을 돕고 있다.

행정선 인천지방해양항만청 행정선이 부도 선착장에서 식량 등 보급품을 등대원들에게 전달 중이다
▲ 행정선 인천지방해양항만청 행정선이 부도 선착장에서 식량 등 보급품을 등대원들에게 전달 중이다
ⓒ 박상건

관련사진보기


모노레일 부도 등대 등대원이 선착장에서 보급품을 모노레일로 운반하고 있다.
▲ 모노레일 부도 등대 등대원이 선착장에서 보급품을 모노레일로 운반하고 있다.
ⓒ 박상건

관련사진보기


부도등대 김신철 소장은 "무인도지만 그 위치의 중요성에 걸맞게 항로표지의 주요기능인 빛의 파장, 전파의 세기, 소리 파장의 크기가 완벽한 3박자를 갖춘 등대를 보유한 아주 유서 깊은 섬"이라고 말했다. 부도등대 높이는 15.2m, 등대 불빛은 15초에 한번씩 반짝인다.

등대로 가는 날(10월 7일)은 인천지방항만청 행정선이 부도에 근무 중인 등대원들에게 식량 등 보급품을 전달하러 가는 날이었다. 보급품이 선착장에 당도하자 미리 나와 기다리던 등대원들은 보금품을 받아 모노레일을 타고 등대 창고로 향했다.

등대 생활도 많이 변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등대원들은 무거운 식량과 축전지 등 보급품을 전달받아 지게에 짊어지고 먼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육체적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기상악화로 배가 오지 못하는 날을 위해 텃밭을 일구고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해 말리며 자급자족을 대비해야 했다. 세월이 흘러 등대의 조형미가 예술적으로 승화하고 감상의 포인트가 되었다. 국민 눈높이만큼 등대도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졌다. 등대 소재와 작동 시스템이 독일과 일본 수입에서 탈피해 순수 국산 기술로 가능해졌다.  

등대 가는 길 부도 해변에서 등대로 가는 숲길
▲ 등대 가는 길 부도 해변에서 등대로 가는 숲길
ⓒ 박상건

관련사진보기


부도 등대 팔각정 쉼터와 국내 최초 조류신호기 그리고 백색원형 등대가 잘 어우러진 부도등대 전경
▲ 부도 등대 팔각정 쉼터와 국내 최초 조류신호기 그리고 백색원형 등대가 잘 어우러진 부도등대 전경
ⓒ 박상건

관련사진보기


100년 전통을 넘긴 부도등대 앞에서 엄숙하고 경건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절대고독의 상징처럼 늘 그 자리에 서서 무조건적 사랑을 베풀고 전지구적인 소통을 지향하는 등대정신을 아로새겼다. 부도 등대는 깎아지른 해안절벽에 서 있다. 절벽은 원시의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 험난한 지형을 극복하고 나면 등대 앞마당만은 가슴 시원한 수평선처럼 평화롭다. 푸른 잔디와 원두막 쉼터가 조성돼 흰 원형석조 등대와 조화를 이뤄 한 폭의 풍경화다.

이곳에서 내려다 본 서해바다 전경이 일품이다. 계곡물처럼 흐르는 등대 아래 바다에는 작은 등대인 부도 동방부표가 가장자리에 서 있다. 오고가는 배들의 안전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그 부표 너머로 먼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많은 낚시꾼과 보트 동호회 회원들이 등대 아래 선착장까지 다가왔다가 한 바퀴 돌아나가기도 한다.

부도등대 쉼터 인천지방해양항만청(청장 선원표) 이병곤 사무관과 김신철 소장이 부도 주변 항로표지 시설 등에 이야기하는 모습
▲ 부도등대 쉼터 인천지방해양항만청(청장 선원표) 이병곤 사무관과 김신철 소장이 부도 주변 항로표지 시설 등에 이야기하는 모습
ⓒ 박상건

관련사진보기


부도 바닷가 부도 바닷가 모습. 조류가 심한 지역이지만 사리 때는 아주 평온하고 낚시가 잘되는 지역이다.
▲ 부도 바닷가 부도 바닷가 모습. 조류가 심한 지역이지만 사리 때는 아주 평온하고 낚시가 잘되는 지역이다.
ⓒ 박상건

관련사진보기


팔각정 쉼터는 2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시인묵객들이 목침 베고 하룻밤 묵으며 시를 읊조리고 그림을 그리고 잔디마당에서 한 판 춤을 추고 판소리 한 마당, 하모니카와 기타 연주를 하면서 무인도 추억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독백처럼 털어내자 인천항만청 석영국 과장은 "내친 김에 한번 하죠. 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면 고독한 부도와 등대도 더 좋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인천지방해양항만청과 섬문화연구소는 10월 30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10월의 마지막 밤을 무인도에서 보내기로 했다. 깊어가는 가을밤을 무인도 등대 아래서 등대사랑과 등대정신을 음미하는 해양체험을 해볼 날에 가슴 설레며 부도를 떠났다.   

배가 떠나면서 섬도 다시 멀어져 갔다. 인간도 섬도 영원한 만남을 지탱하지 못한 운명을 탔다. 그러기에 아등바등 각진 삶에 허덕이지 말고 각진 절벽에는 꽃 피고 열매 맺는 숲을 키우고 먼 바다에는 누구에게나 빛과 사랑을 베푸는 등대처럼 오늘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고 자연의 소소한 것까지 모두 사랑해야 함을 깨닫는다. 평온한 바다에 포말이 일면서 그런 생각의 갈피들이 일렁였고 다시 먼 바닷길로 파도는 드러누웠다.

덧붙이는 글 | 박상건 기자는 시인이고 성대 언론정대학원 겸임교수, 사단법인 섬문화연구소 소장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시인, 언론학박사,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특별추진위원장, <샘이깊은물> 편집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현재 한국잡지학회장, (사)섬문화연구소장, 국립등대박물관 운영위원. 저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바다, 섬을 품다> <포구의 아침>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레저저널리즘>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글쓰기> 등 다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