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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를 조작해서 특정한 능력을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킨 채로 한 인간을 태어나게 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가능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이런 기술이 필요할까'라는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과학자들이 호기심 차원에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기술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이유는 몇 가지 되지 않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일반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어떤 특정한 일들을 시키기 위해서다. 장기간의 전쟁이라든가 극단적인 환경에서의 노동 등.

 

이런 일들을 시키기 위해서는 거기에 적합한 육체를 갖도록 DNA를 조작해야 할테고,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갖지 않도록 의식을 개조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나는 평생 이런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어'라는 생각을 항상 유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아무리 깔끔하게 세뇌를 시켰더라도 기본적인 사고력마저 없애기는 힘들다.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일반인들과 비교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같은 인간인데 왜 우리는 이렇게만 살아야하지?'라는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면, 나아가서 강화된 육체적 능력을 가진 이들이 한데 모여서 폭동이라도 일으킨다면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다.

 

먼 미래에 외계생명체와 맞서는 인류

 

존 스칼지의 <유령여단>에는 이런 DNA 조작을 통해서 탄생한 군인들이 등장한다. 물론 이들이 위에서 한 이야기처럼 '각성'하지는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이 탄생하게 된 데에는 DNA 조작과 함께 다른 기술도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인공수정을 마치고 16주가 지나면 성인크기만큼 육체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술이 그것이다. 성인의 육체에 어린아이의 정신을 가진 군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품의 배경은 수백 년 뒤의 미래다. 인구과잉과 자원고갈로 촉발된 대륙간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는 생존을 위해 우주개척의 길로 내몰린다. 우주 멀리까지 나아간 개척민들은 그 과정에서 지성을 가진 여러 종족의 외계생명체를 만나게 된다. 인류와 외계생명체와의 만남은 그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개척민들은 서로 연합해서 '우주개척연맹'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외계생명체에 맞섰지만,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우주개척연맹은 이 패배에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현재 인간병사로는 외계인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강인한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 DNA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젊고 빠르고 강하며,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 냉혹한 군인들이 탄생했다. 이들이 속한 부대의 정식명칭은 '우주개척방위군 특수부대'지만 사람들은 '유령여단'이라고 부른다. 특수부대원들이 방위군 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1%지만, 뛰어난 전투력 때문에 이들은 항상 위험한 임무를 담당하게 된다.

 

특수부대원들이 우주 곳곳에서 외계종족과 싸우고 있는 동안, 개척연맹의 뛰어난 과학자 샤를 부탱이 한 외계종족에게 투항하는 일이 발생한다. 부탱이 가지고 있는 기술이 외계종족에게 넘어간다면 인류는 외계종족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거듭하다가 멸종하게 될지도 모른다. 특수부대원들은 부탱을 찾으면서 동시에 그가 왜 투항했는지 그 이유도 알아내야 한다. 샤를 부탱은 우주개척연맹이 가지고 있는 어떤 비밀을 알고 있었을까?

 

작가가 묘사하는 미래의 과학기술들

 

SF소설답게, <유령여단>에는 DNA 조작 이외의 다른 기술들도 등장한다. 그중 하나는 의식 전이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한 사람의 인격과 기억을 다른 사람의 두뇌로 옮길 수 있다. <유령여단>의 전편인 <노인의 전쟁>에서 이 기술을 이용해서 대규모 신병을 모집할 수 있었다.

 

75세가 넘는 노인들이 자원해서 군에 입대할 경우에, 노인들의 의식과 기억을 새로운 젊은 육체로 옮겨 주었다. 그냥 늙어 죽느니 군인으로 제 2의 인생을 살려고 하는 노인들이 많았던 덕분에 의식 전이 기술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의식이 빠져나간 육체, '중고 신체'는 갈아서 비료로 사용한다. 땅에 파묻기에는 너무 많기 때문에 비료로 만든 후에 새롭게 개척한 행성으로 보낸다. 아무리 젊은 신체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한때 자신의 인격을 담고 있던 몸이 비료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면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수백 년 후의 과학기술이 참 비인간적인 방향으로 발전해가는 것이다. 아니 노인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었으니 인간적이라고 해야할까. 작가는 <유령여단>에서 여러 페이지를 할애해서 이런 기술들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기술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런 기술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욱 진지하게 펼쳐진다. SF도 결국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덧붙이는 글 | <유령여단> 존 스칼지 지음 / 이수현 옮김. 샘터 펴냄.


유령여단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샘터사(2010)


태그:#유령여단, #존 스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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