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어둠의 왼손> 겉표지
▲ <어둠의 왼손> 겉표지
ⓒ 시공사

관련사진보기

<어둠의 왼손>의 저자 어슐러 K. 르귄은 자신의 작품을 읽는 독자에게, 이 작품을 하나의 사고실험이라 생각하고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

그 사고실험은 독특하고 기발한 가정에서 시작된다. 스위스의 미치광이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괴물인간을 창조해낸다면 어떻게 될까. 2차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패배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가정 속에서 현실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머릿속에서 상상해보는 것이다. <어둠의 왼손>에서 그런 가정의 무대는 남녀 구별이 없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외계행성이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지구인들이 '겨울'이라고 부르는 행성이다.

이곳에는 인간보다 약간 작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인간과 비슷한 종족이 살고 있다. 가장 큰 차이라면 이들은 평소에 중성 또는 남녀 양성이라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다만 '발정기'가 되면 스스로 남자 또는 여자의 성을 선택해서 몸을 변화시킨다. 그 기간동안 성행위를 통해서 임신을 할 수 있다. 이 발정기는 약 26일을 주기로 돌아오지만 며칠 유지되지 않는다. 이들은 1년 중 6분의 5 기간 동안 중성으로 살아간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번 발정기에 남자를 선택했다가 다음 발정기에는 여자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성별을 바꿔가면서 성행위를 거듭한 결과로, 한 개인이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동시에 다른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한 아기가 태어나면 주변에서는 '아들이야? 딸이야?'라고 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질문 자체가 이 행성에서는 필요가 없다. 정말 재미있지만 혼란스러운 곳이다.

남녀 양성의 행성을 방문한 지구인

이런 행성에 지구인 '남성'이 혼자 뚝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도 처음에는 혼란을 겪을 테지만 자신과 이 행성 사람들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행성인들의 눈에는 1년 내내 발정기인 지구인이 괴상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외눈박이 원숭이들의 섬에 간 두눈박이 원숭이처럼.

겨울 행성을 방문한 지구인 겐리 아이는 우연히 이곳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인류연합의 사절로 이 행성을 방문한 것이다. 인류연합은 우주 곳곳에 83개의 거주 행성을 가지고 있다. 그 행성들에는 약 3000개의 국가와 종족들이 있다. 그 국가들 또는 행성들 사이의 불필요한 전쟁과 약탈을 방지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인류 연합이다.

겐리 아이는 겨울 행성의 왕국들에게 인류연합과의 동맹을 권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겨울 행성의 사람들은 우주에 자신들 외의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한다. 겐리 아이의 외모가 자신들과 비슷하기 때문에 그를 거짓말쟁이 또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겐리 아이가 겨울 행성에 올때 타고 왔던 우주선을 보여주고 그 왕국의 과학자들이 우주선을 정밀하게 검사하고 난 뒤에도 크게 태도변화가 없다. 왕국의 지도자는 '왜 괴물 같은 3000개의 국가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냐?'라고 반문한다. 동맹을 통해서 왕국의 문화와 경제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설득해도 소용이 없다.

이제부터 겐리 아이의 모험이 시작된다. 겐리 아이는 겨울 행성의 왕국들을 오가며 지도자들을 만나지만 일은 풀리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강제노역에 동원되기도 한다. 눈과 얼음 투성이인 설원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기도 한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겐리 아이는 어떻게 이들과의 동맹을 이끌어 낼까?

동맹을 통한 평화를 유지하려는 주인공

인류의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묘사하는 다른 SF와는 달리, <어둠의 왼손>에서 인류는 나름대로 평화롭게 조화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겨울 행성을 한차례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지구의 모습이 어떤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다만 주인공이 늘어놓는 이야기에 따르면, 인류는 200년 전의 재앙에서 회복되어 가고 있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배우고 있단다.

그 재앙이란 것은 핵전쟁 같은 대규모의 전쟁이었을 것이다. 그런 재난을 통해서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과거의 기술과 사상을 재건하려하고, 외계행성을 개척한 다른 인류들과 손을 잡고 문화와 과학을 교류하려고 한다. 서로 동맹을 맺고 평화적인 교류를 하는 것만이 과거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작가는 '과학소설의 무대는 미래가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작품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남녀 양성의 인간이 살고 있는 행성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긴 소설을 읽으면서 작품의 시간적배경이 언제인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의 말처럼 독자들은 소설의 내용이 허구라는 것을 알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그 안의 모든 말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귄 지음 / 서정록 옮김. 시공사 펴냄.



어둠의 왼손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시공사(201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