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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좋아'하는 열네 살이다. 학교를 간다면 중1이 되는 나이지만 학교를 가지 않고 있다. 대신 텃밭농사도 돕고, 산에서 먹을 것도 채취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일을 통해 자연을 통해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배우고 있으며, 스스로 문제집도 사서 풀고 EBS강의도 들으며 공부를 한다. 부모님은 내가 학교를 다니지 않고도 사람 노릇을 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마을도 여느 시골처럼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고 아이라고는 내가 유일하며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산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나를 볼 때마다 '텔레비전도 안보고(우리 집은 TV가 없다) 애 바보 만들겠다.', '아가 똑똑한데 학교를 안가서 되나' 하며 걱정이 많으시다. 그러나 좀 과격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 학교가 학생들을 바보로 만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나도 5학년 2학기 때 한 달 동안 제도학교를 다녀본 적이 있다. 내가 사는 방식, 공부하는 방식이 어떤지 가늠도 해보고 싶었고, 보통의 아이들이 경험하는 학교를 나도 경험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똥도 못 누고 이른 아침부터 학교를 가서 문제집을 그대로 칠판에 쓴 것을 다시 공책에 옮겨 적고 하루 종일 수업하고 방과 후 공부 또 하고 집에 가서 숙제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았다.

물론 학교가 공부라는 목적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겠지만. 그런데 그렇게나 많이 공부를 하는데도 우리 부모들 세대 때보다 우리들의 실력이 정말 나아진 게 맞는 걸까? 오히려 제도교육은 내게 재밌던 공부를 재미없게 만들고, 생각도 시간도 행동에서도 자유를 억압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학교를 다시 나왔다. 내가 너무 성급하고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학교가 아니어도 배움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그때의 경험을 오마이뉴스에 올린 적도 있다, 나도 학교 다녀봤지만... 결론은 "나랑 안 맞아")

얼마 전 신문(2011.3.30 한겨레신문)에 재밌는 기사가 하나 났다. '학벌 부추기는 '서열놀이'…대학본부까지 가세 호들갑'라는 제목을 단 기사였다. 중앙대의 홍보실장이 중앙대가 '중경외시'에서 '서성한중'으로 서열이 올랐다고 홈페이지에 자랑을 하자, 한양대 일부 학생들이 반발했다. 중앙대가 서열 올릴 동안 우린 뭐했냐라며 학교당국에 항의를 했다는 것이 기사의 내용이었다.

'중경외시'나 '서성한중'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대학의 앞 글자를 따 대학 서열을 표현하는 일종의 은어이다. 누리꾼들은 그동안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동건홍…' 등의 순서로 서열을 매겨왔다. 차례대로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외국어대·서울시립대·동국대·건국대·홍익대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중앙대 홍보실장이 대학 서열이 올랐다고 한 근거는 유명 대학입시 관련 누리집에서 중앙대가 '서성한중'게시판으로 분류된 것일 뿐이었다.

이것은 학생들을 가지고 논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 대학이 사설 누리집을 인용해서 자기들의 등급이 조절되었다 자랑한 것도, 그러면서 무슨 공인기관의 서열발표이기라도 한 것처럼 여겼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더군다나 학생들의 서열놀이에 대학까지 가세하는 건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다.

이런 서열 논리가 등록금 인상의 논리로 발전하기도 한다. 서울의 모 대학교는 학생들에게 "서연고를 넘어서려면 학교에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들 학교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등록금 수준을 비슷하게 맞춰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다.

아니, 그렇지만 등록금으로 대학의 교육 여건과 수준을 올릴 수 있다면 기꺼이 등록금을 내고 싶다. 그러나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돈을 받아도 모두 이상한 데 쓰고 있다. 골프장에, 학습림에. 더한 것은 전국 사립대학들의 비밀 금고에 들어있는 돈이 10조원을 넘는다는 것이다. 대학은 해마다 등록금을 올리면서도 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투자하는 대신 이렇게 금고에 쌓았다. 10조원이면 50만 명의 대학생들에게 4년간 장학금을 줄 수 있는 금액이다. 결국 등록금을 올려도 성적이나 학습에 질이 오르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자꾸 서열놀이, 서열놀이 하니까 서열이 마치 매우 중요한 것 같아 보인다. 과연 대학의 서열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서열은 그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한테나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휘둘릴 때 그 문제 속에 있으면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거리를 두고 멀찍이서 바라보면 그것이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대학서열도 그렇다. 그저 서열 싸움하는 대학들 끼리나 중요하다. 그 서열놀이에서 잠시 떨어져 우리는 정말 대학의 기능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갖는 것 말고도 대학은 그 중요한 기능들이 있다. 독재정권을 끌어내리고 민주화를 일궈냈던 시절, 결국 대학생들이 그 일을 중심으로 했었다. 대학은 취업을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일 수도 있지만, 교양 있는 시민을 양성하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를 끌어갈 '지성인'을 기르는 곳이 대학이다. 물론 괜찮은 대학이 왜 없고, 대학을 가려는 이들이 그 서열로 줄을 서는 일이 꼭 나쁘기만 할까.

그런데 이런 서열놀이를 보라. 오히려 학력사회를 더욱 조장하고 대학생이 지녀야할 품성이나 진정한 능력에 대해서는 관심 없다. 그런 것이 서열로 매겨질 수 있는 것인가. 대학당국이 정말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그런 놀이나 하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런데, 왜 이렇게 서열이 중요하게 된 걸까? 평소에 능력이란 게 학력으로 측정된다고 착각한다. 아니다. 능력과 학력은 틀리다. 능력은 학력이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는, 우리 사회는 학력이 능력인 것처럼 알고 학력에 비중을 두는 것이다. 학력이 아니라 능력이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의 구체적인 방법은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안다. 투표하는 시민들이 만드는 거다. 그래서 투표가 중요한 거다. 그리고 깨어있는 공무원들이 만드는 거다. 결국 제도는 그들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대학서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말하고 싶다.  '행복'!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일까, 어떨 때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낄까?

사람들은 좋은 관계에서 행복을 느낀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말이다. 또 타인을 존중하고사랑하고, 타인도 나를 존중해 주는 관계. 참 중요하다. 두 번째는 아름다운 기억과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가 있을 때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잘 살아야지!', '아, 그때는 참 행복했어!'(그래서 나는 아이 때 정말 즐겁게 놀 수 있어야 건강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행복하게 놀아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할 수 있다. 행복도 습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또 어떨 때 행복해할까? 일! 그러니까 보람 있는 일, 가치 있는 일, 재미가 있는 일을 할 때 사람은 행복한 게 아닐까. 남을 도와주고 그가 즐거워할 때 나는 행복하다. 농사일을 거들 때도 행복하다. 닭 모이를 주러 가서 닭이 모일 때도 행복하다.

올해에만 카이스트 학생이 세 명이나 자살했다는 소식이다. 공부나 성적이 모든 걸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행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언젠가 중고생들에게 그러셨다.

"두 사람이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자살을 하려고 20층 옥상에 올라갔어. 지나간 시간도 생각해보고 앞으로 살아갈 날도 생각해 봤겠지. 한 친구는 '내가 이때까지 살면서 참 행복했어,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어. 그러면 우리는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올 수 있는 거지. 그런데 또 다른 친구는 어릴 때부터 놀지도 않고 내내 공부만 하고 살면서 스트레스 받고 그랬어. 행복했던 기억이 없었던 그는 앞날을 생각하니 까마득한 거야. 계속 이렇게 산다면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나 싶었던 거지.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 뛰어내리는 거야."

대학서열보다 대학이 정말 그 구성원인 대학생(대학이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바로 그 학생들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서열놀이 이제 그만!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네 살 학생기자입니다.



태그:#대학서열, #서열문제, #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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