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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일 <박정희 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 이 책은 모두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정희 체제를 넘어서자'는 말은 이제 너무나 익숙하여 새롭지 않다. 당연한 대답이지만 그만큼 그것을 옹호하는 사회관계들의 뿌리가 깊고 넓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묻는다. 왜 넘을 수 없는가. '박 정권 타도선언'을 했던 YS는 박정희 체제의 적자이자 자신이 '죽음의 단식'으로 넘고자 했던 신군부와 3당 합당을 통해 하나가 되었다" - <박정희 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 ''책머리에'에서.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면 된다' '빨리빨리' 등으로 엄청나게 짧은 시간에 일궈낸 고 박정희 대통령. 그 엄청난 경제성장 뒤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유신독재' '전태일 열사 분신'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똥물투척사건' 등 박정희 정권이 내지른 "착취와 수탈, 배제와 억압"이 그 잔인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 서울 하왕십리에서 태어나 어릴 때 '박정희'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박정희를 '훌륭한 정치 지도자'라고 여긴 사람이 있다. 그는 청년이 되어 비판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박정희 속내를 제대로 볼 수 있었고, 그 '인간적 그림자'를 깨끗하게 지워낼 수 있었다. 정치학자 이광일이 바로 그다.

 

그는 지난 2008년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 한국 급진노동운동의 형성과 궤적>이란 책을 펴낸 뒤 이번에 또 책 한 권을 펴냈다. <박정희 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메이데이)가 그 책이다. 이 책은 <좌파는 어떻게...>란 책 앞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가 현재에서 과거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본 이야기다.

 

그들, 역사적 임무는 이미 끝났다

 

"유신체제의 성격은 이 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전에 분신한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자신을 '나 아닌 모든 나', 즉 전체 노동자로 여겼던 한 노동자의 죽음 속에 간직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전태일이 자신을 불사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 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에서

 

이 책은 모두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박정희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2장 '기존 연구 및 평가의 재음미' 3장 '혁명과 쿠데타의 물적배경' 4장 '3공화정의 등장' 5장 '3공화정과 체제 위기' 6장 '위기에의 대응과 유신체제' 7장 '반체제운동과 공개적 독재체제의 붕괴' 8장 '이분법의 이데올로기를 넘어 민주주의의 급진화로'가 그것. 

 

정치학자 이광일은 이 책에서 자유주의란 '늪'과 진보란 '덫'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그는 "경제발전의 업적은 인정하나 독재를 했기에 비판받아야 한다"는 진보 일부 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이 내세우는 '자유주의적 이분법'이란 과녘에 화살을 쏜다. 박정희 체제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판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이광일은 "지금 우리 현실을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헤게모니 탓으로 돌리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왜? "그들의 역사적 임무는 이미 끝났기 때문"에. 그는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행사하고 있는 현실의 정치적 영향력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결코 '분리되어 사유될 수 없는 자유와 평등'의 전진으로 상징되는 미래가 더 이상 그들을 통해 실현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 책을 읽으면 내 청년기가 실루엣으로 다가선다

 

"박정희 정권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간주되고 있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경제성장이 '반인권, 억압의 정치'와 분리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숙고이다... '노동의 문제'가 '경제 문제'의 핵심이라고 인식하는 경우에 더욱 미묘한 문제를 초래하는데, 그 이유는,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만든 핵심 동력으로서의 노동자들, 이른바 '산업역군'으로 칭송되었던 바로 그 노동자들이 '국가의 반인권, 억압정치의 주요 대상'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박정희 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17쪽 '박정희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몇 토막

 

그래. 이 책을 읽다보면 내 어릴 때와 8년을 공장에서 기계, 기름과 싸웠던 내 청년기가 실루엣으로 다가선다. 그때 나 또한 이광일처럼 생각했다. 나는 박정희가 조선시대 왕처럼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하다가 자식에게 대통령을 물려줄 줄 알았다. 그게 4.19로 쫓겨난 이승만이나 5.16 군사쿠데타로 어쩔 수 없이 물러난 윤보선 같은 대통령이 아니라 진짜 대통령인 줄 알았다.

 

나는 그 뒤에도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고 외치는 박정희 말을 굳게 믿고 공고로 들어가 기능사 자격증만 따면 출세하는 줄 알았다. 내가 중학교 졸업을 할 때도 그랬다. 나는 마을 누님들이 마산에 있는 수출자유지역에 다니며 매달 월급을 타서 부모님께 갖다 드리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 누님들이 안전사고를 자주 당한다는 것도 모른 채.

 

나는 그렇게 공고로 들어가 기능사 자격증을 땄고, 졸업하자마자 창원공단에 있는 공장에 들어가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었다. 그때 내 또래 대다수가 공고에 들어갔고, 그들 또한 나처럼 공장에 들어가 '빛나는' 산업역군이 되었다. 나는 그때부터 공장에서 시키는 그대로 야근, 철야, 특근 등을 마다하지 않고 죽어라 일했다.

 

본문 정치학자 이광일은 이 책에서 자유주의란 ‘늪’과 진보란 ‘덫’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빛나는' 산업역군, 그 뒤엔 저임금에 피땀을 옭죄는 고된 노동뿐

 

"공정한 분배 혹은 복지를 위해서는 우선 빵의 크기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또한 그것이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는 상대적이지만 기층 근로대중들의 생존비 이하의 장시간 노동 등을 통해 그 실현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내외독점자본으로 끊임없이 가치가 이전되는 구조의 정착에 따른 분배구조의 악화로 그 이데올로기의 현실 정합성은 점차 약화되었고 대중의 의구심과 좌절감을 깊게 만들었다." - <박정희 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157~8쪽, '3공화정과 체제위기' 몇 토막

 

그렇게 3개월쯤 지나자 어렴풋이 '조국 근대화의 기수'는 허울뿐이라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저임금에 피땀을 옭죄는 고된 노동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문학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공장 안에서 문학동아리를 만들려면 총무부장 허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내가 공고에 갓 들어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기능사 자격증을 따면 정부에서 매달 얼마씩 장려금이 나온다고 했으나 한 푼도 나오지 않았다. 공장 안에서 같이 일하는 현장 노동자들과 산악회, 낚시회, 동창회 등을 만들려 해도 총무부장 허가를 맡아야 했고, 겨우 모임을 만들어 모이려 해도 모임장소, 가는 곳을 일일이 보고해야만 했다. 

 

나는 그때부터 박정희 속내를 살피기 시작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공장 밖에서 자유롭게 모이는 일까지 공장 총무부에 일일이 보고해야 하느냐 말이다. 왜 툭하면 대령 출신, 대위 출신 등이 노무부장 혹은 노무과장을 맡아, 말 그대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곤 하는가 말이다. '국가 방위산업체'라는 허울 좋은 공장 이름을 걸고 말이다.

 

정치학자 이광일이 펴낸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 속내는 바로 내가 직접 겪은 이런 이야기에 무게추를 매달고 있다. 박정희가 이룬 '한강의 기적'은 곧 노동자들 '피땀의 기적'이며, 박정희가 총칼로 옭죈 '국가의 반인권, 억압정치의 주요대상' 또한 나와 같은 현장 노동자였다는 그 말이다.      

 

정치학자 이광일은 서울 하왕십리에서 태어나 어릴 때에는 박정희를 '훌륭한 정치지도자'라고 여겼다. 그는 자라나 비판사회과학(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박정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박정희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펴낸 책으로는 이 책 뒷이야기라 할 수 있는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한국급진노동운동의 형성과 궤적> 등이 있다.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

이광일 지음, 메이데이(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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