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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못 싸오던 시골 아이들에게 초등학교(당시 초등학교)에서 건빵 한 줌씩을 나눠주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았던 1970년대 초반. 나는 1킬로미터 남짓 되는 시골길을 걸어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 가난했던 시절의 겨울은 가난만큼이나 독하게 추웠다. 손이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이 추운 겨울날, 허술한 겉옷을 뚫고 한겨울의 칼바람이 속살을 파고들 때면, 눈가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마저 얼어버릴 듯 추웠다. 그런 날에는 넓은 길 대신 밭두렁, 논두렁길을 걸어 학교엘 갔다. 한 걸음이라도 빨리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추위도 그 만큼 피하고 공부도 더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학교에 가면서 나는 늘 '공부 열심히 해서 <높은 사람> 돼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여름 장마철 폭우가 쏟아질 때면 또래에 비해 체구가 왜소하고 몸이 약한 막내아들을 어머님께서는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 주셨다. 나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학교에 가면서도 역시나 '나중에 꼭 높은 사람이 돼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높은 사람이 되면 가난하게 살지 않는다기에, 몸이 약한 나도 큰소리치며 살 수 있다기에 그랬다. 그렇게 나는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높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높은 사람이 되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렸던 나는 결국 높은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행복한 사람도 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간절히 소망하던 꿈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깨달았다. 높아지려고 앞만 보고 달리면 오히려 더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왜 나는 늘 높아지려는 생각만 했을까? 어째서 낮아지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높아지는 것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낮아지려고 하는 데 오히려 성공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왜 그렇게 몰랐을까? 성공할 수 있었던 그 많던 기회들을 높아지려고만 했던 어리석음 때문에 다 놓쳐버린 지금 지난날의 어리석음이 한 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많은 실패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건 장애인언론사에서의 기자 생활이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장애인들의 삶을 기사로 옮기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할까 보다는 어떻게 하면 대박 나는 기사를 써서 회사와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 기자가 될까에 더 치중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빨리 기자로서 명성을 높이고 확고한 내 자리를 잡을까 하는 데 열중했다.

 

높아지고자 하는 나의 애달픈 노력의 결과, 나는 몇 번의 히트작을 써내긴 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진정성 없는 나의 기자생활은 1년여 만에 끝이 났다. 만일 그 때 내가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장애인의 애환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기사를 썼더라면 나의 기자생활이 그렇게 짧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쯤은 내가 그토록 바랐던 명성 있는 장애인 기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실패를 거듭할수록, 가슴에 와 닿는 '건물'의 지혜

 

건물은 참 지혜롭다. 건물은 나처럼 항상 높아지려고만 하지 않는다. 건물은 상황에 따라 높고 낮음의 선택을 달리한다. 때로는 높아지지만 상황에 따라 기꺼이 낮은 곳을 향한다.

 

먼저 주택을 살펴보자. 주택은 높은 곳을 향한다. 주택은 도로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며 가능하면 다른 주택보다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한다.

 

주택이 도로보다 높은 곳에 자리 잡는 이유는 '배수' 때문이다. 주택이 도로보다 낮은 곳에 있으면 요즘 같은 장마철에 집이 물에 잠기거나 집에 습기가 찰 우려가 있다. 그래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해 주택은 도로보다 높은 곳에 있기를 원한다. 또한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해 집 앞의 수려한 경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다른 집보다 다소 높은 위치를 선호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늘 높은 곳만 바라보는 나와 건물에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상가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가는 낮은 곳을 좋아한다. 상가는 '낮은 곳을 바라보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상가는 도로와 높이가 같거나 혹은 조금 낮은 곳에 위치한다.

 

그렇다면 왜 상가는 굳이 낮은 곳을 찾을까? 그 이유는 고객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다. 만일 상가가 도로보다 높으면 고객들이 드나들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상가는 고객이 없으면 자신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고객의 편의성을 위해 기꺼이 도로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다.

 

상가가 낮은 곳을 찾는 건 비단 도로와의 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다. 상권 전체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비탈길의 상권인 경우 성공하는 상가는 대개 아래쪽에 위치한다. 비탈길 중간지역에 살고 있는 고객들이 비탈길 아래쪽에 있는 상가에서 물건을 사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낮은 곳에 위치함으로써 자신을 높여가는 상가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내 젊은 날에 나에게 '낮은 곳을 바라보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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