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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7월 29일은 우리 아들 스물일곱번째 생일이다. 외갓집에서 살고 있는 중이니 생일 미역국은 외할머니가 끓여주셨을 것이고 멀리 사는 어미는 약간의 생일 축하금을 송금하고 당일 축하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성의 표시를 대신했다.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맙다는 내 문자에 아들이 답장을 했다.

"어무니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건강하셔야 해요~~^^"

이 녀석의 장점은 감사하다는 말이 입에 붙었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가져다주시는 아주머니에게도, 버스 기사에게도, 때로는 리어카 과일장사 아저씨까지. 제가 도움을 입었다고 생각하면 어느 누구에게든지 감사하다는 인사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어제도 친구한테 아들 이야기를 들었다. 열세 살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마흔 여섯 해 지기인 친구의 어머니가 별세하셨다. 수십 년 동안 하도 가깝게 지내 친구의 어머니가 내 어머니인 것처럼 느껴져 내리 사흘을 상가에서 보냈는데 첫날 남편과 아들, 딸 네 식구가 몽땅 문상을 했다.

마지막 날 장지에서 친구가 우리 아들을 칭찬하면서 너희 부부는 안 그런데 아이들은 누굴 닮아 그리 따뜻하냐고 감탄을 했다.

"보통 젊은 애들은 엄마 아빠 친구는 그저 건성일 텐데 인장이는 다르더라. 가기 전에 나한테 와서 어깨를 살짝 안아주며 토닥거리지 않겠니. 이모 너무 많이 우시지 말고 식사 거르지 마시라고 하면서. 아프면 안 되니까 건강 잘 살피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는데 그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더라구. 자경이도 인장이도 어찌나 사려 깊고 밝아 보이는지. 쟈들은 누굴 닮아 저런가 우리 남편과 한참 이야기했다. 하하~~"

친구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안심도 되고 뿌듯하기도 하고 기쁜 마음이 한량없었다. 우리 연배에서 회자되는 자식들 이야기는 부모 속 썩이지 않고 명문대학엘 쑥쑥 들어가 삼성이며 엘지며 번듯한 직장에 취직을 했네, 무슨무슨 고시에 합격을 해서 좋은 집안의 능력 있는 배우자를 만났네. 자랑스런 자식들 근황부터 앞장을 선다.

그런 판이니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우리 자식들 명함을 내밀 수 있나. 게다가 건강에 이상이 생겨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는 바람에 백수처지가 된 아들이야 더 말할 것 없고. 도무지 할 말이 없는 와중에 내 자식들 심성을 칭찬하는 소리를 들었으니 부모 입장에선 이만하면 자식농사 실패하진 않았네라 자화자찬이 안 들 수가 없었다.

하긴 낳기만 내가 나았다 뿐이지 저 녀석들을 저리 의젓한 성인으로 키운 건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보살핌 덕분이었지. 때문에 우리 아이들에겐 혈족인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 외에도 저희들을 키워 준 수십 명의 이모, 삼촌들이 있다.

엄마 아빠의 선배, 후배, 친구들이 바로 우리 아이들이 삼촌, 이모라고 부르는 대상들이다. 먹을 것, 입을 것 챙겨주고 아프면 병원비도 대주고, 학비를 보태는 이모, 용돈을 주는 이모, 자전거를 사주는 이모...이모들의 역할도 다양했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감사함을 알게 하기 위해 이러한 삼촌 이모들의 보살핌을 낱낱이 일러주었다. 어떤 이모가 자전거를 사주신 이모인가, 어떤 삼촌이 네 등록금과 책값을 보태주신 삼촌인가, 이 용돈은 어떤 이모가 주신 것인가. 전달을 하면서도 행여 아무 생각 없이 받을까봐 일러주고 또 일러주었다.

철이 들고부터는 선물을 받으면 꼭 전화로라도 감사인사를 드리게 하거나 아니면 문자라도 보내게 했다. 너희들을 키운 건 엄마 아빠만이 아니라는 사실. 어울려 돕고 사는 게 사람의 도리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바꾸어 말하면 체험학습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부부의 가정교육은 이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아서 컸고, 저 혼자 똑똑해 출세를 했다는 교만이, 저보다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기 일쑤고 힘없는 사람을 멋대로 짓밟고도 암시랑토 않은, 부끄러움을 느끼기는커녕 죄를 짓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이기적인 인간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이 시킨 짓인지도 모르겠다.

저희들이 어떤 사랑을 받고 자랐는가를 알게 되면 적어도 인색하게 제 식구만 챙기지는 않겠지. 제가 받은 사랑만큼 돌려줄 줄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주변에 누가 어렵고, 누가 아픈지 수시로 돌아 볼 줄도 아는 사람으로 사는 것.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만 살아준다면 원도 한도 없겠다.

아들이 어떤 청년인가 알게 해준 또 다른 일화. 얼마 전에 옆 동네 사는 지인이 아들 이야기를 했다.

"인장이가 다니던 파프리카 영농회사 사장 부인을 만나 인장이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 남편이 인장이에게 기대가 아주 컸다네요. 재배기술을 습득시켜 중책을 맡길 생각이었나 봐요. 허리 아픈 것도 문제지만 몇 달째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을 한다고 했더니 대뜸 회사에서 과장한테 스트레스를 받아 그랬을 거라고 하는 거예요. 과장이 얼마나 깐깐한지 들어오는 얘들마다 몇 달을 못 버티고 나가버려서 사장이 골치를 앓는다던데 인장이도 혹시 과장 때문에 그런 거 아녜요?."

"글쎄...회사 다닐 때도 그런 이야기는 전혀 못 들었는데. 부장님이나 과장님이 저한테 잘 해 주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과장 때문에 힘들다는 소리는 한 번도 안 했어."

나중에 아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펄쩍 뛰는 것이었다.

"엄마, 그 아줌마한테 꼭 전해주세요. 과장님이 말씀이 별로 없으셔 그렇지 정말로 좋은 분이시라고.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일하시는데. 아마도 나간 얘들은 지들이 힘들어서 나갔지 과장님이 괴롭혀서 나간 게 아닐 거예요. 그리고 적은 인원으로 온실을 커버하자면 얼마나 일이 힘들겠어요? 괜히 열심히 일하시는 과장님만 억울하게 욕먹네. 아줌마한테 사장님 사모님 만나면 과장님이 좋은 분이시라는 걸 꼭 전해드리라고 하세요. 꼭이요..."

펄쩍 뛰며 전직 상사를 열렬히 변호하던 아들의 모습. 그 모습이 보기 좋아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생일 축하한다. 다른 집 자식들처럼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못 다녔어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해 부자 소리는 못 들을지라도 세상사는 이치를 알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함까지 알고 산다면 무엇을 부러워하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민초로 한 세상을 산다 해도 우리만큼은 부끄러움을 알고 살자.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이것만큼 중한 것이 또 있으리.


태그:#아들, 생일, #감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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