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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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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명개리에서 두로령을 거쳐 상원사로 넘어가는 길은 걷기 좋은 길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는 사람들은 안다는 얘기다. 그 길을 꼭 걸으러 가야겠다, 고 마음먹은 지 오래건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려면 인연이 닿아야 하듯이 길 또한 마찬가지다. 가야지, 가야지를 수없이 되뇌어도 인연이 닿지 않으면 가지 못한 채 그리워만 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을 걸었다. 여름이 막바지에 접어든 것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던 지난 27일이었다. 아침잠이 많아 어딜 가든 일출을 볼 엄두를 거의 내지 않는 내가 그날 아침, 오랜만에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것도 우리 집에서. 점심도시락을 싼다고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 설쳤으나, 아침 해가 떠오를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다.

아니,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지.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고 있으니 해는 날마다 아침이면 떴다가 저녁이면 지는 것 아닌가.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데 그 아침, 느닷없이 붉은 해가 하필이면 한강변의 아파트 뒤에서 불쑥 떠오르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참으로 운치도 없지, 능선이 부드럽고 완만한 산이 아니라 아파트 뒤에서 숨바꼭질 하던 아이가 얼굴을 내미는 것처럼 해가 떠오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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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반가웠다. 해가, 아침 해가 그것도 집에서 떠오르는 것을 본 기억이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아주 좋은 전조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멀리 아파트 뒤에서 떠오르는 운치 없는 해지만 그 붉은 기운이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해는 아주 짧은 순간에 두둥실 떠올랐지만, 가슴을 채운 행복감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그 아침에. 그렇게 출발한 도보여행이었으니, 발걸음이 오죽 가벼웠겠나.

오대산 내면분소가 자리한 홍천 명개리에서 두로령을 거쳐 상원사까지 이르는 길은 거리가 16.3km. 두로령을 지나가니 등산일 것이라고 어림짐작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이어진 임도다. 걷기 좋은 길이라는 얘기다. 차량 한 대가 너끈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은 길이지만 차량 출입은 금지 되어 있다.

명개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진 길은 홀로 외로움을 곱씹으면서 걷는 것보다는 길 친구들과 어울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길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으면서 걷는 게 좋다. 가는 여름이 아쉬워 안간힘을 써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야생화들을 감상한 뒤, 그 꽃을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추억을 나누기 딱 좋은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은 길 친구와 걸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길은 길 친구와 걸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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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도보여행은 도보모임 '숲길 도보여행' 회원들과 함께 했다. 도보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혼자라서 엄두가 안 나거나, 홀로 걷기가 지겹거나 지루해질 때 이런 모임에서 길 친구를 만나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져 이런저런 도보모임들이 점점 늘어나고 활성화되고 있으니, 참고하시길.

오전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명개리에 도착, 걸을 채비를 차렸다. 모자를 눌러쓰고, 장갑을 끼고, 카메라를 배낭에서 꺼냈다. 하늘에는 옅은 잿빛 구름이 흩어져 있었다. 먼데 산에 머물고 있는 구름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듯 무거워 보였다. 오후 늦게 비가 온다더니 저 구름이 비를 뿌릴 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을 했다.

오대산 내면분소에서 두로령까지는 10.2km. 고개를 오르는 길이니 오르막이 이어질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지만 이 길, 아주 완만한 오르막이라 처음 걷는 사람도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고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돌들이 잔뜩 깔린 흙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길이 아스팔트길을 걷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은 걸어보면 안다. 오래 걸으면 걸을수록 피로감이 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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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넓지만 길을 둘러싼 것은 나무들이 울창한 깊은 산이고, 숲이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면서 폐 깊숙이 스며드는 것을 느끼는 순간, 매미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아, 그래, 여름이지.

매미들의 합창소리는 긴 여운을 남기면서 사라지는 듯하다가 다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매미들이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더운 날보다는 비가 내리는 날이 더 많아 눅눅하기만 했던 여름이 얼른 가고 뽀송뽀송한 기운이 깃든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가을이 빨리 오기를 고대하는 내 기분 탓이리라.

굵은 몸통을 가진 누런 구렁이처럼 굽이치면 이어진 길을 걷노라니 점점이 박힌 것 같은 작은 노란 꽃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피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저 꽃 이름이 뭐래요?

 마타리 사이에 오이풀들이 숨어 있다.
 마타리 사이에 오이풀들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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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궁이가 군락을 이룬 채 피어 있었다.
 궁궁이가 군락을 이룬 채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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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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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마타리, 그 옆에 흩어지듯이 피어 있는 건 오이풀, 저건 쑥부쟁이. 길 건너편에는 한낮인데도 달맞이꽃이 수줍게 피었고, 호랑나비 한 마리가 활짝 피어난 궁궁이 위에 앉아 가볍게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꽃 이름을 시를 읊듯이 줄줄이 쉬지 않고 알려준 사람은 니서님이었다. 꽃을 손끝이 채 가리키기도 전에 이름이 튀어 나와, 나를 그리고 우리 일행을 감탄하게 만든다. 덕분에 도보여행이 더 풍성해졌다.

여름 숲에는 야생화보다는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시원스럽게 피톤치드를 뿜어내기 마련인데, 이날따라 숲속에 수줍게 피어난 야생화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건 아마도 야생화의 이름을 때로는 기운차게, 때로는 밀어를 속삭이듯 은은하게 불러준 니서님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부부가 정담을 나누면서 걸어도 좋은 길이다, 이 길은.
 부부가 정담을 나누면서 걸어도 좋은 길이다, 이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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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던 하늘이 말갛게 개었다. 바람이 묵직한 구름을 멀리 밀어내고 밝은 햇살이 숲으로 쏟아지게 만든 것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비집고 불어온 바람이 걷느라 이마에 송송 맺힌 땀을 식혀준다. 발밑에서는 흙이, 돌들이 밟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오고.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우리 일행밖에 없다. 그만큼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적어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아 좋다. 한산하고 한적한 길을 걷는 맛은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여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길을 뒷짐을 진 채 느릿느릿 걷노라면 숲이, 나무가, 꽃이, 바람이, 구름이, 흙이, 돌이, 벌레가, 새가 은은한 안개가 되어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길이 너무 좋다, 는 말이 탄성이 되어 저절로 튀어나오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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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로령 표지석. 정말로 크다.
 두로령 표지석. 정말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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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가 넘어 길 위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집에서 먹던 반찬을 그대로 싸왔는데도 맛이 오지게 좋은 건 내가, 우리가 길 위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 맛,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두로령은 그리 멀지 않았다. 오후 3시 반경, 거대한 두로령 표지석을 만났다. 이 곳, 백두대간과 이어지는 길이다. 해발 1300m.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재촉한다. 상원사까지는 이제 6km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걸었으니, 이제는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10km가 넘게 걸었으니 지칠 만도 하지만, 내딛는 걸음은 여전히 가볍고 흥겹다. 길이 좋기 때문이리라.

 상원사, 고즈넉해보인다.
 상원사, 고즈넉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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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북대미륵암에 잠시 들러 시원한 약수로 갈증에 지친 목을 푼다. 마음이 넉넉히 봬는 스님이 미소로 일행을 맞이한다. 그리고 다시 내려가는 길, 산 아래에 편안하게 자리 잡은 가람, 상원사를 보았다. 아, 저기구나. 저기까지만 가면 되는구나.

상원사에서 월정사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은 8km. 그 길 또한 걷기 좋은 길로 널리 알려졌다. 여기까지 온 김에 이 길을 마저 걸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못해 그 길은 다음을 기약하면 아껴두었다. 가을이 깊어 산 위에서 서늘한 기운을 뿜은 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 그 길을 걸으러 가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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