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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가면 늘 고갯길을 넘게 마련이다. 영서에서 영동으로 가려면 그 많은 고개 중 하나를 넘어야 한다. 이번에는 한계령을 넘기로 했다. 지금이야 도로가 뻥 뚫려 그나마 편안한 길이지만 조선 초기에는 이곳이 험하다는 이유로 폐쇄된 적도 있다. 한계령의 비경을 추억하고 있는 아내가 꼭 다시 가보고 싶다 하여 홍천을 지나 44번 국도를 따라 인제로 향했다.

 합강정에서 본 내린천 풍경
 합강정에서 본 내린천 풍경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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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의 서쪽 인제 쪽 길은 비교적 완만한 편이다. 가는 내내 홍천강을 끼고 달리다 소양호를 지나 내린천과 만나게 된다. 오대산과 방태산 등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내린천과 설악산과 서화면 가득봉에서 발원한 인북천이 만나는 곳에 합강정이 있다. 두 갈래의 물이 이곳에서 합류되어 흐르기 때문에 '합강'이라 했다.

 인제 8경 중의 하나인 합강정
 인제 8경 중의 하나인 합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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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8경 중 하나인 합강정은 인제 지역 최초의 누정으로 숙종 2년(1676)에 건립되었다. 이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 32년(1756)에 다시 중수하였다. 1760년에 간행된 <여지도서>에는 '합강정은 십자각 형태의 누각으로 다섯 칸이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종 2년(1865)에는 6칸으로 중수되었고 한국전쟁 때 폭격에 의해 무너진 것을 1971년 10월에 콘크리트 2층 누각으로 신축하였다. 1996년 도로 확장 공사로 철거되었다가 1998년 정면 3칸·측면 2칸의 2층 목조 누각으로 복원하였다. 

지금은 도로에 바짝 붙어 있어서 이곳을 지나는 이들의 눈에 쉽게 띈다. 최근 합강정 일대는 번지점프와 위락시설, 내린천 래프팅으로 외부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합강정 주위에는 눈여겨볼 만한 것이 있다. 합강 미륵불과 중앙단이 그것이다.

 합강 미륵불
 합강 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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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도 입도 희미해진 미륵불은 원래 합강정 밑 능선에 있었으나 도로 공사 때 인제군청으로 이전되었다가 2003년 다시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 불상은 약 300여 년 전의 것으로 전해지는데, 미륵불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곳에서 목재상을 하던 박명천이라는 사람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내가 이 강물 속에 묻혀 있어 갑갑하기 짝이 없으니 나를 건져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꿈을 기이하게 여긴 박명천은 물질 잘하는 김성천으로 하여금 물속에 들어가 보게 했더니 6척이 넘는 돌기둥 같은 것이 광채를 띠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박 목재상은 돌기둥을 건져내고 석공을 시켜 미륵불을 만들게 한 후, 작은 누각을 짓고 안치하였다. 그 후에 박명천은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어 거부가 되고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강원도 중앙단
 강원도 중앙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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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강정 옆에는 사방으로 붉은 홍살문을 낸 정방형 모양의 제단이 있다. 별여제를 지내던 '강원도 중앙단'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중앙단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제단으로 나라에 전염병이나 가뭄이 들었을 때 각 도의 중심부에 신을 모시고 여제를 지내던 곳이다. 제사는 청명, 7월 15일, 10월 1일 등 1년에 세 번 정기적으로 지냈는데 역병이나 가뭄이 심한 지역에서는 시기와 장소를 별도로 정하여 별여제를 시행하였다.

가뭄이나 전염병 등의 재난이 생기는 것은 제사를 받지 못하거나 억울하게 죽어 원한이 맺힌 신들 때문이라 생각하여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 위로함으로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합강정에서 본 내린천 풍경
 합강정에서 본 내린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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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강정에 올라 내린천을 내려다보았다. 도로를 쌩쌩 달리는 차는 많으나 이곳에 잠시 내려 옛 정취를 느끼는 이들은 별로 없다. 바쁨에 익숙한 일상이 여행도 바쁘게 만드는 모양이다.

 한계령
 한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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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계령 쪽으로 오른다. 얼마가지 않아 44번 국도는 진부령과 미시령 방면의 46번 국도에게 길 한 쪽을 내어주고 한계령으로 접어들었다. 미시령 터널이 뚫려서인지 한계령 길은 한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만 계곡 곳곳에는 2006년 대홍수의 피해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어 스산했다.

평탄하던 길이 점점 굽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가파른 숨을 토해 낸다. 길이 점점 가팔라지자 덩달아 경치를 구경하는 마음도 들떠 방방 뛴다. 안개 속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비경에 누구라 할 것 없이 깊은 탄성을 절로 지른다.

 옛 오색령 표석
 옛 오색령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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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달렸음에도 모두들 경치에 취해 시간을 잃어 버렸다. 들뜬 마음은 고갯마루에 이르러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해발 1004m. '옛 오색령'이라고 적힌 표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계령은 '소등라령', '바드라재', '오색령' 등으로 불리다가 1968년 공병부대가 한계령 도로공사를 인제 쪽에서 시작하면서 인제군 북면 한계리의 이름을 따 한계령이라 하게 되었다.

한계령은 그 이전만 해도 주로 오색령으로 불리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령嶺이란 것은 령 등성이가 조금 나지막하고 평평한 곳이다. 이런 곳에다 길을 내어 령 동쪽과 통하는 것이다'라고 하며 백두대간 강원도 지역의 령으로 철령, 추지령, 연수령, 오색령, 대관령, 백복령 등 여섯 개를 꼽았다.

 한계령휴게소
 한계령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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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게소 내부
 휴게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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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널찍한 주차장 끝에 휴게소가 있었다. 휴게소는 자연과 잘 어울리도록 설계되어 지금 봐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으로 1982년에는 한국건축가협회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비를 피해 실내로 들어가니 커피향이 진하다. 난간에 기대어 운무에 쌓인 고갯길을 내려다보았다. 양양으로 넘어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급해 보였다. 산등성이를 계속 굽이도는 절경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커피 한 잔 하며 휴게소에서 본 한계령의 비 오는 풍경
 커피 한 잔 하며 휴게소에서 본 한계령의 비 오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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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양희은의 '한계령'이란 노래가 절로 떠올랐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이면 그녀가 부르는 한계령도 좋겠지만 원저작자인 한사 정덕수님의 '한계령에서'라는 시 낭송을 들으면 더욱 구수하겠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탁배기나 한사발 할까 하다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다음을 기약했다.

비는 쉬이 그치지 않았다. 다섯 가지의 빛깔이 있다는 오색령, 그 이름이 지금의 한계령보다 아름다움은 누구나 느낄 터. 전설에나 있을 법한 다섯 빛깔의 꽃이 핀다는 나무와 다섯 가지의 물맛이 난다는 오색약수를 굳이 입에 담지 않더라도 오색령은 그 자체로 어여쁘다.

 양양 방면의 한계령
 양양 방면의 한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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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와 운무에 가려 아쉬워도 한계령은 여전히 비경이었다
 비와 운무에 가려 아쉬워도 한계령은 여전히 비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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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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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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