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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서 보고파서 불러보는 옛 노래

님이여 들으시나 못 들으시나

영산강아 말해다오 말 좀 해다오'

 

황포돛배가 미끄러지듯 영산강 물살을 가르자 한 중년의 입에서 흥얼거리듯 노랫가락이 흘러나온다.

 

"와! 멋지다."

 

엄마와 함께 황포돛배를 탔다는 한 고등학생은 누런 황포돛을 올려다보며 탄성을 질러댄다. "이 배가 정말 옛날 사람들이 타던 모양이냐"며 호기심을 드러내자 뱃사공의 얼굴에 흐뭇함이 번진다.

 

영산강 다야뜰 나루터에서 탄 황포돛배에서다. 누런 황포 돛을 올린 게 옛날 뱃사공이 팔뚝보다 굵은 노를 저어 돛에 바람을 태웠던 그 모습 그대로다.

 

황포돛배는 2년 전 이맘때 전라남도가 영산강의 옛 정취를 되살리면서 남도 고유의 관광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띄운 것이다. 길이는 10m 조금 넘고 폭은 2m 정도 된다. 옛날 황포돛배가 바람을 이용해 이동한데 반해 동력장치를 활용하는 게 다를 뿐이다.

 

여행객을 태운 황포돛배가 나루터를 등지고 나와 영산강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배의 앞과 뒤, 두 개의 황포돛이 바람을 맞아 한껏 부풀어진다. 덩달아 승객들의 마음도 모두 부풀었다.

 

영산강 물길을 가르는 황포돛배가 낭만여행으로 이끈다. 흡사 오래 전 번창했던 영산포구를 향해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 같다.

 

저만치 깎아지른 절벽 위에 한옥단지가 우뚝 서 있다. 인기 드라마 '주몽'의 세트장으로 널리 알려진 나주영상테마파크다. 드라마를 통해 익숙해진 왕궁과 신단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도예와 염색 체험장으로 변신한 저잣거리도 보인다. 그 중에서도 굽이치며 흐르는 곡강으로써의 영산강을 조망했던 신단이 오래도록 눈에 머문다.

 

습지대에 내려앉아 먹잇감을 찾는 왜가리의 모습도 보인다. 통통한 물고기가 수면위로 솟구쳐 튀어 오르는 진풍경도 볼 수 있다.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을 바라보고 서 있는 정자 석관정(石串亭)도 올려다 보인다.

 

깎아지는 절벽이나 협곡 같은 풍광은 없지만 잔잔한 물결만큼이나 호젓한 풍경들이 날 선 마음을 가라앉힌다. 해질녘 붉게 타들어가는 강물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겠다.

 

드넓은 나주평야를 뱀처럼 휘감아 도는 영산강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황포돛배에 몸을 싣고 강줄기 따라 유유히 즐기는 뱃놀이의 감흥이 특별하다.

 

황포돛배가 유유자적하는 영산강은 '남도의 젖줄'로 불린다. 담양 가마골 용소에서 발원해 350리를 흘러 서해에 몸을 섞는다. 옛날 이 강에는 조운선이 다녔다. 나주평야의 쌀을 싣고 강을 떠나 서해를 거쳐 김포까지 오르내렸다. 일제 강점기엔 나주쌀이 황포돛배에 실려 목포로 가고, 거기서 화물선으로 갈아타고 일본까지 갔다.

 

영산강 황포돛배는 밀물 때 배를 움직여 내륙 항구인 영산포에 닻을 내렸다가, 썰물 때 바람의 힘으로 물길을 따라 내려가던 추억 어린 배다.

 

한선에 황톳물을 들인 돛을 달고 운항했던 황포돛배는 고려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해상교역의 중심지였던 영산강에서 쌀과 소금, 젓갈 등의 해상 운송수단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30톤급 어선 수십 척이 정박하던 영산포구는 1977년 10월 포구로서의 운명을 다했다. 잦은 홍수를 막기 위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배가 다니지 않는 강이 된 때문이다.

 

영산포등대는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가늠자다. 1915년 설치된 이 등대는 바다가 아닌, 강에 세워진 우리나라 유일의 등대다. 현재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황포돛배를 타는 중천포 나루터에서 가까운 곳에 가볼만한 곳도 많다. 나주영상테마파크 외에도 이 지역이 백제에 흡수되기 이전에 독자적인 강력한 세력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반남고분군이 가까이 있다.

 

천연염색의 모든 것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천연염색문화관도 지척이다. 다양한 천연염색 작품과 함께 천연의 재료를 이용한 염색이 실제 의복에 어떻게 응용되고 있는지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 쪽물이나 황톳물을 이용해 손수건이나 티셔츠에 물을 들일 수 있는 상설체험장도 운영하고 있다.

 

산포면에 있는 전남산림자원연구소에선 아기자기한 산책로와 함께 초록으로 물든 아담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만날 수 있다. 담양의 그것에 버금가는 멋스러운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황포돛배, #영산강, #나주영상테마파크,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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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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