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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에서 신숙주의 아들로 나오는 신면(송종호 분).
 <공주의 남자>에서 신숙주의 아들로 나오는 신면(송종호 분).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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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는 한국사에서 '배신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어린 단종을 무력화시킨 수양대군(세조)의 쿠데타에 가담한 일로 인해, 그는 죽어서도 변절자 콤플렉스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단종의 재집권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진 사육신. 목숨을 버리진 않았지만 평생 단종을 위해 수절한 생육신. 신숙주는 이런 사람들과 정반대의 인간 유형으로 분류되었다. 오죽하면, 금세 상하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 신숙주 때문이라는 속설이 생겼을까.

그런데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신숙주보다 한술 더 뜨는 인물이 등장했다. 신숙주의 둘째아들인 신면이 그 주인공이다. 드라마 속의 신면은 2가지 면에서 '배신의 아이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하나는, 죽마고우인 김승유(김종서의 3남)의 여자를 빼앗는 역할이다. 쿠데타로 김종서 집안이 몰락한 뒤 신면은 김승유가 사랑하는 이세령(실명 아님, 수양대군의 딸)을 자기 여자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친구보다 친구의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며 친구를 조금씩 멀리하는 김건모의 노래 '잘못된 만남' 속의 나쁜 친구처럼 말이다.

또 하나는, 단종을 배신하고 수양대군을 선택하는 역할이다. 한성부 병력을 지휘하는 신면은 쿠데타 계유정난(1453년)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그가 없었다면, 드라마 속의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성사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 신숙주는 주군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두고두고 욕을 먹은 데 비해 아들 신면은 주군뿐만 아니라 친구까지 몽땅 배신했으니, 드라마 속의 신면은 이미 아버지를 능가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숙주의 아들 신면'이 아니라 '신면의 아버지 신숙주'라고 해야 할 정도다. 그가 실제로도, 친구와 주군을 배신했는지 하나하나 따져보자.

사육신묘의 정문.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소재.
 사육신묘의 정문.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소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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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은 세조의 딸, 김승유와 삼각관계였나

신면이 세조의 딸을 놓고 김승유와 삼각관계에 놓였다는 드라마 속 설정은, 이들의 연령대를 놓고 볼 때 상당히 어색하다. 이들 3인의 정확한 출생 연도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아버지들의 연령을 보면 이들 사이의 삼각관계가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종서는 1383년 생이고, 수양대군과 신숙주는 1417년 생이다. 김종서는 수양대군·신숙주의 아버지뻘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숙주의 셋째아들인 신면에게는 김종서의 둘째아들인 김승유가 아버지뻘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면·김승유가 수양대군의 딸을 놓고 경쟁하는 것은 상당히 어색한 일이었다.

드라마 속의 삼각관계가 실제와 동떨어진 것이더라도 신면이 실제로 세조의 딸을 사랑했을 가능성은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그가 마음속으로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힘든 사정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왕실 족보인 <선원계보기략>에 의하면, 세조의 딸은 계유정난 후에 정인지의 아들인 정현조와 결혼했다. 당시 정인지는 신숙주보다 사회적 명망이 훨씬 더 높았을 뿐만 아니라 계유정난에 대한 기여도도 훨씬 더 높았다. 계유정난 후의 논공행상에서 정인지는 1등 공신, 신숙주는 2등 공신으로 책정됐다. 이렇기 때문에 신숙주의 아들이 정인지의 아들을 제치고 세조의 사위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한편, 세조의 또 다른 딸이 계유정난 직후에 김종서의 손자와 비밀결혼을 했다는 이야기가 조선 후기 민담집인 <금계필담>에 수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선원계보기략>에 나오는 세조의 딸이든, <금계필담>에 나오는 세조의 딸이든, 세조의 딸들은 신면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다.

이처럼 신면은 김종서의 아들과 세대가 다르고 세조의 딸들과도 인연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세조의 딸을 가운데 두고 김종서의 아들과 줄다리기를 했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다.

신면이 계유정난에 가담?...사실과 무관하다

신면이 탐하는 ‘친구의 여자’, 이세령(문채원 분).
 신면이 탐하는 ‘친구의 여자’, 이세령(문채원 분).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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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이 계유정난에 가담해서 단종을 배신했다는 이야기 역시 실제 사실과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속 신면은 계유정난의 일등공신이지만, 실제의 계유정난 공신명단에는 신면이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 신면은 공을 세울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이가 좀 어렸다.

신면의 출생 연도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지만, 그의 연령을 추정할 수 있는 간접적 방법은 있다. 그는 신숙주의 여덟 아들 가운데서 둘째다. 첫째아들 신주는 1435년 생이고, 다섯째 아들 신준은 1444년 생이다. 둘째·셋째·넷째의 출생 연도는 확인할 수 없다.

첫째와 다섯째가 9년 터울이므로, 첫째부터 다섯째까지 평균 2년 3개월 간격으로 출생한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면은 1437년경에 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계유정난(1453) 당시 17세 전후였을 것이다. 드라마에서처럼 반군을 진두지휘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 점을 방증하는 또 다른 자료는, 계유정난 5년 뒤의 기록인 세조 4년 10월 7일자(1458.11.12) <세조실록>이다. 이에 따르면, 1458년 당시 신면(22세 전후)은 하위직인 국영 염직공장 공장장에 해당하는 정8품 도염서령(都染署令)이었다. 신숙주의 아들이 계유정난 때 공을 세웠다면, 5년이 지나도록 정8품에 머물렀을 리가 없다. 그가 계유정난 이후에 비로소 관직에 나갔다고 보는 편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신면이 도염서령을 지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혹시라도 그가 염직 기술자가 아니었나 하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학술관청이든 행정관청이든 군사관청이든 기술관청이든 간에, 벼슬아치라 불린 조선시대의 관리는 기본적으로 선비 출신의 문관이었다. 선비들은 성리학 이념에 입각해서 자기 부서를 철학적으로 경영했고, 실무는 구실아치라 불린 서리들이 주로 담당했다. 철인(哲人)들에게 조직 경영을 맡긴 셈이다.

신면이 배신한 친구, 김승유(박시후 분).
 신면이 배신한 친구, 김승유(박시후 분).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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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면은 계유정난과는 무관했지만, 그렇다고 세조 시대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세조시대 막판에 벌어진 이시애의 난(1467) 때 불의의 죽음을 당하고 4년 후에 뒤늦게 공신 반열에 올랐다.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세조 13년 4월 27일(1467.5.30), 신면은 함길도 관찰사(함경도 도지사)에 임명됐다. 5월 16일(6.17) 함길도 호족인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5월 17일 신면을 도로 불러들이고, 좌승지(대통령 수석비서관) 어세공을 함길도 관찰사로 파견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30세 정도였다.

정부에서는 "돌아오라"고 했지만, 신면은 무사히 귀경할 수 없었다. 조선 후기 민담집인 <해동잡록>에 따르면, 신면이 짐을 챙길 겨를도 없이 반군이 함길도 감영(함경도청)을 포위했다. 신면은 상황이 부득이함을 깨닫고 반군에 맞서 싸우는 쪽을 선택했다.

그는 성 위로 올라가 화살을 쏘아 반군 4명을 죽이고, 화살이 다 떨어지자 활을 꺾고 적을 욕한 뒤에 전사했다. 이 일로 그는 세조가 죽고 성종이 즉위한 뒤인 1471년에 3등 공신에 추가 등록되었다. 공신이 책정된 지 4년 만에 뒤늦게 공신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드라마 속의 맹활약과는 달리 세조 시대에는 좀 미미한 존재였다.

드라마 속의 신면은 친구도 저버리고 주군도 저버림으로써 아버지 신숙주를 뺨치는 변절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위와 같이 실제의 신면은 그런 일들을 할 만한 기회가 없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살던 그는 서른 즈음에 반군을 만나 목숨을 잃음으로써 조금이나마 역사의 주목을 받는 데 그쳤을 뿐이다. 


태그:#공주의 남자, #신면, #신숙주, #숙주나물, #변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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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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