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가 그린 쥐그림  뱅크시가 자주 그리는 쥐그림입니다.

▲ 뱅크시가 그린 쥐그림 뱅크시가 자주 그리는 쥐그림입니다. ⓒ 뱅크시


다를 기억하시리라. 2010년 쥐투에니 정상회의 (행여 '지투엔티'라고 발음하는 당신, 촌스러워라 !)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려서 소송을 당하고 결국 벌금 이백만원을 내게 된 대학강사 박모씨. 보아하니 예술가인 모양인데 그림 가지고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재판을 당하게 된 꼴을 보며 참 안됬다는 생각을 했다. 농담도 함부로 하면 안되는 세상.

이 사건을 잊고 있었는데, 어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영화를 보다보니 그 불운한 예술가가 떠올랐다.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시간대가 맞아서 보게 되었는데, 극장 앞에 세워진 입간판에는 코미디이며 다큐멘터리라고 소개되어 있다. 아니 어떻게 다큐멘터리가 코미디가 될 수 있지 ? 참으로 의아한 생각으로 보았는데 영화는 정말 다큐멘터리이고 코미디였다. 많이 키득키득 웃었다.

우연히 캠코더를 갖게 된 후 자나깨나 어딜 가나 누구나 캠코더로 찍어대는, 프랑스에서 미국 LA로 이민 온 아저씨 티에리 구에타. 옷가게를 했는데 대충 디자인 이상해진 옷을 비싼 태그 붙여서 팔았더니 50달러 투자로도 만달러를 번 아저씨. 영어를 하긴 하는데 우리 국민들처럼 오렌지가 아닌 '어륀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뭐가 저래 싶을 만큼 촌스러운 영어를 구사하는 아저씨. 그냥 이 아저씨가 하도 들이대니까 가족들이고 친구들이고, 심지어 LA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명사들까지 그냥 포기하고 그가 찍게 둔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맨날 캠코더를 들고 아무거나 찍어대던 이 프랑스 이민자가 어느날 그래피티를 하는 거리의 예술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인생이 달라진다. 그는 어둑한 밤에 경찰의 눈을 피해 건물의 외벽, 대로변 등등에 예술적 욕구를 실현하는 저항적 예술가들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이 밤의 세계의 거장, 뱅크시에 대해 듣게 되고 그를 만나기를 열망하다가, 참으로 우연히 그에게 뱅크시를 만날 기회가 온다.

뱅크시는 루부르와 대영박물관에도 자신의 작품을 게릴라 전시하게도 하고 팔레스타인 장벽에 평화의 염원을 담은 벽화를 그리기도 하며 파격적인 저항활동을 벌이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이다. 영화에서는 뱅크시가 디즈니랜드에서 9.11 기념일 즈음에 관타나모 수용소를 비판하는 죄수 복장의 인형을 설치하는 장면도 나온다. 정말 대단한 예술가다. 어찌 그렇게 도발적인 작품을 한단 말인가.

캠코더로 하도 이것저것 찍어대다가 거리미술 다큐 감독을 꿈꾸게 된 괴짜 티에리 아저씨. 그가 뱅크시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다가, 결국 뱅크시가 다큐를 만들게 되고 티에리는 직접 그래피티 예술에 뛰어드는데, 이것 또한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뱅크시가 작품 전시로 떼돈을 버는 것은 이해되는데, 예술가의 험난한 성장의 시기를 거치지도 않는 티에리 아저씨가 대충 모방하고 자르고 붙이고 해서 한 전시회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다니… 우리가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라는 작품이나 뒤샹의 '샘' (변기를 떠억 가져다놓고 예술작품이라고 한)에서 보듯이 현대예술에서 뭐가 진정 예술이냐 참 어렵다.

하여간 그 유명한 뱅크시가 자주 그리는 그림이 보아하니 쥐그림이다 ! 나는 영화를 보며 깜짝 놀랐다. 뱅크시의 쥐그림이 한국에서 쥐투에니 때 그려진 박모씨의 쥐그림과 너무 닮은 것이다. 그렇다면 박모씨는 거장 뱅크시의 그림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뱅크시는 떼돈을 벌었는데, 한국에서 쥐그림을 그린 박모씨는 벌금을 내게 됬다는 것이다. 요즘 개그콘서트에서 사마귀유치원이라는 코너를 보면 약간의 정치 풍자가 있는데, 볼 때마다 아슬아슬하다. 저거 농담 좀 세게 했다가 괜히 코너 문닫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우리 아이가 절대적으로 좋아해서 사마귀 유치원 코너 없어지면 안된다.) 농담을 하든 코미디를 하든 우리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으므로 잘 알아서 하자. 그런데 쥐그림 같은 것은 안되고… 어디까지 해도 되는 걸까. 개그 콘서트 애정남이 좀 정해주면 어떨까 ? 쇠고랑도 안차고 경찰 출동 안하는 정도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뱅크시 쥐그림 G20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