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정연주의 기록>
 <정연주의 기록>
ⓒ 유리창

관련사진보기

"예컨대 바둑에서 하수에게 접바둑을 허용하는 것, 골프에서 핸디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누적돼온 구조적 제도적 차별로 뒤쳐진 사회적 약자들에게 진정한 평등을 위해 출발점을 앞당겨주는 게 약자 보호 정책이다."(책 속에서)

유독 눈에 쏙 들어오는 대목이다. 끝 모를 입시 전쟁과 취업 전쟁이 젊은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몰아넣고, 그런 자식들 짠한 눈으로 지켜보며 부모들은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가는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구절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특목고를 목표로 학원, 과외에 매달리고,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순으로 서열화된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고등학교 3년도 모자라 재수에 삼수도 불사하고 매달리는 입시 경쟁은 갈수록 가열된다. 입시에 대한 압박과 좌절감에 자살하는 학생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갈수록 약화된다.

'행복은 성적 순이고 취업은 대학 서열 순'이란 생각을 대부분 사람들이 현실로 인정하고 살아간다. 성적 좋은 학생이, 좋은 대학 간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선호하는 직장 구하고 고액 연봉 받아 살아갈 가능성이 훨씬 높은 사회에서 부모들은 서슴없이 자식들을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등을 떠민다. 결과는 참담하고, 경쟁의 강도는 해가 갈수록 높아진다.

접바둑의 원리는 약자에 대한 배려

70년대 언론자유 운동인 '동아투위' 활동을 시작으로 평생을 자유 언론을 되찾기 위해 싸웠던 정연주 전(前) KBS 사장이 재임 기간 중 각 지역 방송 요원의 절반을 그 지역 대학 출신자들을 우선으로 선발하는 '지방대 할당제'를 실시했다.

가난한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들어갈 가능성이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고액 과외와 학원 다닌 학생이 명문대 합격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현실에서 지방대 출신자들은 취업 경쟁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

바둑 고수가 하수와 바둑을 둘 때 접바둑을 허용하는 것처럼 사회적 약자인 지방대 출신자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정연주가 사장으로 재임 기간 동안 시행된 이 정책의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5년 동안 신입 혹은 경력 입사자를 출신 학교별로 모아보니 참으로 다양하고 화려했다. 우선 서울의 이른바 명문대 출신의 '압도적 독과점' 현상이 사라졌다. 5년 동안 606명을 채용했는데, 이 가운데 명문대라는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은 175명으로 29페센트에 그쳤다. 서울대가 1위도 못하고 2위로 밀려났다."(책 속에서)

절망 속에서 희망 찾기

갈수록 심해지는 과열 입시 경쟁 속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입시 용광로에 녹아버리기 때문에 백약이 무효하다고 탄식하는 사람들도 많다.

<정연주의 기록>에서 '지방대 할당제' 사례를 읽으면서 '과열된 입시 경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말 괜찮은 정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등만 기억하고 대접하는 승자독식의 경쟁 체제에서 출발점부터 약자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희망보다는 절망을 쌓아가는 현실을 되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사실 보도조차 하지 못해 '개와 기자는 접근 금지'라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1970년대는 언론 암흑 시대였다. 이 어두웠던 시기 잃어버린 자유 언론을 되찾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거듭했던 언론인 정연주의 삶은 사회적 약자들도 희망을 간직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삶의 가치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정연주의 기록>을 통해 깨닫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정연주 / 정연주의 기록 / 유리창 / 2011.8 / 1만5000원



정연주의 기록 - 동아투위에서 노무현까지

정연주 지음, 유리창(2011)


태그:#정연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