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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일 사이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는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의 발언이 외교적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군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였다는 점에서 난징 대학살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20일 교도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중국공산당 난징시당 위원회 상무위원과의 회담에서 통상적인 전투행위는 있었지만 소위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고 말했다. 가와무라 시장은 난징사건이 있고 8년밖에 지나지 않은 1945년 당시 난징에 있던 자신의 부친의 말을 예로 들면서 대학살이 있었다면 난징 주민들이 일본군들에게 잘 대해 주었을 리가 없다면서 난징에서 역사문제와 관련한 토론회를 열어도 좋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전에도 몇십만 명을 학살한 일은 없었다는 지론을 폈던 가와무라 다카시는 22일 도쿄에서 열린 강연에서도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을 계속했다. 그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목격자가 없다는 것이 상당히 결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고야시와 자매도시인 난징시는 교류 중지를 발표하는 등 중국 측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난징 대학살은 없었다거나 중국 측이 만들어낸 날조라는 망언을 했던 정치가는 과거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사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다. 중의원 의원 시절의 이시하라는 1990년 9월 미국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난징에서 대학살이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중국인이 만들어낸 이야기이며 거짓말이다. 당신(미국인)들이야말로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20~30만 명을 죽이지 않았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또, 나가노 시게토 법무장관은 장관 취임 직후인 1994년 5월 3일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일본 군대가 여기저기서 했던 학살, 방화, 파괴를 하거나 위안부 문제라는 것은… 나는 난징사건이라는 것은 그거 날조라고 생각한다 … 침략전쟁이라는 정의도 지금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말하는 대동아전쟁이라는 것이 침략을 목적으로 했는가. 일본이 붕괴될 것 같아 살기 위해서 들고 있어났던 것이며, 식민지를 해방하는 대동아공영권을 확립한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전쟁 목적 그 자체는 당시로서는 기본적으로 정당한 것이었다."

나가노는 1994년 5월 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고 다음날 사임했다.

"과거 역사에 관한 나의 발언은 부적절했으며 이를 철회하고 싶다. … 난징학살은 대단히 불행한 사건으로 중국인들에게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태평양전쟁은 정당화할 수 없다. … 종군위안부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 심신 양면으로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말씀을 드린다."

많은 중국인들은 일본하면 '난징 대학살'을 떠올린다. 1937년 12월에 발생한 난징사건으로 중국인 30만 명 이상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했다는 것이 중국 측 입장이지만, 오랫동안 일본은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특히 중국 측이 주장하는 30만 명이라는 학살자 수에 이의를 제기했으며 일부에서는 중국 측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10년 1월에 발표된 중일 역사공동위원회의 보고서는 30만 명 이상이라는 중국 측의 주장과 최대 20만 명이며 4만 명 또는 2만 명이라는 추계가 있다는 일본 측의 주장을 병기하는 데 그쳤다. 또한 일본 측 전문가들은 장제스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난징 사수를 결의했지만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난징을 탈출해버려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는 것을 방관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 측의 무책임한 행동이 난징 대학살을 일으킨 요인 중의 하나라는 지적인데, 중국 측은 이런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고서에도 반영됐다.

일본 육군 장교 출신과 자위대 간부 출신들로 구성된 카이코샤(偕行社)도 독자적인 조사를 벌여 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바 있다(南京戰史編集委員會編 <南京戰史>, 偕行社, 1989). 현재로서는 중국 측 희생자의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으며 난징 대학살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는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일본 측 전문가들의 주장대로 희생자가 2~4만 명에 그쳤다고 해도 대학살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 정치가들의 망언이 계속되는 한 역사적 화해는 불가능하다. 일본 정치가들은 어두운 과거 역사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직시하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태그:#난징 대학살, #가와무라 다카시, #이시하라 신타로, #나가노 시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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