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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유시민 공동대표는 16.1%로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에서 일약 2위를 기록한다. 박근혜 대표의 대세론이 아직 굳건하던 시기였다. 사실상 유일한 야권의 대항마로서 유시민은 야권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런 지지율의 바탕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열풍은 전국을 장악했다. 추모 인파만 약 500만 명이었다. <매일신문>에서 조사한 베스트셀러 1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에세이인 <여보, 나 좀 도와줘>였다. 전국에 대학교에는 분항소가 설치되고 연세대에서는 2009년 6월 21일 노 전 대통령 추모콘서트까지 개최할 예정이었다(연세대의 불허처분으로 성공회대로 장소가 변경되어 개최됨).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유시민 공동대표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상중에서 시민들이 가장 많이 부르던 인물이 유시민이었고, 성공회대 추모콘서트에서 추모사를 낭독하던 것도 유시민이었다. 유시민은 추모 정국에서 노무현의 후계자로 국민들에게 낙점을 받는다.

<폴리뉴스>에서 2009년 6월 17일 유시민 공동대표가 친노신당을 창당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하루 뒤인 18일 부인하지만 친노창당설은 점점 퍼져나갔다. 유시민 공동대표의 부인에도 친노창당설이 힘을 얻는 것을 유시민 공동대표의 의중이 실린 것이라고 판단, 민주당내 의원들은 유시민 공동대표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출했다.

실제로 <뉴스한국>에는 '유시민 친노 신당 창당 움직임에 DJ는 반대'(2009년 6월 19일 보도)라는 기사가 보도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심지어 DJ 조차 민주당을 중심으로 통합해서 양당구도로 선거를 해야지 신당창당은 부적절하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DJ와 공감하던 민주당 안팎의 친노 그룹도 거부감을 드러냈다. 특히 이해찬 전 총리,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안희정 도지사,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 등 핵심 친노 인사들이 모두 공감했다. 유시민 공동대표에게는 가장 아픈 지점이었다.

그리고 2009년 6월 24일 박지원 의원이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친노신당설과 관련해 부인하면서 유시민이 민주당에 복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다시 한 번 유시민 공동대표의 확고한 입장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유시민 공동대표는 이런 논란에 대해서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결과론적으로 유시민 공동대표는 실제로 신당인 국민참여당에 참여한다. 최근의 여론조사인 한겨레-KSOI가 한 2012년 2월 27일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38.2%었다. 민주통합당은 32.9%었다. 사실상 2009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예상한대로 민주당 중심으로 시민사회 단체의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확고한 양당구도가 마련되었다.

양당구도 중 어디에도 참여하지 않고 독자생존의 길을 선택했던 유시민 공동대표는 성장 동력을 잃어버리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이 신당과정에서 생긴 민주당과의 불신은 훗날 있을 단일화에서도 악영향으로 작용한다. 민주당 안팎의 친노그룹과도 의견을 달리하게 하면서 분열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시민의 행동반경은 극히 줄어든다.

당시의 여론도 양당구도를 원했다. 2009년 7월 3일 <폴리뉴스>가 모노 리서치와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친노의 신당창당이 10.7%었고 민주당 복당이 32.1%었다. 유시민 공동대표는실제로 친노창당설이 나온 이후로 단 한 번도 의미 있는 지지율 상승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극적으로 하락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여론조사에 의하면 유시민 공동대표는 6.2%를 기록하며 정동영(8.2%), 이회창(6.3%)에 비해서 더 떨어지는 지지율을 기록함에 따라 유일한 대항마라는 지위를 잃는다. 노 전 대통령 서거정국의 효과가 일정 부분 걷힌 데 따른 조정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2009년 당시보다 3년 뒤인 지금도 민주당 공천 후보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또한 그보다 훨씬 뒤에 나와 이슈를 일으킨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의 자서전 <운명이다>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정확히는 유시민 공동대표가 국민이 원하는 통합을 정면으로 거부했기 때문에 생기는 조정이라고 봐야한다.

유시민 공동대표가 국민참여당에 참여한다고 발표한 이후로는 지지율은 더 곤두박질친다. <문화일보>가 실시한 2009년 9월 30일 자 여론조사에서 유시민 공동대표는 1.8%의 지지율을 기록한다. 사실상 대선경쟁구도에서 밀려난 것이다. 박근혜 대표가 19.1%로 확고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당시 여론조사에서 '모름 무응답'이 62.9%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동층이 훗날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다. 안철수 원장은 처음으로 박근혜 대세론을 극복한다. 심지어 <매경이코노미>가 실시한 2012년 1월 4일 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안철수 신당이 창당될 경우 지지율이 29%로 민주당 12%, 한나라당 12% 안철수 신당이 양당을 더한 것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성공가능성은 유시민의 친노싱당보다 훨씬 높은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안철수 원장은 유시민 공동대표와 달리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신당창당설을 부인한다.

지금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는 안철수 원장과 문재인 이사장이다. 매경과 한걸리서치가 공동으로 조사한 2012년 2월 27일 문재인 이사장의 지지율은 20.9%, 안철수 원장의 지지율은 22.4%. 유시민 공동대표는 통계상으로 의미 있는 수치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안철수 원장과 문재인 이사장 두사람 모두 분열 대신 통합을 주장했던 것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결과다.

유시민 공동대표에게 다시 한번 분열인가, 통합인가를 선택 할 순간이 왔다. 국민들은 단 한 번도 분열을 지지한 적이 없고 통합만을 지지했다는 것을 유시민 공동대표는 곱씹어 볼만할 것이다.


태그:#유시민, #지지율, #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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